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의 새 일자리 창출’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강조해온 말이다. 그동안 정부는 의료와 교육 등 서비스산업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해 시장을 활성화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서 의료관광산업을 육성하고, 영리 의료법인 등 서비스 선진화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09년 보건복지부는 오는 2013년까지 20만명의 해외환자를 유치해 1조4,000억원의 부가가치와 1만6,000명의 고용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해외환자를 오는 2020년까지 100만명으로 확대하겠다는 장밋빛 전망도 내놓았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의료관광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의사, 간호사 인력이 OECD 국가에 비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리병원 등의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면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다는 비법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글로벌 헬스케어 전문가 양성 프로젝트를 추진해 2020년까지 간호직 5000명, 의료통역사 4000명 등 약 1만 1000명을 추가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했다. 또 얼마 전엔 한국경제연구원이란 곳에서 의료서비스 분야의 규제 완화를 통해 혁신이 이뤄지면 오는 2020년까지 관련 분야에서 약 10만개 이상 추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다 그럴 듯 하다. 완전히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실제로 의료관광 활성화와 의료 분야의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나 의료통역사 등의 새 일자리가 생겼다. 하지만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다. 의료관광 코디네이터와 의료통역사 일자리가 얼마나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과연 양질의 일자리인가 하는 점은 의심스럽다.  

어제(4일) 국회에서는 방문건강 간호사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방문건강 간호사는 2007년부터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 독거노인, 장애인 등 의료취약계층의 건강수준 향상을 위해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을 도맡아 왔다. 이들이 국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각 지자체들의 잇따른 해고 통보 때문이다. 그동안 지자체들은 방문건강 간호사들과 10개월 단위로 계약하거나, 총 근로기간이 23개월을 넘지 않는 변칙 고용을 일삼아 왔다고 한다. 그 이유야 뻔하다. 근무기간이 1년이 넘을 경우 퇴직금이 발생하고, 2년이 넘으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고용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정부가 새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요양보호사는 또 어떤가. 올해로 노인장기요양 보험제도 시행 4년째를 맞아 전국적으로 23만7,000여명에 달하는 요양보호사들이 활동 중이다. 그런데 이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시설에 근무하는 요양보호사의 급여는 4대 보험료를 제외하면 월 8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수급자의 가정으로 찾아가는 재가 요양보호사 중 한 달 급여를 60만원 미만으로 받는 경우가 40%에 달했다. 재가 요양보호사 중 87%는 10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일자리라도 없는 것 보단 낫겠지만, 과연 저질 일자리 창출이 국민들의 삶을 질을 얼마나 떨어뜨릴 것인가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의사면허를 따고 5년간 전공의 수련을 거친 전문의들 가운데 대형병원에서 무급에 가까운 급여를 받는 ‘펠로우’ 인력이 넘친다고 한다. 잘못된 전문의 수급구조와 대형병원의 병상 확충 경쟁이 빚은 폐해다. 중소병원이 간호사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너무 낮은 급여도 한 몫을 한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3교대 근무에 살인적인 업무시간을 견뎌도 손에 쥐는 급여는 100만원대 수준이다. 게다가 요즘은 병원에서도 간호사와 의료기사, 행정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정규직 채용이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냥 그 수만 늘리면 된다는 인식인 것 같다.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시설 투자에는 관심을 쏟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보건의료인력은 눈에 보이지 않나 보다. 보건의료인력의 원활한 양성과 공급, 근로환경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의료서비스만큼 노동집약적인 분야가 또 어디 있나.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분명히 해야 한다. 병원 등 보건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갖추고 적절한 근로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건의료산업 분야는 부가가치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보건의료인력에게는 고부가가치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는 저질 일자리 양산을 멈추고 삶의 질을 고려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던 방문건강 간호사의 처지가 내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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