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소득 보장하는 '상병수당' 없기 때문..."한국사회 불평등 문제 해결 중요한 수단으로 이해해야"

[라포르시안] 건강보험의 상병수당제도 도입 논의에 물꼬가 터졌다. 이제 막 공론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그러나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고사하고, 아직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 갈 길이 멀다.

지난 24일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으로 건강보험 상병수당 현실화 방안을 모색하는 '환자포럼'이 열렸다.

상병수당이란 업무상 질병 이외에 일반적인 질병 및 부상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 또는 임금을 현금수당으로 보전해 주는 급여다. 업무와 관련해 질병 및 손상이 발생했을 때 보장해주는 산재보험과는 다른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에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법적 근거가 마련된 지는 오래됐지만 거의 사문화 된 규정이나 다를 바 없다. 질병에 따른 의료비 보인부담 보장도 60% 중반에 못 미치는 데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까지 보장하기에는 아직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가 사회보장제도로써 본연의 역할을 다 하려면 상병수당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보장성은 큰 병에 걸렸을 때 '재난적 의료비' 폭탄을 안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9월 발행한 <보건사회연구>지(誌)에 게재된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가구경제에 미치는 영향’(우경숙 한양대학교 박사후과정·신영전 한양대학교 교수) 보고서에 따르면 중증질환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전세를 축소하거나 재산을 처분한 가구, 의료비 조달을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가구 등을 합하면 30~40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적 의료비로 인해 의료빈곤층으로 전락할 경우 직장을 잃거나 노동력 저하로 인한 가계의 수입 감소라는 이차적인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곧 사회보장이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질환과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건강불평등과 소득의 양극화를 고착화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2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신촌역 인근 르호봇G캠퍼스에서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주최로 제6회 ‘환자포럼’이 열렸다.
지난 2월 24일 오전 10시부터 신촌역 인근 르호봇G캠퍼스에서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주최로 제6회 ‘환자포럼’이 열렸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함께 상병수당 도입이 절실하다. 진료비에 대한 직접적인 부담 완화와 동시에 질환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로 감소된 가계 소득을 보전해주는 상병수당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가천대의과대학 임준 교수(예방의학과)는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엄밀하게 말해서 사회보험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적용 대상의 보편성 등을 제외하면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데에 심각한 장애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대부분의 나라는 산재보험과 같이 의료보험에서 소득보장을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한국처럼 건강보험에서 소득보장을 하지 않는 나라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데,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진료비 할인제도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도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표 출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주요국의 상병수당제도 현황 고찰 및 시사점 연구' 보고서
표 출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주요국의 상병수당제도 현황 고찰 및 시사점 연구' 보고서

어떤 방식으로 상병수당 제도를 도입해야 할까.

앞서 상병수당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유럽 등의 선진국을 보면 상병수당의 운영 형태가 크게 두 가지다. 건강보험 방식이거나 사회보장 프로그램 방식이거나.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 2015년 작성한 '주요국의 상병수당제도 현황 고찰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상병수당을 건강보험의 현금급여로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 일본, 핀란드, 프랑스, 아이슬란드 등이다.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국가는 캐나다, 호주, 대만, 스웨덴, 영국, 벨기에, 뉴질랜드, 체코, 덴마크, 스페인 등으로 파악됐다.

각 국가들의 상병수당 적용대상은 기본적으로 운영형태에 따라 결정된다. 건강보험의 현금급여로 상병수당을 제공하는 국가들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적용 대상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국가 중 사회보험료(고용, 실업, 노동, 사회보장분담금 등)를 재원으로 운영할 경우에는 사회보험에 가입된 피보험자를, 조세를 재원으로 운영할 경우에는 세금부과가 가능한 소득이 있는 국민을 상병수당 적용대상으로 한다.

상병수당 지급 기간은 짧게는 4주부터 길게는 78주까지 국가들마다 다양하다. 독일의 경우 최장 3년 동안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일본은 1년 6개월, 스웨덴은 15개월 동안 364일, 대만은 6개월 등이었다.

상병수당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방식은 소득에 일정률을 지급하는 정률제 방식과 소득에 상관없이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정액제 방식 등 두 가지다.

독일, 일본, 스웨덴,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벨기에, 체코, 덴마크, 스페인, 대만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률제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정액제 방식을 운영하는 국가는 호주, 영국, 뉴질랜드, 아이슬란드 등 일부 국가에 그친다. 정률제 방식을 적용하는 국가의 상병수당 적용률은 이전 평균소득의 60~80% 수준이다.

다른 국가들의 상병수당 운영 형태를 참고할 때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의 현금급여 방식으로 상병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가천대의과대학 임준 교수(예방의학과)가 '우리나라 건강보험 상병수당제도 도입에 관한 검토'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가천대의과대학 임준 교수(예방의학과)가 '우리나라 건강보험 상병수당제도 도입에 관한 검토'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있다.

임준 교수는 "상병수당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질병 및 손상으로 인하여 소득손실이 발생하는 모든 대상자를 포괄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급여수준은 중장기적으로 산재보험의 휴업급여 수준인 평균임금의 70% 수준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 재정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급여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안했다.

상병수당 도입시 소요되는 재정은  2인 가족의 최저생계비, 최저임금, 통계청 발표 평균임금, 노동부 발표 평균임금 등을 고려할 때 1조4190억원에서 2조8225억원 사이가 들 것으로 추정했다.

임 교수는 "상병수당제도의 도입은 단지 하면 좋은 제도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더 이상 질병으로 인한 빈곤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최소한의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점을 인식하고 전향적인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 상병수당 도입 논의 최적기"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누적흑자가 20조원이 쌓여있는 지금이 상병수당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최적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환자포럼의 패널로 참석한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은 "지금은 의료비로 인한 재난적 상황 뿐만 아니라 와병으로 인한 소득감소로 인한 빈곤층 추락을 막을 수가 없는 상태"라며 "소득보전이 안되는 관계로 빠른치료, 수술적 치료 등이 발달하고, 재활 및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왜곡되고 있으며, 적정진료 및 근거중심의학이 자리 잡지 못하는 기형적 의료구조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은 "현재 2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 흑자는 전적으로 가입자의 부담강화 및 보장성 악화에 따른 결과로 조속히 의료비 절감에 사용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있으나, 그간 건강보험 적자 및 재정부담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어진 상병수당의 도입이 이제는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제 우리나라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함께 상병수당 도입을 실질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지적했다.

오 위원장은 "현재 병원비 보장도 빈약한 상황에서 상병수당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으나 질병으로 인해 병원비와 소득 단절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므로 공적 보건의료체계는 두 부담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상병수당 도입을 비급여의 급여화(및 지불제도 개혁),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보험료 부과체계 개혁 등 전체 보건의료체계 개혁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며 "보건의료 이해집단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 가입자와 의료공급자의 협력을 도모해 제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이번 포럼을 계기로 앞으로 상병수당 도입 공론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 대표는 "건강보험 보장율이 높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할 때 상병수당 도입의 우선순위와 적용대상·자격기준·지급기간·지급수준과 재원조달 방법 등 사회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의제들이 많다"며 "오늘 환자포럼이 부디 우리나라에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하는 마중물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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