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의 의료와 노동]

1만 7천여명에 이르는 전공의를 대표하는‘전공의노조’가 새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의 전공의 수련규칙 표준안에 따르면 ‘전공의’란 수련병원(의료기관)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일정기간 수련을 받는 의사로서 인턴 및 레지던트를 지칭한다.

전공의노조는 지난 1월 26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위원장과 6개 지역대표들을 선출한 후 표준근로계약서 투쟁 등 5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날 총회는 4대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제 16기 경문배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의 말처럼 ‘심정지 상태에 있던 식물노조가 심폐소생술을 통해 살아나면서 새로운 부활’을 알리는 역사적인 대회였다. 오랜 세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서 활동해온 한 사람으로서 이날 총회에 참석해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처음으로 ‘전공의’라는 명칭이 사용되었고, 1998년 3월 제 1기 전공의협의회가 출범했다. 그 이후 많은 선배 전공의들의 노력 끝에 2006년 4월 15일 전공의노조가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후 단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휴면노조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무려 7년 만에 ‘노조 재건 총회’가 개최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嘆)이다. 2006년 노조 깃발을 올렸지만 7년만의 1차 총회가 말해주듯 최소한의 내부체계를 갖추고 노조 이름으로 사업계획을 공식발표하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으로 보인다.

10만 8,000여명의 전체 의사면허 취득자 중 현재 진료활동을 하고 있는 의사는 8만여 명이다. 이중 병원에서 근무하는 봉직의는 4만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전공의 숫자는 1만 7천명, 전공의노조 정식 조합원은 아직까지 전공의 중 1∼2%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 의사 중에서 따져보면 전공의노조 조합원은 그 수가 0.2∼0.3%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공의노조 부활이 갖는 역사적·사회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 의사가 노조를 만들어 활동한다는 것이 더 이상 일회성 화제거리가 아니라 시대적 흐름이 되고있다. 하지만 병원들은 JCI 의료기관평가 국제인증을 받으면서 스스로 글로벌 스탠다드, 세계표준을 강조하고 있지만 의사노조를 포함한 노조 조직율 50%라는 노사관계에서의 글로벌 스탠다드는 애써 무시한다. 유럽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 천국이라는 미국조차도 대표적인 공공서비스노조인 SEIU에 4만 여명의 의사가 가입돼 있다. 일본도 의료계 최대 산별노조인 의노련에 3,000명 이상의 의사들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의사노조는 너무나 자연스런 흐름이다.

경향신문이 2011년 창간 65주년 특집기획 <한국 사회, 사회계약 다시 쓰자 - 8대 제안> 중 하나로 ‘노조 조직률 50%’를 제안한 바 있고, 지난 대선에서 진보 후보 공약 중에서 ‘세상을 바꾸는 4가지 50%’의 한 가지로 노조 조직율 50%를 실현하자는 내용이 포함된 바 있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율은 10%에 불과하다. 의사노조를 포함한 노조의 조직율을 50%로 높이는 것은 단순히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사회로 가는 길에서 있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이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핵심 과제이다.

전공의 노조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 맞춰 새롭게 출발하는 전공의노조에게 몇 가지를 당부하고싶다.

첫째, 노조활동이 성공하기위해서는 전임자 확보와 간부역량강화, 조합원 교육 등 활동의 중심축을 먼저 올바로 세워야한다. 노동운동의 격언 중에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을!’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간부(지도부)가 먼저 결단하고 나서야한다. 노조는 간부가 결단한 만큼만 나아간다. 그 결단의 출발은 노조 전임자 확보이다. 모든 노조들이 노조를 만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노조 전임자확보투쟁이다.

하지만 전공의노조는 조건상 쉽지않다. 전임자는 노조활동의 꽃이다. 이것은 노동법에 있는 타임오프 제도에 근거하여 노사간 협상을 통해 병원별로 숫자가 정해진다. 학생운동이 활성화될 때 5학년, 6학년들이 주요 역할을 했고, 시민단체들도 상근 활동가 간사제도를 통해 일상적인 활동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공의노조도 바쁜 근무시간과 제한된 수련기간만 탓하지 말고 레지던트 4년차를 넘어 5년차, 6년차가 나올 정도의 내부 결의가 모아질 때 노조는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다. 참고로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160개병원에서 300여명의 전임간부들이 활동하고 있다.

