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연구원장)

[라포르시안] 흔히 의료서비스 분야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국내 병원은 노동집약이 지나쳐 '노동학대 산업'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다. 간호사 업무 쪽의 노동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열악하다. 높은 이직률과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가임기에 있는 간호사들이 순번을 정해 임신하는 '임신순번제'와 임신 중 야간근무까지 담당해야 하는 상황은 모성학대에 다름 아니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에 가장 무관심한 분야가 바로 보건의료 쪽이다. 

병원의 만성적인 인력부족은 장시간 노동으로 연결되고, 이로 인해 병원노동자의 업무집중도가 떨어지면서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안이다. 의료인력 부족에 따른 문제로 병원 현장에 아우성이 넘치지만 누구도 듣지 못한다. 의료인력 문제는 늘 보건의료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뒷전에 밀려 있다. 병원 건물과 시설, 장비의 문제만 보이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의 고통은 보지 못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수년 전부터 적정 의료인력 확충 문제에 집중해 왔다. 병원에서 ‘노동존중’ 환경이 조성돼야 ‘환자존중’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서 지난 2012년 ‘보건의료인력특별법’을 처음으로 준비해 국회에서 발의까지 됐다. 그러나 제대로 논의조차 못한 채 밀리고 밀려 지금까지 왔다. 다행히 여기저기서 ‘이제 때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인력 문제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7일 보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연구원장을 만나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 보건의료노조는 요즘 '기승전 인력'이다. 의료인력 문제에 왜 이렇게 집중하나.
 
= 다른 산업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심한 이직률을 보이는 곳이 있을까 싶다. 취업 후 1년 만에 대학병원의 이직률이 평균 10~12% 정도이고, 중소병원은 최소 50%에서 최대 100%에 달한다. 병원사업장은 임금피크제가 필요없을 정도로 이직률이 높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직률을 낮추기 위한 인사∙노무관리나 모성친화적인 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과연 노동과 인간존중과 있는지 의문이다. 가장 사람 중심, 생명 중심이어야 할 곳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이 방치되고 있다. 이젠 정말 노동존중이 없는 의료를 바꿀 때가 됐다. ‘환자중심, 노동존중 병원’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
 
-  수년 전부터 '보건의료인력특별법' 제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대 국회에서는 법 제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나.
 
= 얼마 전 국회에서 보건의료인력특별법 제정에 관한 토론회를 할 때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이제 때가 왔다"는 거였다. 그동안 특별법안 발의 이후 보건의료노조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인력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끊임없이 인력 문제를 강조했더니 '보건의료노조는 기승전 인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 덕분에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에서 인력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20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관련 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특별법안의 취지는 인력문제를 더는 시장과 개별병원에 맡겨놓지 말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종합계획 수립, 실태조사 연구, 인력심의위원회 구성과 보건의료인력원(가칭) 설립, 그리고 보건의료노동자에 대한 복지 지원을 하자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다행히 법안을 발의한 윤소하, 정춘숙 의원과 복지부 간 긴밀한 협의가 진행 중이다. 복지부도 이러한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다.
 
- 조기대선을 앞두고 지난 2월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대선 정책요구안'을 확정했다. 여기에도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을 통해 보건의료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 올해  대선 의제와 보건의료 노사 간 산별교섭의 목표와 의제가 같이 관통한다. 보건의료산업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사회적 의제를 가지고 산별교섭과 노사정 협의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 인력특별법 제정과 모성정원제 도입으로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 현재 주요 대선후보 캠프 측과 대선 공약화를 위한 정책협약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보건의료노조라는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왜 반드시 산별노조, 산별교섭이어야 하는가.
 
=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가장 고귀한 산업인 보건의료산업에서 이상하게도 '사람, 노동, 인력'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보건의료와 노동이라는 두 단어의 핵심 가치는 바로 사람이 우선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맹목적인 '환자 우선'이라는 기치에 가려서 사람이 가장 우선이지 않은 곳이 바로 병원이다.

사실 국내 병원은 화려한 건물과 시설, 흰 가운 뒤에 숨겨져 있는 지나치게 전근대적이고 수직적이며 불평등한 조직문화, 의사중심의 폐쇄적 직장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개별병원의 노조 결성과 활동을 통해 병원 현장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런 문제점이 결코 개별병원 안에서 전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인 배경과 원인을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산업에서 근본적으로 사람과 노동이 존중되는 문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업별노조가 아니라 전체 산업을 대상으로 조직화된 산별노조가 필요하다. 그 답이 바로 보건의료노조이다. 보건의료노조와 같은 산별노조는 노동 3권을 기초로 산별교섭을 통해 보건의료산업에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나가는 사회적 디딤돌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병원 종사자의 노동을 존중하고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환자존중 노동존중' 병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산별노조의 역할이다.
 
- 지금까지 산별노조로서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 왔나.
 
= 산별노조의 기본 정신과 가치는 바로 '연대'에 있다. 그런 점에서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산업에서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이 아닌 이윤 중심의 민영화 정책을 막아내고, 나아가 의료전달체계 혁신, 지역과 직종별 고용형태의 차이를 넘어 돈보다 생명이 우선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004년 첫 병원노사 간 산별교섭을 통해 노동조건 저하없는 주5일제와 산별 최저임금을 도입했고, 2007년 산별교섭에서는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노사간 합의를 이끌어 냈다. 또한 2009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급식 금지, 보호자없는 병원 만들기 사업 추진 등의 합의를 통해 왜 산별교섭이 필요한가를 여실히 입증했다. 만일 기존과 같은 개별병원 노사교섭이었다면 도저히 이끌어 낼 수 없는 의제였다.
 
