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말했다. 전화기 저편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지난 10년간 계속 이랬다. 또 며칠 지나면 잊히지 않겠냐"고.

정말 그랬다. 그 말대로다. 며칠 잠깐 난리법석을 피우다가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마치 옛일인 양 잊히고 말았다.

보건복지부의 ‘권역외상센터’ 지원 대상기관 선정 발표가 난지 딱 보름이 지났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은 유력한 후보였지만 탈락했다. 논란이 일었다. 평가 결과를 납득하기 힘들다는 불만과 의심 가득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의 예언처럼 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나흘 시끄럽다가 곧 잦아들었다.

그런데 참 불편하다. TV를 틀면 그가 자주 나온다. 메스를 들고 수술을 하는 그의 모습이 자꾸 나온다. 그는 응급의료기금 TV 공익광고의 모델이다. 광고 속에서 특유의 무표정을 지은 채 수술을 하고, 또 병실에서 어린 환자를 바라본다. 그가 나오는 장면에서 '모든 사람이 기적을 바랄 때 기적을 준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란 홍보 문구가 오버랩 된다.

얼마 전엔 한 공중파 방속에서 그와 그가 속한 병원이 나왔다. 무려 한 달 간 장기 촬영한 영상이 6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으로 압축해 보여줬다.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달리고, 메스를 들고, 또 지쳐갔다.  취재 때문에 그와 연락을 하려고 몸이 달았던 기자도 어느새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TV가 다시 기억을 상기시켜 줬다. 어디 잊히는 것이 그것뿐이랴 싶다. 기억이란 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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