간호사 인력기준 미충족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 취소'된 양평병원의 답답한 속사정

[라포르시안] #.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에 있는 의료법인 양평의료재단 양평병원은 113병상을 갖춘 중소병원이다. 올해로 설립 35년째를 맞는 이 병원은 1999년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이래 20여년 가까이 지역내 응급의료 서비스를 도맡아 왔다. 이 병원이 올해부터 응급실 운영에 위기를 맞았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3년 연속 법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 법정기준을 충족하려면 응급실 전담 간호사를 5명 이상 둬야 하는데 1명이 부족해 인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되면서 응급실을 내원하는 비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관리료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가뜩이나 손해를 보면서 유지해오던 응급실 운영의 적자폭이 더 커졌다. 응급의료기금에서 지원하는 운영비 보조금 지원마저 끊겼다. 이대로라면 응급실을 운영할수록 병원이 입는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양평병원은 응급실을 폐쇄하는 대신 야간에 발생하는 응급환자 진료를 위해 당직의료기관으로 야간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양평병원이 처한 상황은 국내 군단위 지방중소도시의 열악한 응급의료 인프라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병원이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써 법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걸 놓고 병원 탓만 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응급실 전담 간호사 인력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온간 노력을 기울였다. 간호사 구인공고를 지속적으로 내고, 급여나 복지 등의 처우도 우대하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도무지 지원자를 찾을 수 없었다.

비단 양평병원만 이런 게 아니다. 군(郡) 단위 의료취약지에 있는 병원은 의료인력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관련 기사: 응급의료 인프라 사라지는 지방중소도시…대책도 없이 엄포만 놓는 복지부>

어렵게 인력을 충원해도 업무가 고되다 보니 금방 이직을 하기 일쑤다. 인력을 뽑아도 유지가 안되고, 자꾸 결원이 생기니 남아있는 간호인력의 업무부담은 더 커지고,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간호인력 구인은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양평병원 관계자로부터 취약지 지역응급의료기관이 처한 실태를 들어봤다.

양평병원 응급실 내부 모습. 사진 출처: 양평병원 홈페이지
양평병원 응급실 내부 모습. 사진 출처: 양평병원 홈페이지

"대도시 환자만 양질의 간호, 지방환자는 저질 간호 받아도 상관없단 말인가?"

간호서 못구해 응급실 운영 힘든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참여하라고 독촉 

"거의 상시로 간호사 구인공고를 내고 있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다. 힘들게 뽑아도 처우 등의 문제로 이직하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이라 너무 답답하다"

양평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전화 인터뷰를 하는 내내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되면서 병원 내부적으로 응급실을 폐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역민을 위한 응급의료기관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명감 때문에 매달 수천만원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운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간호인력 구인난은 최근 들어서 더 심해졌다고 한다. 인근에 요양병원이 속속 생겨나고, 지난 2014년 10월 300병상 규모의 국립교통재활병원이 개원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A씨는 "요양병원이나 국립교통재활병원은 급성기병원과 비교해 간호업무가 조금 더 수월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지원을 많이 한다"며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병원은 간호인력 구인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 병원 간호과장이 전국 각지의 간호대학을 찾아다니며 졸업생이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수도권 대형병원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인력 유출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건강보험공단 측에서는 수시 때때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하라며 재촉하고 있다.

