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응급실과 분만, 중환자실 등의 수가를 인상하는 이른바 ‘'필수의료 수가개선 실행계획'을 의결했다. 이번에 의결된 실행계획이 오는 2월 중순부터 시행되면 중환자실 전담의 가산금을 비롯해 응급의료관리료, 소아 양간 외래진료 가산, 자연분만 수가 등이 지금보다 크게 인상된다. 여기에 소요되는 건강보험 추가 재정만 1400억원이 넘는다.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개선 방안을 마련한 이유는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야간에 병원을 찾는 소아환자를 위해 외래진료 활성화를 유도하고, 응급실이 원래 목적인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분만시설이 없어 먼 지역까지 찾아가 원정출산을 해야 하는 산모들의 불편을 덜어주고자 함이다.

응급.분만.중환자실 등 이른바 필수의료 서비스 분야의 인프라를 확충하고, 활성화 시키겠다는 의미이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필수의료 시스템의 붕괴 현상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하면 너무 늦은 감도 있다.

현재 야간이나 주말, 휴일에 문을 여는 동네 병의원을 찾기 힘들다. 몸이 아플 경우 불가피하게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또 지방에는 분만시설을 갖춘 산부인과 병의원이 부족해 산모들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먼 지역으로 원정출산을 간다. 응급실은 또 어떤가. 지방 중소도시나 의료취약지에는 응급실을 갖춘 병원이 드물다. 있다고 하더라도 응급실 운영에 따른 비용부담과 전담 의료인력 확보가 어려워 제대로 된 응급실 기능을 못하는 실정이다.

중환자실의 운영 상황도 열악하다. 2011년 기준으로 중환자실 전담의사를 둔 의료기관은 86개로 전체 중환자실(307개)의 28.0%에 불과하다. 병원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를 배치하면 병원내 세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는 패혈증 사망자를 연간 수천명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데 왜 병원들이 중환자실 전담의를 두지 않는걸까. 당연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규정상 중환자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병상 1개당 면적이 10㎡(신생아중환자실은 5㎡ 이상) 확보해야 한다. 병상당 심전도 모니터와 맥박산소계측기, 지속적 수액주입기 등의 장비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 따른 수가는 터무니없이 낮다. 특히 전담의를 둘 경우 지급되는 가산금이 하루 8,900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시설과 인력 기준을  제대로 갖춰 중환자실을 운영할 경우 병상당 연간 8,000만원의 적자가 난다고 한다.

복지부가 마련한 필수의료 수가개선 방안이 시행되면 그나마 응급실과 분만시설, 중환자실 운영에 따른 병원들의 적자가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의 기대만큼 필수의료 인프라 확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소아 야간 외래진료 가산을 현행 30%에서 100%로 인상하더라도 이것만 바라보고 밤 8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문을 열 병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까. 추가로 드는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적자가 날게 뻔하다. 수가개선의 실효성은 차지하고 정부가 필수의료 영역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개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 안타깝게도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의료시스템 전반에 걸쳐 붕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병원들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더는 견디다 못해 문을 닫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동네의원들도 대형병원에 환자를 빼앗겨 죽을 지경이다. 저수가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진료만으론 경영이 어렵다보니 성형수술이나 피부과 진료처럼 비급여 쪽으로만 자꾸 눈을 돌린다. 지방의 대형병원들도 어렵다. 환자들이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자꾸 빠져 나가면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수도권의 일부 대형병원과 비급여 진료에 매진하는 병의원만 살찌우는 구조다. 경영적인 측면에서 의료기관간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필수의료 수가 개선뿐만 아니라 의료시스템 전반에 걸쳐 긴급 수혈이 필요하다. 일차의료 활성화와 의료전달체계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수가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사실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제도개선 노력 중 상당수는 의료보험제도 도입 초기에 당연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의료보험제도를 단기간에 도입·확대시키려는 욕심 때문에 ‘적정수가-적정부담-적정급여’란 기본을 무시하고 ‘저수가-저부담-저급여’란 편법이 동원됐다. 뒤늦게 그 폐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의료서비스에 필수적이지 않은 게 어디 있나. 아픈 환자에게 있어서 모든 의료서비스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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