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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현대의학, 재기발랄한 설치미술을 만나다!박지은(설치미술가)

영상 속에 수술복을 입은 의사 세 명이 번갈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한 의사는 “심장을 열면 형형색색의 오색찬란합니다. 여러 가지 색깔들이 곳곳에 박혀 있고 상당히 아름다워요”라고 경탄한다. 또 다른 의사는 “아름다운 심장이 발딱발딱 뜁니다. 사람 얼굴이 다르듯이 심장 모습도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 얼굴은 몰라봐도 심장 모습을 보면 기억이 나거든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들은 일년에 수백차례 환자의 가슴을 여는 흉부외과 의사들이다.

‘심장수술 전문의와의 인터뷰’라는 설치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박지은 씨는 국내에서 드물게 의학을 소재로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이다. 1995년 의학을 소재로 첫 작품을 발표한 박씨는 지금까지 50여회의 그룹전과 4회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의학 그 너머의 인간'이란 주제에 심취해 부단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예술과 의료의 융합에 골몰하는 박씨를 지난 11일 옥수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 의학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 작품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처음에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성을 가진 의료기구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혹됐다. 병원에서, 혹은 종로나 청계천 의료기구 상가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도 했다. 의료 관련 학회를 가면 의사들이 프리젠테이션하는 포스터와 도표들이 너무 정교하고 예뻐 보였다. 또한 질병 치료라는 목표를 향해 다양한 프로세스를 구현하는 의학에 매력을 느꼈다. 첫 개인전을 1997년 금산갤러리에서 'Balance'라는 제목으로 열었는데 의료용 기구나 약병 등을 압박 붕대로 감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압박붕대에는 작종 질병과 그 치료약을 번갈아 인쇄했다. 첫 작품 이후에는 의학과 예술의 공통점을 대상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놓고, 작품 활동을 했다. 특히 엑스레이, CT, MRI, 초음파, 내시경 등의 의료용 영상장비는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낱낱이 시각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과 완전이 다른 시각적 형태를 갖는다. 대상 너머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부분이 의학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물질적인 측면 보다는 의학 그 너머에 있는 '인간' , '행복'에 대한 주제에 좀 더 다가가는 작품을 하고 싶다." (작품 보기 : 플라시보 이펙트 , 로맨틱 힐링)

-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멘토가 있나.

"특별히 정해 놓은 멘토는 없다. 다만 아주 깊이 있는 감성을 가진 과학자나 의사, 치밀하게 연구하는 예술가한테 강한 매력을 느낀다. 나아가 감성과 이성에 치우치지 않고 잘 섞어서 쓰는 사람들이 멋져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신경정신학자 올리버 색스가 쓴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를 읽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 balance, 압박붕대위에 실크스크린, 2002

- 남편이 이비인후과 의사라고 들었다. 의학과 예술의 융합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도 하다. 항상 작가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작업의 출발을 찾지 않으면 과연 진실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갖고 살아왔다.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병원을 드나든 일이 많았고, 오빠도 신경외과 의사라 비교적 의학 이미지에 친숙했던 것 같다. 남편은 작품의 모티브 제공보다는 작품 활동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절대적 후원자로 보면 될 것 같다.(웃음)"

-의학을 작품 소재로 적용하는 것은 물론 직접 퍼포먼스를 해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는데,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물감을 통해 다채로운 색상을 얻듯이 의학 소재의 작품을 통해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는 이미지와 상황을 얻는다. 내가 스스로 의사 가운을 입고 의학 퍼포먼스(가짜의사  역할을) 한 ‘Dr.과잉 & 결핍 클리닉’이라는 작품이 있다. 원래 의학이란 과잉과 결핍된 부분을 찾으려는데 목표가 있지만 그 작품에서 나는 정반대로 행동해 봤다. 과잉은 과잉으로 보내고 결핍은 더 결핍으로 보냈다. 이명이 있는 사람은 더 이명을 느끼게 하는 치료를 하는 가짜 차트를 작성했다. 그렇게 의학의 선입견을 깨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의학적 시각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을 접한 의사들도 오래전부터 의학과 예술은 소통해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과잉과 결핍은 늘 의사가 고민하는 주제 아닌가."