전임자 확보 노력과 더불어 무엇보다 간부 역량을 키워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창기 진행했던 ‘전공의노조 포럼’을 부활시켜 월 1회 진행하면 좋을 듯하다. 포럼을 통해 안으로는 간부, 조합원 학습과 역량강화를 꾀하고, 밖으로는 전공의노조가 하고자 하는 의제를 알려나가 우호적인 언론환경 조성과 노조의 사회적 존재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포럼을 통해 의사가 더 이상 특권계급이 아닌 전문직 노동자로서, 헌법에 보장된 당연한 권리인 노조를 결성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받고 사회적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공의 조합원들과 공유해야한다. 주요 선진국은 의사는 물론 판사, 경찰, 군인까지도 노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의사노조에 대한 근거 없는 의구심이나 거부감을 떨쳐내야한다.

조합비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대책이 필요하다. 현 규약상 조합비 기준은 너무 미약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곧 활동력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가는데 마음 간다. 우리나라 노조 조합비는 대부분 임금의 1 % 내외이다. 조합비가 많은 노조일수록 강한 노조의 기본을 갖추게 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총 조합원 4만 3천명에 조합비가 연 100억원에 이른다. 이 재정을 중앙과 현장이 50대 50으로 분담하여 대정부 활동과 각종 대외사업, 정책사업, 투쟁사업 그리고 현장 조합원과 함께하는 대중활동을 벌여나간다.

기회가 되면 현재 전공의노조라는 명칭보다 ‘청년의사노조’ 또는 ‘청년의사유니온’으로 개칭하여 시대적 트랜드에 맞고 국민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볼만한다. 참고로 요즘 노동계에서는 ‘청년유니온’이 뜨고 있다.

둘째, 전공의노조와 전공의협의회가 힘을 합쳐 근로시간상한제 등 총 12개 항목이 담긴 전공의 ‘표준근로계약’이 조속히 체결되는데 온 힘을 집중해야한다. 이 투쟁은 단지 전공의들의 수련환경과 근무환경 개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환자안전과 진료의 질을 높이는 것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최근 병원마다 CS를 강조하고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을 외친다. 병상증축과 외형확장, 고가장비 구입, 리모델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인건비를 단지 비용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가급적 기존 직원들에게 노동강도를 높이고 비정규직을 확대하여 인건비를 줄이려고 한다. 이런 정책으로 인해 학생이자 노동자라는 전공의들의 이중적 신분을 악용, 주 10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고, 병원노동자 또한 저임금 장시간 교대노동으로 인해 이직율이 20-30%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 보건의료노조와 전공의노조 요구사항 중 병원내 인권유린, 폭언, 폭행, 성폭행 근절이라는 요구가 공교롭게도 똑같은 것은 사람보다 외형적 성장과 경쟁에만 몰두하면서 잘못 형성된 병원 조직문화 탓이다. 

이런 병원계 흐름으로 인해 최근 2~3년 보건의료노조 산하 병원에서 발생한 파업의 주요 요구는 단순한 임금인상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높아져가는 건물, 화려해져가는 병원 시설, 비싼 기계장비 도입하는 수준만큼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투자하라는 것이다. 전공의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표준근로계약서도 사람에게 투자하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혹자는 전공의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향상되면 다른 직원들의 임금인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이것은 의사와 노동자를 분열시키려는 논리이다. 오히려 전공의들의 노동조건 개선은 전체 병원 직원들의 노동시간 단축과 근무환경개선, 병원 조직문화 개선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표준근로계약 체결에 소극적인 병원협회가 주관하고 있는 병원 신임평가  문제도 전면 재검토되어야한다. 병협 병원신임위원회는 병원 신임평가에 따라 전공의 정원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30년전인 1981년 보건복지부가 병원신임평가업무를 병협에다 이관한 결과로서 사실상 정부가 직무유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평가를 받아야 할 대상이 평가의 주체가 되는 기이한 모습으로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긴 꼴이다. 최근 쟁점이 되고있는 부실 의대및 병원, 부실수련문제는 병협이 주관하고있는 수련평가기구가 제대로 기능과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기존의 의료기관평가업무가 병협에서 새로 독립적으로 출범한 의료기관평가인증원으로 이관된 사례처럼 병원 신임평가와 전공의 정원결정권을 병원경영과 무관한 제 3의 독립기구로 이전하거나, 과도기적으로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위탁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럴 때 전공의들이 요구하고있는 전공의들의 과중한 노동과 업무를 제대로 평가하고 규제할 수 있으며, 병원 경영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환자입장에서 병원이 환자안전과 의료 질 향상에 나설 수 있는 병원신임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셋째 전공의노조 부활이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과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의료의 공공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한국 의료를 바로 세우는 기폭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요즘 시대적 화두는 단연 복지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고, 올해부터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를 맞아 의료보장성 확대와 수가인상, 의료공급체계 혁신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런 중요한 시기에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병원계와 의료계를 사심없이 제대로 대변할 조직이 없다는 것이다.