A씨는 "건보공단 측에서 오는 2018년부터 정신병원과 요양병원을 제외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하면서 우리 병원에도 도입 독촉을 하고 있다"며 "지방 중소병원이 처한 간호인력 구인난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책 추진에 골머리를 앓을 지경"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의 체계적이지 못한 정책이 지역 간 의료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환자에게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나 간호등급제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정책이 지방 중소병원의 간호사 구인난을 부채질 하고 있다"며 "결국 대도시에 위치한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만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받고 지방의 환자들은 질 낮은 간호서비스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식"이라고 화를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도입이 수도권 대형병원 중심으로 이뤄지는 탓에 간병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지방 환자와 수도권 환자 간의 형평성 문제를 초래한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양평병원은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운영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응급실 전담 간호사를 충원해 지역응급의료기관 법정기준을 충족하고, 재평가를 거쳐 다시 재지정 받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A씨는 "어떡하든 간호사 인력을 충원해서 7월에 다시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재지정 받을 수 있게끔 모든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며 "외부에서 간호인력을 충원하지 못하면 병상을 축소해서라도 내부 간호인력을 응급실 전담업무로 돌려 법정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는 게 병원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재지정되면 응급의료관리료 수입을 간호사 처우 개선에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며 "지역의 유일한 응급의료기관으로써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는 병원 경영진의 생각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만일 양평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중단하면 지역의 응급의료 공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양평군은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노인 인구 비율이 높다. 작년 10월 양평군이 발간한 '2016년 양평군 주요통계' 소책자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인구 10만8,316명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만2,672명으로 20.93%를 차지했다. 같은 시기 전국 평균이 13.15%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치다.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만큼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환자도 많고, 응급의료 수요도 높다. 주말이면 양평병원 응급실 내원환자가 평균 200여명 정도에 달한다.
 
양평병원 응급실이 폐쇄되면 야간에 발생한 응급환자는 자동차로 30~40분 이상 거리에 있는 한양대구리병원이나 서울시 강동구에 있는 강동성심병원까지 가야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양평군에서도 양평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포기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지원방안을 찾을 테니 응급실 운영을 유지해 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우리도 뾰족한 대책 없어 답답하다"

보건복지부는 양평병원처럼 의료취약지에 위치한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 취소로 인한 응급의료 공백 사태에 손을 놓고 있다.

더 정확히는 사정은 뻔히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갑갑하다는 것이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이선식 사무관은 "적정 의료인력 확충은 지역응급의료기관 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문제가 있다"며 "일단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이 취소된다고 응급실을 폐쇄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해당 지자체와 협의해 법정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약지의 응급의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원 방법을 찾지는 못한 거 같다.

일각에서는 농어촌 지역 등의 취약지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인력에 수가가산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 사무관은 "그런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지는 않았다"며 "또한 현실적으로 취약지 병원의 응급실 전담 의료인력에 급여를 더 준다고 해서 과연 인력난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든다.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2016년 11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정춘숙, 윤소하 의원 공동주최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공청회가 열렸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2016년 11월 30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정춘숙, 윤소하 의원 공동주최로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공청회가 열렸다. 사진 제공: 전국보건의료노조

국가가 적정인력 확보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역할 해야

한편 지방 중소병원 뿐만 아니라 국내 병원 전반적으로 의료인력 부족이 만성화된 상태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지친 간호사들이 병원을 그만두거나, 더 나은 환경을 갖춘 병원으로 이직하는 일은 일상다반사가 됐다. 경험이 많은 간호사 대신 신규 간호사 인력이 그 자리를 메웠다가 얼마 못 버티고 빠져나간다. 간호업무 수행의 연속성과 숙련성, 책임감은 떨어지고 의료 질의 하락을 초래한다.

전국보건의료노가 지난해 3~4월 두 달간 전국 100개 병원에 근무하는 2만95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부서내 인력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82.6%에 달했다. 인력부족으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응답은 69.8%나 됐고, 사고나 질병에 노출됐다는 응답도 70.8%였다.

병원의 적정인력 확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가가 적정인력 확보를 책임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지난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 

특별법은 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고용해 유지할 수 있도록 인력기준을 수립하고 적정한 인력 배치와 고용확대를 위한 지원 등의 정책을 국가가 책임지고 추진하라는 게 핵심이다.

국가가 주도해 종합적인 의료인력 정책을 수립하고, 안정적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책임지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 온 보건의료노조는 "의료인력의 확충 없이는 과중한 간병비 부담을 없앨 수 있는 보호자없는 병원등 주요 사업자체가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사장될 수도 있다"며 "병원인력문제는 국가가 법과 제도로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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