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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과거로부터의 충격에 시달리는 의료시스템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3.01.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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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Trauma). 심리학에서 과거에 겪은 정신적, 신체적 충격이 현재까지 미치는 '정신적 외상'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어쩌면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겪고 있는 증상이다.

지금의 의료계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문제가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의료전달체계 왜곡에 따른 대형병원 환자쏠림과 일차의료의 위기, 산부인과와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의 붕괴, 3분진료와 과잉진료, 리베이트, 부실의대 문제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겼을까. 물론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계속 누적돼 오다 임계점에 이른 것이다. 지금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조금만 더 열과 압력이 가해지면 ‘쾅’하고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지금 드러난 의료계의 문제점은 대부분 ‘과거로부터의 충격’이다. 지나간 어느 시점, 혹은 어느 기간부터 무언가 잘못됐다. 중요한 몇 가지만 되짚어 보자. 

우선 의료전달체계 왜곡과 필수의료의 붕괴, 3분진료와 과잉진료 문제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너무 멀리 갈 필요는 없다. 1977년 쯤이 적당할 것 같다. 그 해에 사회보험방식의 의료보험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지금의 건강보험제도의 시초다. 당시 군사정부는 정치적 이유 등으로 사회보장제도 도입 필요성을 느꼈고, 그 결과물이 의료보험제도다. 직장의료보험으로 시작해 불과 12년만인 1989년 지역의료보험을 아우르는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너무 신속하게 이뤄졌다. 여기서 문제가 비롯됐다.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하자니 보험료를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까닭에 보험수가도 낮게 책정됐다. 당연히 의료보험의 보장성도 낮았다. 이렇게 해서 ‘저수가-저부담-저급여’란 3저 시스템이 생겨났다. 물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3저 시스템은 초기에 의료보험제도를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폐해도 만만찮았다. 수가에 따른 급여행위로 적정 수익을 담보할 수 없었던 의료기관들이 성형수술 등 비급여 진료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환자를 빨리빨리 많이 진료하는 ‘박리다매’식 과잉진료도 촉발시켰다. 저수가로 돈은 안되고 부담만 큰 산부인과, 응급의료 서비스 같은 필수의료 영역을 위축시켰다.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 문제도 어쩌면 여기서 비롯됐다. 저수가 체계를 지속하기 위해 정부가 사실상 이런 불법적 관행을 묵인한 측면도 있다.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 거품 중 일부가 불법 리베이트로 의료기관과 의사들에게 돌아갔다. 제약사의 대관로비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뒤늦게 바꾸겠다고 제네릭 약가를 대폭 인하하고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했다. 다 좋은데 저수가는 그대로다. 문제 발생의 뿌리는 그대로 두고 곁가지만 쳐내니 언제라도 새로운 줄기가 나올 수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서남대학교 의대의 부실한 의학교육도 과거로부터의 충격이다. 서남대 의대 사태는 1990년대 중반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각 지역별로 엄청난 공약 선물을 안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의대신설 약속이었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목이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간 무려 9개 의대가 신설됐다. 서남대의대도 그 중 한 곳이다. 의료인력 수급전망과 교육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별 균형 발전이란 정치적 고려 속에 난립하다시피 생겨난 신설 의대 문제가 이제야 곪아 터진 것이다.

우리가 받아야할 과거로부터의 충격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 충격파를 조금씩 느끼기만 했을뿐 본격적인 충격이 전달되지 않은 것도 많다.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있지는 않나 싶다. 현재 추진되거나 검토되고 있는 새로운 의료제도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자.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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