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화제다. 벌써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고 한다. 극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영화가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것도 참 특이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마 최근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실망한 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지겹도록 찾아오는 절망에도 지치고 않고 일어서는 장발장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나보다.

그런데 레미제라블의 원작자 빅토토 위고는 자신의 최고 걸작으로 다른 작품을 꼽았다. ‘웃는 남자’라는 제목의 소설이다. ‘웃는 남자’는 한 남자가 어린이 매매단에 납치돼 귀밑까지 찟긴 입으로 평생 웃을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얼굴을 갖고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헐리우드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 조커의 원조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위고가 나폴레옹 3세의 쿠테타에 반대해 영국으로 망명한 시절에 쓰인 장편소설이다. 아마도 자신의 조국 프랑스의 비극적인 상황을 풍자적으로 꼬집기 위해 ‘웃는 남자’를 떠오린 것이 아닐까 싶다. 추한 외모를 가졌지만 고귀한 영혼을 가진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위고는 정의로운 인간의 승리를 예고한다. 특히 어둠을 이용해 탐욕을 취하는 귀족들에게 경고한다. ‘여명은 정복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라고.

자, 2012년이 딱 나흘 남았다.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일이 버겁다. 의료계에는 다사다난한 한 해 였다. 지난 4월 대규모 약가 인하를 시작으로 ‘의료분쟁조정법’과 ‘동네의원 만성질환 건강관리제’(선택의원제) 시행,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병의원 포괄수가제 의무 시행,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개정 응급의료법 및 시행규칙) 시행, 안전상비의약품 슈퍼판매와 의협의 대정부 투쟁 등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힘들다. 아마 2012년이 2011년보다 더 유난스러운 한 해는 아닐 것이다. 아마 내년이 되면 또 가장 힘든 한 해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지난 19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박근혜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보건의료 공약 제시가 미흡했다. 아마 차기 정부에서 보건의료 정책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계는 박 당선인에게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혹은 상대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올 한 해 가장 회자된 말은 ‘멘붕’과 ‘치유’가 아닐까 싶다. 정치, 혹은 개인사로 멘붕에 빠지고, 또 끊임없이 치유받기를 반복했다. 의료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생태계처럼 왜곡된 제도와 규제 속에서 끊임없이 멘붕에 빠지고, 스스로 치유해나간다. 앞으로도 의료서비스 이용자와 공급자가 함께 치유하고 치유받으며 발전해 나가리라 확신한다. 

이제 며칠 뒤면 새해의 여명이 밝아온다. 위고는 웃는 남자란 소설에서 “절망과 기쁨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기에 살아간다. 아듀 2012. 새해에는 모든 곳에서 슬픔이 기쁨에게, 절망이 희망에게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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