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섭 기자
- 승인 2021.12.28 13:45
기면증에 걸리면 주간에 졸음을 의지로 조절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른다. 자고 일어나는 것은 뇌의 깊은 곳 시상하부에서 나오는 신경 단백질인 하이포크레틴이라는 물질에 의해 조절된다. 기면증에 걸리면 하이포크레틴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어 잠에 들고, 꿈을 꾸고, 일어나서 각성을 유지하는 조절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당연히 하이포크레틴을 어느 정도로 공급하거나 유지하는 것은 기면증을 완치에 이르게 하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시도되었다.
기면증의 원인인 하이포크레틴은 1980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과 UCLA 대학의 서로 다른 두 교수 팀이 비슷한 시기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40년 이상 하이포크레틴을 기면증의 치료에 이용하려는 노력이 계속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 하이포크레틴을 이용한 치료는 임상 연구가 아직 초기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최근 2021년 10월에 기면증에 가장 확실한 치료방법으로 연구되어오던 TAK-994 약제가 FDA로부터 안정성 문제를 제기 받아 임상 2상 연구가 중단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토록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것은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 듯하다.
하지만, 기쁜 소식도 있다. 이전에는 뇌를 각성시키는 방법으로 기면증을 치료하여 모다피닐(프로비질 등)이나 아르모다피닐(누비질)이 국내에서 사용되었는데 이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인체의 히스타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여 기면증의 증상인 주간 졸음과 탈력 발작을 조절하는 피톨리산트 제제의 약(일명 와킥스)이 국내에 시판될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와킥스가 이미 시판되어 처방 중으로 2020년에는 와킥스의 주간 졸음 증상 조절이 모다피닐과 비교해 차이가 없고, 탈력 발작에 사용하던 기존 약보다 효과적이라는 연구 보고가 발표되었다. 곧 국내에도 시판될 예정인 피톨리산트는 탈력 발작이 동반되어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처방했던 1형 기면증의 항우울제 사용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사실, 기면증에 있어서 항우울제의 사용은 치료 초기,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깨뜨릴 만큼 설명하기 쉽지 않은 치료방법이다. 우울감과 별도로 탈력 발작을 조절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것이 환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탈력 발작 조절을 위해 항우울제에 있는 세로토닌이 필요하고 이를 공급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울하지 않는데도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외에도 실제로 미국에서 기면증 치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 중에 소디움 옥사베이트(자이렘)이라는 약제가 있다. 이 약은 기존 약과는 달리 숙면에 도움을 줌으로써 다음 날 주간 졸림을 방지하는, 어찌 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기면증을 치료하는 약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시판되지 않고 향후에도 이 약을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도 기면증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수면을 유지하는 것이다. 기면증은 수면의 질이 좋지 않고 수면시간이 불규칙해지기 쉬운 병이다. 낮에 조절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졸리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불면증으로 고통받기 쉽다. 하지만, 건강한 체력과 더불어 질 좋은 잠을 밤에 규칙적으로 충분히 자는 것이야말로 주간에 증상을 조절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글: 서울 드림수면의원 이지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