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사라지는 시대 / 애비 스미스 런지 지음 / 곽성혜 옮김 / 유노북스 펴냄, 2016년

[라포르시안] 요즈음 대학에 다닐 무렵 만든 진료봉사 동아리의 40년 역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처음 동아리를 만들었을 때의 정신을 40년 뒤에 들어온 후배들에게 온전하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사물도 세월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인 것처럼 생각도 시대정신에 맞추어 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변화과정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 동아리를 만들 때부터 기록을 잘 보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었지만, 학교 사정 때문에 동아리방을 몇 차례 이전하는 가운데 많은 기록들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활동했던 회원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 회원들과 회원들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정리를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문화사학자이자 디지털 콘텐츠 큐레이터인 애비 스미스 럼지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는 이런 저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사라지고 없을 때 디지털 기억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로 이해되는 이 책의 원제목 “When we are no more: How digital memory is shaping our future”에는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의 기억이 미래에 어떻게 전해질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담았습니다. 특히 디지털시대를 맞아 개인 기억의 용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가 폭주하기 시작하면서 기억하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억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는 디지털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옛말대로 저자 역시 그 답을 과거로부터 구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불멸의 존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필멸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기억은 유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혹은 집단의 기억을 후세에 전하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적어도 인간의 영적 불멸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처음 개발한 기억을 후세에 전하는 방법은 구술입니다. 구술방식의 전승은 일단 인간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구술내용의 정확도라거나 구술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면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등, 여러 제한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억의 ‘외주화’가 가능해지면서 입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외주화’는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외부 장치에 위탁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초기에는 그림이나 기호로 표시되던 것이 문자를 발명하면서 기억의 보존이 보다 효율화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기록문화는 기원전 3,000년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수메르 문명이 남긴 것입니다. 그들은 갈대줄기(스타일로스)를 이용하여 점토판에 설형문자를 새겼습니다. 기원전 2,400년 전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를 이용해서 만든 일종의 두루마리 종이를 이용하였으며,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100년 무렵 양피지를 개발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400년 무렵 골편에 기록을 남긴 흔적이 있고, 기원전 800년에는 대나무를 잘게 쪼개서 글을 적고 가죽끈으로 이를 묶어 보관하는 죽간이 등장했으며, 기원전 105년에는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였습니다. 채륜의 종이는 당시 사용되던 제지술을 개량하여 다량생산이 가능한 근대적 방식을 적용했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문자의 발명에 이은 종이의 발명은 기억의 외주화에 두 번째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혁신은 인쇄술의 개발입니다. 금속활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하였습니다만, 금속활자를 이용한 서책의 대량생산에 성공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이야말로 기억 외주화의 세 번째 혁명이라고 할 만합니다. 디지털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보저장의 획기적인 확대는 네 번째 혁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디지털 기록과 인간의 기억이 결합을 운명적인 것으로 보고 디지털이 주도하게 될 앞으로의 세계에서 인간의 기억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의 기획은 저자가 근무하던 의회도서관이 1억번째 소장품을 들인 것을 기념하여 1997년 개최한 기획전이었다고 합니다. 전시된 물품 가운데 토마스 제퍼슨이 초안을 마련하고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로저 셔먼, 로버트 리빙스턴 등이 교정을 본 <독립선언문>의 초고가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여행에 지쳐 전시물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고 휘적휘적 지나치던 관람객들이 진한 검은색 잉크로 줄을 좍좍 긋고 행간에 휘갈겨 쓴 글씨를 알아보려고 전시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자는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50년 아니 200년 뒤에는 무엇을 전시하게 될 것인가. 실체가 없는 디지털 자료로 되어 있는 과거를 미래의 인류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큐레이터로서의 고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디지털 기억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책에 담아냈습니다. 그러다보니 구성이 다소 산만한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저자는 아직도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작은 걸음이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예언서가 아님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저 과거와 미래라는 기억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책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 기억의 심원한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이 지점에 도달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기억에 관한 발상의 전환이 어떻게 지식공유를 위한 기술과 맞물려 인간의 잠재력을 확대해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며, 디지털시대 기억의 풍요를 제어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가 직면하게 될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선택을 고민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로 건립한 이집트 알레산드리아 도서관.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됐으며 고대에 가장 큰 도서관으로 알려졌다.
새로 건립한 이집트 알레산드리아 도서관.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됐으며 고대에 가장 큰 도서관으로 알려졌다.