병원협회는 지나친 경영진 편향의 활동으로 과도한 로비단체로 규정되어있고, 의사협회 또한 그동안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활동으로 상당히 협소한 이익단체로 비쳐지고 있다. 의료계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던 인의협 활동이 침체된 이후 사실상 10만 의사를 포함 60만 보건의료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는 조직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청년의사를 대표하는 전공의노조는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현장에서 일하는 전체 의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해야한다. 이를 위해 전공의노조는 병원협회라는 사용자단체와 각을 세우면서 의사협회, 병원의사협회, 양대 노총과 긴밀히 연대하고, 시민단체 환자단체 등과 활발한 소통을 통해 의사와 다른 사회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공의노조 부활을 계기로 병원계에서는 조직별로 자기 정체성을 올바로 확립하고, 이를 기초로 새로운 세력 재편과 복지국가 의료보장 확대로 가기위한 열린 소통과 사회적 대화가 시작되어야한다.

사실 대다수 사람들이 병협과 의협의 차이를 구분 못할 정도로 지난 시기 의협은 일반 의사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또 다른 주요 직종협회인 간호협회 또한 간호교수협회, 간호관리자협회로 불릴 정도로 현장간호사들의 목소리를 지지옹호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의협과 간협이 병협과 병원 경영진 그늘 아래 있다는 평가가 그리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최근 직종협회들이 이런 평가를 뒤로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병협은 사용자단체이고 의협과 간협은 일반 전문직노동자단체이다.따라서 전공의노조 부활을 계기로 의협. 간협, 노조 등 보건의료 노동자를 대변하는 조직과 사용자를 대변하는 병협과는 구별정립 되어야한다. 그리고 필요시 노-사 대화, 복지부를 포함하는 노-사-정 대화구도가 명확하게 자리잡아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종협회가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하고, 의사 사회는 전공의노조에 이어 봉직의사노조, 병원의사노조가 조속히 만들어지고 활성화되어야 병원계의 올바른 세력재편과 노-사 또는 직종간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병원의 경영논리에 제동 걸 수 있는 건 노조뿐

택시 과잉공급을 배경으로 택시와 버스업계간에 벌어지고있는 대중교통 논란은 사실 우리 의료계의 미래이다. 묻지마 병상증축과 무한 경쟁, 의사성과급과 비정규직 확대등 병원계를 대재앙으로 몰고 갈 이런 야만적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고 한 호흡 가다듬으면서 이성적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강제 할 수 있는 것은 노동 3권을 가진 노조뿐이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경영논리에 ‘노’라는 할 수 있는 것은 의사노조, 보건의료노조뿐이다. 그리고 공동대안으로 <적정보장 -적정수가- 적정부담> 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제기하면서 경영투명성 확보와 비급여 철폐, 환자안전과 사람중심의 수가인상, 공공의료 확충 등을 함께 논의할 때 우리들의 대안은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보건의료 노사는 산별교섭을 정상화시키기위해 다양한 만남들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노사 모두의 공감을 끌어낸 말이 있다.‘똑같은 아젠다라 하더라도 노조가 하면 ‘투쟁’이 되고 병협이나 병원 경영진들이 하면 ‘로비’가 되지만 노-사가 함께, 환자.시민단체가 다함께 머리를 맞대면 그것은 ‘정책협의, 사회적 대화, 국민적 합의가 된다’는 것이다.

의료계의 젊은 피로 구성된 전공의노조 부활이 단지 전공의노조 찬반 논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의사노조 건설, 나아가 한국의료의 기본 틀을 새롭게 바꾸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병원계 구도와 세력을 새롭게 재편하는 계기로, 직종 협회의 자기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태초에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 노신)의 말처럼 언젠가 할 일이면 오늘하고 누군가 할 일이면 내가하자. 의사노조 역할이 빛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전공의노조의 아직은 작지만 당찬 활동을 기대해본다.

이주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노동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국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 단장과 민주노총 중앙위원,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 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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