 

▲ 심장수술 전문의와의 인터뷰, 3채널비디오, 9분7초, 2007

- 의학의 매력과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의학의 모든 부분을 사랑한다. 고대 의학은 예술과 과학의 중간에 놓인 형태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의학이 지르박(193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사교댄스) 같은 발전과 퇴보를 반복하며 지금의 과학적인 형태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학은 인간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다는 부분에서 예술과 감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사람의 몸은 생리학적으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의사는 오로지 질환에 결탁된 대상이 되기 쉽다. 하지만 환자 개인마다 히스토리가 다르다. 의사도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심장수술 전문의와의 인터뷰'라는 동영상 작품을 꼽는다. 이 작업은 실제 흉부외과 전문의 3명을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을 작품에 담았다. 당시 읽었던 책에 뇌사자의 몸에서 심장을 이식받았던 환자 중에 그 뇌사자가 갖고 있던 기억이 그대로 옮겨져 와서 자기가 경험하지도 않았던 일부의 기억을 공유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때부터 사람의 감정 즉 마음의 출발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다가 실제 심장수술 전문의들을 만나 그 해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의사는 심장을 고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과의 인터뷰는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고 훌륭한 전문의 3명은 그토록 엄청난 일을 하면서도 심장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해 주는 등 충분히 예술적이었다. 의학적인 행위 안에서 시각적인 예술적인 요소가 있다고 느끼는 의사들도 많은 것 같다. 이 작품은 과정이 즐거운 작업이었다."

- 과거 작품을 재편집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 착안했나.

"작년에 ‘Dr.과잉 & 결핍 클리닉’을 재편집했다. 몇 시간에 걸친 퍼포먼스로 이뤄진 작업이어서 이를 집중력 있게 다시 개념을 정리해서 보여 주고 싶어 재편집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부분에 있어 과잉 아니면 결핍 상태에 있다는 개념이 이 퍼포먼스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과잉 혹은 결핍 상태가 어느 순간 불편하게 여겨질 때 균형을 맞추며 수위를 조절하려 애쓰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잠시나마 맛보았던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그 에너지를 과잉이 되고 결핍이 된 히스토리를 찾는데 쓴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다. 그 히스토리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과잉도 결핍도 되기 이전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나올 거다. 그 순간에 우리는 무엇이고, 누구인지도 알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환자 역시 불균형이었던 대상과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고 순간적인 균형감에 속박되기 보다는 그 자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싶은 의도로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 과잉과 결핍 클리닉, 설치 퍼포먼스, 2007

- 의학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이란 것이 대중성을 갖기도 힘들었을테고. 그동안 작품 활동을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미술계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구체적인 의학을 직접적으로 일관되게 작품에 끌어들이고 있는 작가가 거의 없다보니 스스로의 희소성에 가치를 부여했고, 그만큼 오기도 생겨났다. 작품이 상업적인 성과도 없다시피 해서 경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로 작가 지원프로그램 (레지던시, 문예진흥기금 등)을 통해 작업을 지속해 왔다."

- 올 11월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루시 인더스카이 윈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고 일단 제목을 붙였다. 현재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이 제목은 비틀즈 노래이기도 한데, 이 음악에서 나오는 루시는 상당히 몽환적으로 표현된다. 루시라는 여자의 행복에 대해 표현하려고 한다. 물론 의학적 소재가 들어가지만 이전처럼 노골적으로 투입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역에 도전하고 싶나.

"의학은 지금까지 소설, 드라마, 영화의 소재로 꾸준히 등장해 왔다. 최근에는 의학드라마의 경우 전성시대가 아닌가 싶다. 반면 시각 예술에서 만큼 의학은 낯선 풍경을 연출한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시각이라는 감각기관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병원 그 자체를 보게 되면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공포 혹은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한 선입견은 그 시각 너머에 있는 아름다움과 또 그 너머에 있는 인간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앞으로는 그 의학 너머에 있는 인간에 독특하고 의학적인 시각으로 다가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

-평소 예술을 사랑하는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주변의 의사들은 의사라는 직업에 매우 만족하고 산다. 이렇게 좋은 직업이 없다. 일에 대한 보람뿐만 아니라 봉사도 할 수 있다. 예술과 의료의 융합은 친숙함, 아름다움, 인간 그 자체를 의료시스템 내에서 드러내고자 하는데 목표가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공포라는 선입견이 그러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 장애가 된다. 선입견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상을 자주, 그리고 깊게 아는데 있다고 본다. 가끔씩 병원 로비에서 전시 작품들을 마주하곤 한다. 이젤 위에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작품 몇 점 올려놓는 소극적인 형태는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다. 병원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수용을 하는 시도가 있다면 의사는 물론 환자와 일반인들의 예술에 대한 면역체계가 강화될 거라 생각한다."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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