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전국수련병원 수련평가 설문조사 결과 공개...환자안전 위협하는 노동학대 같은 수련환경

[라포르시안] 주당 평균 10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일주일에 4회 당직근무를 선다. 그런데 급여는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다.

이 정도 근무환경이면 노동착취나 다를 바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 병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의사들을 상대로. <관련 기사: [편집국에서] ‘전공의 잔혹사’는 어디에서 비롯됐나>

무엇보다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환자안전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살인적인 근무환경에 시달리는 전공의가 수면부족 등으로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투약오류 등의 의료과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기동훈)가 31일 '2016 전국수련병원 수련평가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대전협의 이번 설문조사는 전공의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실시한 첫 번째 수련병원평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조사는 수련중인 전공의 수를 고려한 병원 별 규모로 나눠 ▲100명 이내 전공의 수련병원(16개) ▲100~200명 전공의 수련병원(29개) ▲200~500명 전공의 수련병원(16개) ▲500명 이상 전공의 수련병원(5개) 등 모두 4개 그룹별로 나눠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비슷한 규모의 수련병원 내에서도 수련환경이 크게 차이가 났다. 특히 당직비 관련 문항에서는 1위 병원과 맨 끝 순위 병원 간 7배까지 차이가 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수련병원의 주당 근무시간이 80시간을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500명 이상 전공의 수련병원의 주당 근무시간은 가톨릭중앙의료원이 105시간으로 가장 길었다. 이어서 삼성서울병원 102.6시간, 세브란스병원 101.9시간, 서울대병원 92.0시간, 서울아산병원 92.0시간 등의 순이었다. 

200~500명 전공의 수련병원의 경우 가천대길병원이 112.7시간으로 가장 길었고, 다음으로 경북대병원 100.2시간, 충남대병원 99.1시간, 아주대병원 97.5시간, 전북대병원 96.8시간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영남대병원(73.6시간)과 부산대병원(77.0시간)은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80시간 미만으로 가장 짧았다.

4개 그룹에서 80시간을 넘지 않는 병원은 각 그룹별 상위 1~3위 정도에 불과했다.

일주일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4개 그룹에 속하는 대다수 병원에서 5시간 정도였다. 눈에 띄는 점은 수련병원의 규모와 수면시간이 반비례 한다는 점이다. 500명 이상 전공의 수련병원에서 수면시간이 가장 긴 서울아산병원이 5.8시간이었고, 200~500명 전공의 수련병원은 6.3시간(영남대병원), 100~200명 전공의 수련병원은 6.4시간(을지병원), 100명 이내 전공의 수련병원은 6.6시간(대동병원)으로 나타났다.

한끼 평균 식사시간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4개 그룹의 한끼 평균 식사시간은 병원에 따라 30~60분으로 편차가 컸다. 500명 이상 수련병원에서 평균 식사시간이 가장 긴 가톨릭중앙의료원(52분)과 가장 짧은 서울아산병원(30분) 간 22분 정도 차이를 보였다. 

200~500명 수련병원은 인하대병원(32분)과 영남대병원(49분) 간 17분 차이가, 100~200명 수련병원에서는 순천향대천안병원(29분)과 동아대병원(55분) 간 26분 차이가, 100명 이내 수련병원에서는 예수병원(35분)과 대동병원(60분) 간 25분 차이가 났다. 4개 그룹 전체에서 한끼 평균 식사시간이 가장 짧은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가장 긴 대동병원과 비교해 한끼 평균 식사시간이 2배 이상 짧았다.

전공의들의 월평균 실수령액 조사도 이뤄졌다.

4개 그룹에 속하는 수련병원 간 월평균 실수령액 편차도 컸는데, 조사대상에 포함에 전체 병원 중 가장 많은 곳과 가장 적은 곳 간에 최대 130만원 정도 차이가 벌어졌다.

500명 이상 수련병원 5개 중에는 서울대병원이 359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서울아산병원 351만원, 삼성서울병원 349만원, 가톨릭중앙의료원 349만원, 세브란스병원 334만원 순이었다.

