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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비록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윤수호(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간호사, 수화통역사)

“배가 어떻게 아프세요?”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파요”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가 주고 받는 일상적인 대화다. 하지만 환자가 청각·언어 장애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청각장애인 환자가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 병원을 찾을 경우 의사와 환자 모두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는다. 병원에 수화통역사가 필요한 이유다.

불행히도 전국적으로 수화통역사가 상주하는 병원은 부산성모병원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병원 인근의 수화통역센터를 찾아 통역 요청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의료통역에 능숙한 수화통역사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세브란스병원(신촌) 윤수호 간호사(영상의학과)는 병원에서 유일하게 수화통역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윤 간호사가 수화통역을 하러 진료실에 오면 그제서야 의사도 환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한다. 지난주 금요일, 세브란스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 어떻게 수화를 배우게 됐나.

"대학 시절 독학으로 배웠다. 당시엔 민간자격증이었는데, 지난 2006년 국가자격증으로 바뀌면서 다시 도전해 세 번만에 땄다. 병원에서 이뤄지는 수화통역은 의료인이 배우는 게 일반 수화통역사가 의료통역을 별도로 배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의료통역은 전문용어가 많고, 병원 시스템을 알아야 의사와 환자 간 통역을 무리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해도 의료통역을 제대로 하려면 재교육을 받아야 하나.

"수화통역은 의료통역, 법정통역 등 세부 분야가 많다. 수화통역 자격증을 갖췄더라도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환자가 의사의 설명을 말로 들어도 가끔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는데, 청각언어장애인 환자의 경우 오죽하겠나. 의료인은 아무래도 일반인보다 병원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많고 이해도가 빨라, 수화통역도 일반인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수교육에서는 CT, MRI 등 전문용어를 가르친다. 또 수화에도 비타민 등 신조어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 의사가 배우면 청각장애인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효과적일 것 같다.

"당연하다. 의사가 수화를 배우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수화통역을 가보면 청각장애인의 담당 주치의들이 환자보다 더 고마워한다. 의사들도 수화를 배우고 싶은 데 여건이 허락지 않아 안타까워한다. 병원이 일정 시간을 배려해 인턴이나 전공의가 수화를 배운다면 청각장애인 환자를 케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다. 무엇보다 수화통역 교사 중에 의사가 거의 없는 것도 의료통역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 수화통역을 배운 죄(?)로 일이 더 늘어난 건 아닌가.

"일주일에 한두 번 통역 요청이 온다. 다행히 우리 병원에는 수화동아리(빛소리회)가 활동하고 있어 수화통역 일도 어느 정도는 나눠 갖는다. 병원 사회사업팀으로 수화통역 요청이 오면 시간이 맞는 사람이 지원을 나간다. 빛소리회에는 간호사, 사무직, 방사선사 등 병원 내 다양한 직역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친한 청각장애자의 경우 내 스케줄에 맞춰 내원하기도 한다. 문제는 어느 병원에 수화를 할 수 있는 의료인이 있다는 정보망이 존재하지 않아 청각장애인은 수화통역사를 수소문해 병원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수화통역센터조차 그런 네트워그가 형성돼 있지 않다."

- 수화통역을 한 첫 환자는 누구였나.

"엄마와 같이 온 17살짜리 학생이었다. 내과 환자였던 것 같은데, 환자가 증상을 의사에게 설명해주다가 문득, 환자도 자신의 진단을 궁금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의사가 내린 진단을 환자인 학생에게 쉽게 수화로 풀어줬다. 진료 시간 내내 어두웠던 학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대부분 의사는 청각장애인 환자를 데리고 온 보호자를 바라보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정작 환자는 어떤 얘기가 오고 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청각장애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수화로 건네기만 해도 그들은 내 언어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기쁘고 마음이 안정된다고 한다." 

-수화통역을 했던 환자 중에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면.

"정형외과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려던 환자인데, 통역이 필요하다고 긴급 콜이 들어왔다. 얼른 달려가보니 수술실 앞 침상에 누워있던 청각장애인 환자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알고보니 다리 수술도 필요했지만 내과적(소화기) 수술도 동반돼야 했던 케이스였다. 환자는 줄곧 그 표현을 하려고 했지만 의료진에게 정확히 전해지지 않았던 거다. 결국 그 환자는 정형외과 수술을 취소하고, 다시 수술 스케줄을 잡았다."

