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까지 국내 홍역발생 '제로'…감염병 관리에 중요한 의미 던져

최근 국내 감염병 관리에 있어서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 생겼다. 27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에서 홍역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자체 발생하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토착 홍역환자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국내에서 홍역 진단이 가능해진 이래 최초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홍역청정국’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토착 홍역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철저한 질병감시와 98% 이상의 높은 예방접종률에 따른 성과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홍역 퇴치국가의 반열에 들어선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제2종 법정전염병인 홍역은 감수성 있는 접촉자의 90% 이상이 발병할만큼 감염병 중에서도 전염성이 가장 강한 질환으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매년 1억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이중 58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때문에 백신이 개발되기 이전에 홍역이 유행하면 대규모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난 1962년 홍역 예방백신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고, 1965년부터 접종이 시작되면서 홍역으로 인한 사망과 질병발생률이 이전에 비해 감소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1년 홍역대유행 이겨낸 비결은 ‘따라잡기 접종’

그러던 중 2000년부터 2001년까지 2세 이하와 10세 사이의 아동을 중심으로 8개월간 5만5,696명의 홍역환자가 발생해 이중 7명이 사망하는 '홍역 대유행'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홍역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감수성자가 유행수준으로 누적되고 2차 접종률이 저조했던 것을 대유행의 원인으로 파악했다. 이 때문에 감수성 있는 인구를 줄이고 출생아에 대한 2회의 MMR(홍역(Measles), 볼거리(Mumps), 풍진(Rubella)) 접종률을 95% 이상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2000년 12월 ‘국가 홍역퇴치 5개년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다음해인 2001년 취학아동의 2차 홍역 예방접종 확인사업과 함께 이후 570만명의 학동기 아동을 대상으로 홍역 일제예방접종을 실시했다.

그로부터 5년간의 국 홍역퇴치사업 결과, 2006년 들어 마침내 홍역발생률이 인구100만명 당 0.52명, 2차 홍역예방접종률 99.9%가 유지됐다.세계보건기구(WHO)의 홍역퇴치기준에 따라 2006년 11월 홍역퇴치선언 국제회의를 통해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최초로 홍역퇴치를 선언한 국가가 됐다.

이는 우리나라가 WHO가 인정하는 ‘홍역퇴치모범국가’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홍역퇴치 모범국가라는 자부심도 잠시뿐이었다. 이듬해인 2007년 서울 모 아동병원에서 180명의 홍역환자가 집단 발생했다. 또 2010년에는 인천의 모 중학교에서 발생한 94명을 포함해 총 111명의 홍역환자가 발생함으로써 홍역 퇴치국가란 명예를 반납해야 했다.

다행이 지난해 들어 홍역환자가 43명으로 감소하면서 홍역 퇴치국(인구 100만명당 환자수 1명 이하) 수준을 회복했다. 특히 올해는 해외에서 유입된 2명의 환자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단 한명의 토착 홍역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잡기 접종’ 통해 집단면역 향상…서태평양 지역서 홍역 관리 롤모델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난 2000년 발생한 홍역 대유행 당시 정부가 취학아동의 2차 홍역예방접종 확인 사업뿐 아니라 만 8세부터 16세를 대상으로 홍역 일제예방접종 사업을 실시했다는 점이다.

1차 예방접종 이후 2차 접종을 받지 않거나 특히 접종을 시작한 시점 이전의 출생자들로 인해 집단면역이 무너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란 한 인구집단 중에 특정 감염질환에 대한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많을 때 그 질환에 대한 전체 인구집단의 저항력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정부는 이들에 대한 관리의 일환으로 일명 ‘따라잡기 접종(Catch-up, 접종을 늦게 시작하거나 접종스케줄이 표준일정에서 지연된 경우 실시하는 예방접종)’인 일제예방접종 사업을 추진, 집단면역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관리과 박영준 연구관은 “예방접종을 시작한 연도 이전 출생자의 경우 감수성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접종이 실시되지 않는 한 전염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라며 “지난 2001년 여기에 해당하는 570만명을 대상으로 따라잡기 예방접종이 있었기에 현 수준으로 홍역 발병률을 컨트롤 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2001년 당시 국내 보건당국이 실시했던 ‘따라잡기 예방접종’은 현재 일본과 중국 등 서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홍역퇴치 운동의 일환으로 벤치마킹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해 초등학생과 중학생 1억명에게 홍역 예방백신을 접종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홍역 발생이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은 배경에는 중국의 대규모 예방접종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박영준 연구관은 “중국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영유아에 대한 홍역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까지 홍역 예방접종을 실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중국이 우리나라의 따라잡기 접종 전략을 도입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높은 예방접종률 비해 적기접종률 떨어져

반면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99.8%에 달하는 높은 예방접종률에 비해 아직까지 적기접종률은 80%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만 2세까지 받아야 하는 BCG, B형간염 3차, DTaP 4차, IPV 3차, MMR 1차, 수두 1차, 일본뇌염 2차 등의 예방접종을 모두 받은 완전접종률은 남자 86,8%, 여자 85.8%로 1차 예방접종률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건양대의대 예방의학교실 나백주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가 필수예방접종률은 상당히 높은데 1차 접종 후 이어지는 2차, 3차접종 등의 적기접종률은 떨어진다”며 “집단면역을 높이기 위해 보건당국은 항상 모니터링을 하고 집단면역이 떨어질 경향이 보이면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백신의 부작용 등을 이유로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있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정부의 적극적인 계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나 교수는 “최근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만 하더라도 예방접종 대상자의 10%는 부모들이 아예 접종을 피하고 있다”며 “잘못된 지식과 생각에 의한 것인만큼 정부는 이런 불안요소를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예방접종 관련해서 국민들을 잘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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