200~500명 수련병원 중에는 전북대병원이 345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부산대병원이 267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100~200명 수련병원에서는 분당서울대병원이 373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동아대병원이 280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100명 이내 수련병원에서는 춘천성심병원이 369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대동병원이 243만원으로 가장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월평균 실수령액이 가장 많은 분당서울대병원(373만원)과 가장 적은 대동병원(243만원) 간 금액 차이는 130만원이었다. 

수련과 관련 없는 업무비중 10~25% 차지

당직근무와 관련된 수련환경은 상당히 열악했다. 아직도 주당 평균 4회나 당직을 선다는 병원도 있었고, 지급하는 당직비 수준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병원이 많았다.

주당 평균 당직근무 횟수는 적은 곳은 1.2회(원광대병원), 많은 곳은 4회(가천대길병원)로 큰 차이가 났다. 500명 이상 수련병원 중에는 서울아산병원이 1.9회로 가장 적었고, 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각각 2.8회로 조사 대상에 포함된 병원 가운데 가장 많았다.

주말 하루 평균 당직비도 조사했다. 100명 이내 수련병원에서는 가장 많은 강릉아산병원(12만4670원)과 가장 적은 대동병원·강동경희대병원(각각 1만7500원) 간 약 7배 정도 차이가 났다.

100~200명 수련병원에서는 강북삼성병원(10만5960원)과 동아대병원(2만200원) 간 약 5배의 차이를, 200~500명 수련병원에서는  아주대병원(8만9410원)과 고려대구로병원(1만7160원) 간 약 5배 차이를 보였다. 500명 이상 수련병원의 경우 가톨릭중앙의료원( 15만3850원)과 서울대병원(7만8060원) 간 2배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평일 하루 평균 당직비는 100명 이내 수련병원에서는 가장 많은 강릉아산병원(8만2000원)과 분당제생병원(1만5000원)으로 약 5배 차이를 보였다.

100~200명 수련병원에서는 강북삼성병원(7만3940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1만6670원)으로 약 4배 차이가, 200~500명 수련병원에서는 아주대병원(7만7980원)과 가천대길병원(1만2590원) 간 6약 차이가, 500명 이상 수련병원의 경우 가톨릭중앙의료원(10만9230원)과 서울대병원(4만6340원) 간 2배 정도 차이가 났다.

주치의 역할을 하는 경우 환자를 한 번에 평균 몇 명이나 담당하는지도 조사했다. 100명 이내 수련병원의 경우 가장 많은 강원대병원이 8.3명, 가장 적은 광주기독병원이 28.3명으로 약 3.4배 차이가 났다.

다른 규모의 수련병원 그룹에서도 평균 2배 정도 차이를 나타냈다. 다만 500명 이상 수련병원에서는 가장 많은 세브란스병원(16.6명)과 가장 적은 서울대병원(12.9명) 간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중 전공의 수련과 관련 없는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을 얼마나 되는지 묻는 질문도 있었다. 수련병원의 규모에 크게 상관없이 대부분의 병원이 10~25% 대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인 병원은 가천대길병원으로 29.3%에 달했다.

설문조사 결과와 관련해 대전협은 “전공의법 시행 전부터 대통령령으로 8개 항목 개정 등 수차례 수련환경 개선이 주장되어 왔지만 아직도 주 80시간 이상 근무 병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또한 업무시간을 줄이더라도 수련과 관련 없는 업무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교육의 질 저하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와 전공의 수련평가위원회의 적극적인 조사와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계기로 전공의들이 수련과정 평가에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공의 수련환경 조사 평가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전공의 수련환경평가 및 만족도 결과는 전공의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전공의들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수련환경과  만족도를 조사해 발표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전공의들이 수련과정 평가에 참여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며 "이번 조사가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져 실제 전공의 수련환경개선에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전협 기동훈 회장도 “첫 시도인 만큼 여러 번의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조사를 진행했다"며 "이번 설문조사가 본래 취지를 잃지 않고 계속 이어져 대한민국 수련환경 개선과 국민안전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대전협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닥터브릿지.com' 사이트를 병원별, 규모별 순위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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