- 수화를 모르는 청각장애인은 어떻게 통역을 해야 하나.

"수화를 배우지 못한 청각장애인도 많다. 과거 청각장애인이라는 낙인을 지우는 게 싫어 일부러 수화를 배우지 못하게 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경우 수화가 가능한 청각장애인이 수화를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과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대화를 나눠, 다시 수화로 표현해주는 통역사가 있다. 이런 사람을 ‘농통역사’라고 한다. 농통역사가 수화통역사에 수화 등으로 문맹청각장애인의 사연을 전달하면 수화통역사가 이것을 일반인에게 통역하는 방식이다. 대형병원조차도 수화통역사가 상주하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데, 문맹청각장애인의 경우 더더욱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 수화를 모르는 의사에게 불쑥 청각장애인 환자가 찾아왔다.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의사가 비록 수화를 모른다 하더라도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종이에 적어가면서 필담이라도 할 수 있고, 환자의 증상을 더 천천히 들으려는 행동이 나오게 된다. 다만 필담을 할 때 청각장애인 대부분 주어, 동사가 바뀌고 시제가 맞지 않는 등 문장이 서투르다. 의사로서는 답답하고 시간 소요가 많아 제법 인내심이 필요하다."

- 청각장애인 환자를 돕기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수화가 있다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가 기본이다. ‘아프다’라는 표현도 쉽다. ‘아프다’라는 손짓을 아픈 부위에 대고 하면 그곳이 아픈 게 된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표현도 유용하다. 진료실에서는 증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 오고 간다.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다’ 등의 표현을 환자가 수화로 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다. 실제로 수화에 능숙한 청각장애인은 제스처, 표정 등을 통해 아주 정교한 표현까지 해낸다. 수화를 모르는 일반인이 봐도 대강 무슨 의미인지 알 정도다." 

- 수화통역 배우기를 잘했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면.

"한번은 검사실에 청각장애인 환자가 왔는데, 검사를 진행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엑스레이 촬영 시 ‘숨을 참으세요’, ‘숨 쉬세요’를 수화로 통역해도 워낙 촬영시간이 짧아서 소용이 없는 거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검지를 하나 세우면(1번 하면) ‘숨 참으세요’, 검지를 두 개 세우면(2번 하면) ‘숨 쉬세요’라고 환자와 약속을 하고 검사를 무사히 마친 경험이 있다. 정신과를 찾은 여학생과 그녀의 어머니 간에 통역을 해준 기억도 난다. 어머니는 딸이 아픈 게 본인에 대한 분노라고 여겨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여학생이 의사에게 털어놓은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딸이 어머니가 미워서 아픈 게 아니라고 통역해줬더니, 어머니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 수화동아리 활동을 한 지 오래됐나.

"10년 전에 만들어진 수화동아리 회원은 현재 50여명에 이른다. 일주일에 한번 점심시간에 모여 스터디를 한다. 요즘 배우는 단어는 폐순환, 뇌경색, 장의 모습 등 만날 때 마다 새로운 표현을 익히고 있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진단명이나 수술 경과에 대해 알려주려면 새로운 용어는 물론 쉽게 풀어서 표현하는 방법도 연습해야 한다. 최근에는 수화공연을 통해 기금을 마련해 야간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병원 내에서 청각장애인 환자와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다면.

"‘내가 어떻게?’라는 마음을 버려라. 청각장애인들로부터 들으려고 하는 마음만 있다면 수화로 ‘예’, ‘아니오’만 알아도 충분하다. 그리고 대화가 더디더라고 기다려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사실 외국인환자 잘 응대하려고 몸짓 섞어가며 어설픈 영어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청각장애인 응대하는 노력도 못하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나. 청각장애인 환자만을 위한 문진표를 만들어 진료 대기시간에 미리 병력 등을 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윤수호 간호사에게 배워보는 간단한 수화>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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