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운동본부 소송단 모집에 6명 참여…법조계 "승소 가능성 높다"

의료소비자가 직접 제약사를 상대로 의약품의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소송단 모집이 추진되고 있다. 제약업계는 소송단 모집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리베이트 사건으로 가뜩이나 나빠진 제약사의 이미지가 더욱 악화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소비자시민모임으로 구성된 의약품리베이트 감시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지난 16일까지 20일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항구토제 ‘조프란’과 대웅제약의 항진균제 ‘푸루나졸’ 불법 리베이트로 의료소비자가 입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단을 모집했다.

운동본부에 따르면 16일까지 민사소송에 참여한 인원은 총 6명으로, 이들 모두 조프란 소송에 참여했다. 이중 3명은 푸루나졸 소송에도 참여했다.

운동본부는 소송단에 참여한 6명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해당 제약사를 상대로 환자들의 개인별 부당 약값 인상분 산정금과 정신적 피해 위자료 청구 소송을 오는 29일 제기할 방침이다.

운동본부는 이번 소송 제기가 가져올 파급효과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이번 민사 소송에서 의료소비자가 승소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건강보험공단도 환수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며 “그동안 과잉 지불됐던 막대한 약제비 환수를 통해 공단과 지자체의 재정 건전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운동본부는 각 지자체와 공단의 소송 유도를 위해 정치권의 협조도 구할 방침이다.

안 대표는 “지자체는 의약품 리베이트 환수소송에 관심을 보이는데 비해 공단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지자체와 공단의 소송 유도를 위해 정치권과의 협조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운동본부는 조프란과 푸루나졸 외에 다른 리베이트 의약품에 대해서도 민사 소송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안 대표는 “지금이야말로 리베이트 근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다음 소송 대상 의약품은 고지혈증, 당뇨병, 고혈압 치료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국내 최초 환자·소비자 중심 리베이트 의약품 환수 소송 의미 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번 소송이 국내 최초로 환자와 소비자가 중심이 돼 의약품 리베이트 환수소송을 추진한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제약사의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보건의료사기'(health care fraud)로 간주하고 엄벌에 처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손해도 적극적으로 환수하고 있다.

미국은 보건부 내에 감찰부를 두고 법무부 및 검찰 등과 공조해 보건의료사기에 손해배상 등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최근 5년간 환수액만 무려 83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환자와 소비자가 불법 의약품 리베이트를 이유로 환수 소송을 제기한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

안 대표는 “이번 소송은 환자 몇 명이 배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자와 소비자가 나서서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민사 소송단이 승소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법무법인 ‘지향’의 이은우 변호사는 “GSK의 역지불 합의나 대웅제약의 불법 리베이트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민사 소송단이 승소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며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로 인해 약가인하 대신 의약품의 실거래 표시가격이 높아졌고, 그 결과 환자나 공단이 약가를 추가로 부담하게된 것이 명백한 만큼 손해배상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번 소송이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사에 위협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소송이 승소할 경우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된 제약사에 많은 환자 및 단체들의 환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처럼 환수 소송이 이어질 경우 리베이트 적발에 따른 과징금에 부담을 가지지 않던 제약사에게는 위협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비슷한 소송 남발될까 우려민사소송의 대상이 된 GSK와 대웅제약은 아직까지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GSK 관계자는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확정된 것은 처음 알았다”며 “그러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내부적 논의는 안된 상태”라고 말했다.

GSK는 조프란과 관련된 역지불 합의에 대한 판결이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인 만큼 소송에 신중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번 소송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소송이 확정되지 않아 정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며 “역지불 합의건의 결론이 안난 상태에서 소송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웅제약 관계자도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제약업계는 불법 리베이트로 이미 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제약사의 이미지를 더욱 부정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된 적이 있는 A제약사 관계자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당연히 귀담아 듣고 더욱 신경을 써야겠지만 제약사의 고충도 생각해야 한다”며 “리베이트로 이미 처분을 받았는데 또 다시 리베이트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해당 제약사는 부정적 이미지가 심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번 소송이 자칫 다른 소송의 남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B제약사 관계자는 “이번 소송의 여파로 소송이 남발될 경우 제약업계는 도덕성과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리베이트 문제가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마케팅마저 위축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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