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효과 높이려는 한의사 소행” ↔ “한의학 음해하려는 목적으로 누군가 투여”

정말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의사가 부작용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화학성분이 들어간 한약을 판매하다 적발됐지만 과연 어떻게 이 성분이 한약이 들어갔는지를 놓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22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최근 간질 환자 처방제로 사용되는 항경련제 성분인 ‘카바마제핀’이 들어간 한약을 판매한 혐의로 350여명의 한의사가 적발돼 조사가 진행 중이다. 

카바마제핀은 일시적으로 통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어 간질, 신경통, 조울증 등에 쓰이지만 부작용이 심해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특히 임신 초기 여성이 카바마제핀을 복용할 경우 태아에게 척추이분증이라는 선천성 기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복용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2.6배 정도 높다는 해외 연구 발표도 있다.

이처럼 위험한 전문의약품 성분을 의사의 처방도 없이 한약에 넣어 판매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카바마제핀을 한약에 넣었을까. 이를 두고 의료계와 한의계는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의료계 “한약 효과 높이려는 소행 아니었나”

한의계 “한의학 음해 목적 고의적 투입 분명해”대한의사협회 한방특별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 성명서를 통해 “항경련제인 카바마제핀이 들어간 한약을 판매한 350명이 넘는 한의사들을 조사 중이라는 보도를 접하고 분노를 느낀다”며 “(대한한의사협회는)이번 일에 연루된 한의사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수년간 한약에 전문의약품 넣어서 적발된 사례를 보면 믿기 어렵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의협 한방특위는 “한의사가 지은 한약은 안전하다고 주장해온 한방측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사례”라며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무기한 범국민적인 한약 거부 운동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한의사들이 한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카바마제핀을 한약에 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방특위 유용상 위원장은 “한약 자체가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한약에 의약품을 집어넣는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다”며 “따라서 이번 사건도 탕약의 형태가 아닌 중국의 중성약(中成藥, 한방으로 된 제약)처럼 공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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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의계는 누군가 한의학을 음해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언론에 제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의협 장동민 홍보이사는 “당초 식약청이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처음 보도된 방송국에 누가 제보를 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사건의 정황상 누군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불순한 의도로 제보를 했을 텐데 (제보를 한 곳이 어딘지 따져보면)나올 곳이 좁혀진다”고 말했다.

누군가 고의로 한약에 카마바제핀을 넣었다는 주장이다.

한의협에 따르면 식약청에 적발된 350여명의 한의사들은 원외탕전실을 통해 한약을 조제했다.

원외탕전실은 한방 의료기관이 탕전실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난 2008년 도입된 제도로 의료기관에서 분리해 설치가 가능하며 한방 의료기관이 조제를 위탁하면 이곳에서 조제해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있다.

장 이사는 “사건을 접하고 황당했다. 한약 조제 시스템상 카바마제핀이 실수로 들어갈 수는 없다”며 “(원외탕전실에서)누군가 작정하고 넣은 것이 틀림없다.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한의약연구원도 한약재에서 카바마제핀이 발견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한의약연구원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건이라 말하기 어렵다”며 “다만 지금까지 분석한 한약재 중 카마바제핀이 검출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방통증치료제에 카바마제핀이 들어갔다는 점은…" 한의계 쪽의 주장에 의료계는 대응할 가치도 없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란 입장이다.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한정호 교수는 “누군가 한약에 일부러 카바마제핀을 넣었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며 “말도 안될 뿐더라 대응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누군가 한의계를 음해할 목적으로 한약에 독극물을 넣었다면 이해가 되지만 진통효과가 있는 전문의약품을 한약에 넣은 것을 음해의 목적으로 해석하기는 무리라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원외탕전실에서 조제를 위탁한 한의사의 주문없이 다른 성분을 한약에 넣기는 어렵다”며 “특히 한방통증치료제에 카바마제핀이 들어갔다는 점은 오더에 의해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탕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의사가 스스로 한약에 카바마제핀을 넣었다는 의료계의 주장과 누군가 한의계를 음해할 목적으로 한약에 고의적으로 넣었다는 한의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책임자 규명은 갈수록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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