병원 노동환경의 문제도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왔다. 매년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를 통해 의료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외부로 드러냈고,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공론화를 했다. 비인간적인 간호사 임신순번제 문제를 지속적으로 들춰냄으로써 보건의료 현장의 인력부족 문제의 심각성를 알렸다. 메르스 사태 때는 정부의 부실한 방역체계와 공공병원의 신종감염병 대응 시설 및 인력 부족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공공의료 확충과 인력 확충의 필요성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 병원 산별교섭에서 책임감과 대표성을 지닌 보건의료노조의 카운터 파트너가 없는 상황이다. 병원 사업장의 특성이기도 한데,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 그동안 꾸준히 산별교섭과 노사공동포럼 등을 통해 산별교섭의 필요성과 노사공동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나마 참여정부 시절에는 산별교섭이 안정적으로 진행됐지만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많이 침체됐다.이번 촛불혁명 이후 진보적 정권교체가 된다면 산별교섭이 또 한 단계 확대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보적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한 노동시장 이중화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으로 노사정 의 사회적 대화와 산별교섭이 활성화 될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되면 보건의료인력 충원을 기본으로 높은 이직율 해결, 일과 가정의 양립방안, 모성정원제, 노동시간 단축과 교대제 개선, 감정노동 해결 등을 위해 보건의료산업 노사와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자고 제안 할 것이다.

- 2015년 말 을지대병원 노조에 이어 작년에는 용인정신병원 노조와 서울시 각 자치구의 정신건강증진센터 종사자들이 설립한 서울시정신보건 노조가 생겼다. 보건의료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 확대 목표와 전략은.
 
= 우리나라 전체 산업의 노조 조직률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300인 이상 사업장은 조직률이 60% 이상이다. 결국 노조 조직률울 높이는 관건은 중소영세 사업장과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다. 병원계도 3차 대형병원과 공공병원은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중소영세병원이다. 다행히 지난해 용인정신병원과 서울시정신보건지부 등 조직확대 사업에서 큰 성과를 내 자신감을 얻었다. 게다가 국제산별노조인 '유니 글로벌 유니온'(UNI Global Union)으로부터 요양보호사의 조직화 등에 지원을 받게 됐다. 노조 조직률 확대를 위한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민주노총과 함께 노조 조직률 30%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역별로 공공병원, 3차 병원 등을 전략병원으로 선정해 조직화에 힘을 집중하고, 대학병원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조직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동네의원의 경우 사업장 특성상 조직화가 가장 어렵다. 일단은 간호조무사협회와 함께 동네의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에 집중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원의사단체와 의사협회가 상생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 메르스 사태를 통해 삼성서울병원에 3천여명의 비정규직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이 감염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유행에 따른 공중보건 위기 대응보다 수익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서울병원에 노조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해본다.
 
= 재벌개혁의 핵심은 노조와 함께 우리 안의 문제를 풀어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를 겪고 난 이후 제대로 혁신하고자 한다면 노조부터 인정하고 산별교섭의 장으로 나와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할 때 국내 최고의 병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삼성서울병원이 하는 개혁은 내부에만 머물고.있다. 병원 안에서 우리만 잘하겠다는 건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외부와 소통과 협치를 통해 풀어야 하는데 문제가 있을 때 일방적으로 안에서만 해결하겠다는 건 진정한 개혁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이제는 전근대적인 무노조 경영 노선을 과감히 버리고 노조를 인정하면서 보건의료노조와 진정한 산별교섭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할 때 바로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구호가 실현된다.
 
- 오는 2018년이면 보건의료노조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이제는 양적 확대에서 질적 확대로의 전환이 필요할 거 같은데.
 
= 그 일환으로 창립 20주년을 앞두고 '정책연구원'을 새롭게 발족할 예정이다. 정책연구원은 앞으로 보건의료노조가 추진해야 할 정책 아젠다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책연구원장을 맡아 현재 출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구원 출범을 계기로 산별노조운동의 진정한 가치 실현과 외연 확장을 위한 중장기 발전전략을 모색할 계획이다. 또한 법률원, 교육원, 복지 사업단 등 전문 부설기관 설립과 독자회관 건립 준비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촛불혁명'으로 승화됐다.
 
=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광화문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촛불혁명은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와 사회대개혁을 원하고 있다. 보건의료계도 그동안 신자유주의와 보수정부 10년 동안 만들어진 적폐를 청산하고 진정으로 돈보다 생명이 우선인 보건의료산업을 만들어 가기 위해 힘을 모아야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핵심 키워드는 돈보다 생명, 의료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좋은 일자리 창출, 산별교섭,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을 실현하는 것이다. 촛불이후 탄핵 인용과 정권교체로 이어지고, 삼성서울병원의 무노조 경영 철회와 노조 설립,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보건의료노조 간 합의로 보건의료산업 최저임금 1만원 도입, 대학병원 환경미화원 등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의 희망찬 소식이 속속 들려오는 2017년의 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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