앞서 기억의 ‘외주화’가 발전해온 네 가지의 혁명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저자는 외주화된 기억, 즉 정보의 혁명을 주도했던 네 차례의 변곡점을 말합니다. 그 첫 번째는 메소포타미아의 글자 발달로, 이는 행정과 상업, 수집품의 전문적 관리를 목적으로 했습니다. 두 번째는 고대 그리스의 도서관 발달로, 이 도서관들은 지식 그 자체를 위한 지식을 육성하는 장소였습니다. 세 번째는 르네상스시기에 일어난 그리스와 로마 문예의 부흥과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이들은 서구가 현대사회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18세기 계몽운동으로, 이는 지식을 행위 동사로, 즉 진보하는 것으로 개조하고 국가의 책임으로 정보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까지 확대시켰다는 것입니다.

기억과 ‘외주화’된 기억, 즉 정보와 관련된 내용을 모두 9개의 장으로 구분한 저자는 첫 번째 장에서 디지털 기억시대의 도래에 따른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과연 디지털 기록이 인간의 기억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설명입니다. 디지털기억은 개인을 둘러싼 인적 물적 자원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가족, 친구들과 더 빠르게 연결되고 다양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이 너무 적은 것 못지않게 해롭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왜곡된 정보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하고, 폭주하는 정보들 가운데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때로는 이런 과정이 번거로워 정보의 취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매사에 긍정적인 듯합니다. 인류문명이 여기에 이를 수 있었던 것처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세계에 적응하는 세 가지 방식을 설명합니다. 첫째, 과거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해 더 많이 배우며, 둘째, 자연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복잡한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데이터 세계를 조직하고. 셋째, 암기와 검색과 회수에 관한 업무를 우리보다 뛰어난 기계에 위탁하고, 기계중심세계에서 번영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정서적이고 창의적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기억으로부터 조립하는 대로 본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분량의 디지털 기억을 검증하여 객관적인 사실로 정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2장으로부터 5장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인류의 기억이 탄생하는 순간으로부터 기억을 보존하는 기술이 발전해온 단계를 설명합니다. 물론 아담과 이브를 인용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만, 저자는 4만년전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의 정신활동을 물리적으로 기록한 것을 기억 외주화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정교하게 그려진 짐승과 새의 그림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인도네시아 등의 동굴벽에 남아 있습니다. 그밖에도 조개, 뼈, 금속, 상아 등으로 만든 장신구와 악기, 주물 등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 시절 만들어진 도서관은 단순하게 책을 보관하던 장소가 아니라 배움과 학문의 전당이었습니다. 즉, 기억의 보관과 확산을 주도하는 중심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실물 도서관 이외에도 기억술을 개발하여 기억의 궁전이라는 가상도서관에 정보를 쌓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역설적으로 문자의 발명이 기억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것입니다. “문자의 발명으로 그것을 배워서 쓰는 사람의 정신에는 망각이 자라날 것이다. 그들은 기억하는 훈련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12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크라테스의 경고는 기우에 불과하였습니다. 기억을 외주화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생물학적 기억은 작은 규모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 디지털 정보를 검색하는 기술에 의존하여 기억하기를 소홀히 하는 우리 역시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6장에서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외주 기억의 폭증을 다루었습니다. 지식을 소외시키고 ‘우리의 외부로’ 내보냈기 때문에 생긴 이런 현상에 대하여 저자는, 우리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내주고 그 대가로 외부 세계에 대한 어마어마한 통제력을 얻어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경고한 도덕적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음입니다. “현대문화 속에서 가장 강력한 가치의 보고는 흔히 도덕 가치의 담론과 거의 연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과학] 지식이다(230쪽)”라고 한 역사학자 스티븐 섀핀의 말은 음미해볼만 합니다.

7장과 8장에서는 기억의 생물학을 설명하였는데 기억이 드러내는 과거가 실제로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또한 감정은 이성을 좌우하기도 하는데, 우리의 뇌가 더 많은 정보를 수용하려고 애를 쓰는 만큼 새로운 정보에 폐쇄적이게 되는 역설이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기억은 경험의 축적이기도 하지만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상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기억이 세계를 ‘정확하게 그러하게’ 기록한다면 상상은 기억을 핵심적인 ‘마치 그러한 것처럼’으로 바꾸고, 경험을 추정으로 변형한다.(271쪽)”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미래를 잃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상상력보다는 경험에 더 의존하게 되는데, 이는 불확실성을 배제하기 위한 생존전략 때문일 것입니다. 상상하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9장은 기억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저자의 조언을 담았습니다. 책을 적지 않게 읽고 있는 저도 최근에 실감하게 되는 문제입니다만, 기억에 저장되는 정보의 내용보다는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어 있고 그것을 찾아내는 방법을 기억하려 애쓰는 경향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옮긴이가 요약한 것처럼 디지털 시대의 ‘정보 인플레이션’ 속에서 우리가 처한 위기는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수 있는 디지털 기억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와 그 디지털 기억의 소유권과 관리의 의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두 가지라는 점이 해결해야할 숙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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