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환자는 질병으로 고통 받고, 그 곁에서 보호자는 장시간 간병에 골병이 든다. 입원실에서 하루 종일 간병을 하다가 침상 밑에 마련된 보호자 침대에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온몸이 쑤시기 일쑤다. 가족이 병원이 입원해 간병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입원환자 곁에서 간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 안다. 오죽하면 “장시간 간병을 하다가 반 의사가 다됐다”는 농담을 할 정도일까 싶다.

간병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보호자 간병이 필요 없는 병원’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줄여서 ‘보호자 없는 병원’이란 용어로 불린다. 병원이 간호와 간병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입원 환자에게 양질의 입원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환자 가족이 별도로 병실에 상주하면서 간병과 돌봄을 할 필요가 없는 병원을 뜻한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간병서비스 급여화가 절실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부터 일부 병원에서 간병서비스 급여화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당시 시범사업에서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정책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최근에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시는 오는 11월부터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에서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 1994년 간호직원 부족과 사적간병인 고용문제 해결을 위해 이른바 ‘신간호체계’를 도입, 환자에게는 간접의료비용의 부담을 덜고 병원은 투입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간호’라는 의료서비스 범주 내에서 간호사의 지시 및 감독 아래 소정의 교육을 받아 자격을 획득한 간호보조원에 의해 간병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재원 마련이다. 간병서비스 급여화시 환자 본인부담 비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소요재정 규모가 많게는 3조에서 적게는 1조원까지 추가로 필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만만치 않은 규모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보호자 없는 병원 운영에 따른 사회적 파급 효과를 따져보면 이런 재정 부담이 결코 헛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2010년 기준으로 국내 1인당 간병비는 75~180만에 이른다고 한다. 국민이 부담하는 연간 간병비만 1.조에서 2조원에 달한다. 더욱 큰 문제는 간병과 간병비 부담이 초래하는 이차적인 폐해다. 간병비 부담 때문에 환자 보호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이는 곧 가정경제의 붕괴를 초래한다.

대한치매학회가 치매 환자 보호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호자 가운데 직장을 그만둔 비율이 27%를 차지했고, 51%는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은 곧 치매 환자를 둔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고, 환자의 간병과 치료를 더욱 힘들게 만들어 상태가 악화되는 악순환을 초래하면서 ‘질병빈곤층’을 양산하고 있다. 또한 인구의 고령화와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그나마 가족에 의한 간병마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적극 나서 간병서비스 급여화에 팔을 걷어 붙여야 한다. 보호자 없는 병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인력확보 기준, 간병서비스 수가 개발, 예산확보, 관련 법규정 정비 등 해결해야 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그 파급효과는 크다. 보호자 없는 병원이 실현될 경우 국민들의 간병 및 간병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어 장기간 간병에 따른 가정경제 붕괴를 막을 수 있다. 특히 지속가능한 양질의 사회복지 일자리 창출과 간호사 인력 확충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다 젖혀두고 소변호스가 늘어진 입원실 병상 밑의 보호자용 침대에서 불편한 쪽잠을 자고, 밤새 의자 끄는 소리, 기구운반차 끄는 소리, 의료기기 전자음 등의 소음에 시달려보며 안다. 왜 보호자 없는 병원이 절실한지. 재정 문제로 간병서비스 급여화를 주저하는 것은 근시안적 발상이다. 개인에게 전적으로 내맡겨진 간병서비스 영역을 이제는 국가가 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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