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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 위해 모든 걸 주고 떠난 '천사 의사 박준철'송미경(국내 첫 인체조직기증 전문의 故 박준철씨 부인, '천사 의사 박준철' 저자)

지난해 10월 한 외과의사의 부고를 들었다. 외과 전문의였던 故 박준철씨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을 업으로 삼고 평생을 의료 봉사에 매진하며 살았다. 그러다 작년 10월 어느날,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인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그는 살아서도 아픈 이들을 찾아다니며 헌신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떠났다.다름 아닌 국내 의사 중 최초로  인체조직기증을 한 것이다. 인체조직기증은 장기를 제외하고 뼈, 연골, 근막, 피부, 양막, 인대, 건, 심장판막, 혈관, 각막 등을 기증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체조직기증으로 최대 150여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장기기증보다 훨씬 더 하기 힘든 일이다.  故 박준철씨의 힘든 길을 곁에서 늘 함께 했던 이가 아내 송미경 씨다. 송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발자취와 생전의 철학을 담은 회고록 ‘천사 의사 박준철’(관련 기사 『살아선 의료봉사로, 죽어선 인체조직기증으로』)을 최근 펴냈다. 지난 17일 늦은 오후, 그를 만났다. 


- 남편의 작고 이후 1년 만에 회고록이 나왔다. 직접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남편이 돌아가신 이후 인체조직기증 의사를 밝히자 언론의 관심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한 출판사에서 남편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해 왔다. 처음에는 나와 내 가족의 삶이 세상에 나온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떨림도 있었다. 일기만 써봤을 뿐 책을 써본 적이 없어 망설였다. 그래서 남편이 사망했을 때 느꼈던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출판사에 보냈더니 책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고 해서 출판 계약을 맺게 됐다. 출판사와 협의해 남편이 떠난 1주기에 맞춰 회고록을 발간하게 됐다.”

- 남편이 병원 회식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들었다. 평소 건강에 문제가 있었나.

“남편은 감기치레도 하지 않을만큼 무척 건강한 사람이었다. 남편의 평생 소명은 의료 봉사와 선교였다. 해외 의료 선교봉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남편의 혈압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고혈압 약을 복용하던 중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건강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식이요법과 운동 등을 병행하기도 했다. 약을 간간히 빼먹은 기억은 난다. 그렇지만 혈압을 제외하면 건강에 문제는 없었다. 인체조직기증이 가능한 것만 봐도 남편이 건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장기기증과는 달리 신체의 모든 것을 기증하는 인체조직기증은 아직 사회적으로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체조직기증은 남편의 뜻이었나.

“남편이 살아있을 때 장기기증이나 시신기증 의사를 밝히곤 했지만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지난해 10월 6일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경황이 없어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누군가 인체조직기증 의사를 내게 물었다. 솔직히 그 때는 인체조직기증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남편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탕으로 그렇게 결정했다.”

- 남편의 인체조직을 기증하던 날을 기억하나.

“인체조직기증은 강남성모병원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10월 6일 남편 사망 후 곧바로 인체조직을 결정했고 다음날 새벽 3시 병원측으로부터 조직을 적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날 오후 12시쯤 적출이 끝나고 마무리를 했다고 해서 남편을 만나러 갔다. 머리와 얼굴만 제 형체를 갖추고 있었고 온 몸은 붕대로 감아져 있었다.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유교적 사고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일지 몰라도 남편과 함께 해온 신앙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 육신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남편의 영혼은 천국에 거할 것이고 그의 기억은 가족의 마음 속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남편이 떠나기 전 아이를 먼저 떠나보냈다고 들었다.

“지난 2004년이었다. 집에 손님이 와서 둘째 아이가 자리를 비켜준다며 막내 아들과 아파트 베란다에서 놀다가 떨어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 6년 후 남편이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다. 남편 역시 화장을 하고 고향인 제주 바다에 유골을 뿌렸다. 제주도를 자주 안가봐서 지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 둘째 아이를 보냈던 곳과 비슷한 곳에 뿌렸던 것 같다.”

- 회고록에 남편은 늘 좋은 의사가 되고 싶어했다고 밝히고 있다. 남편이 생각하던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였나.

“환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환자에게 믿음을 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했다. 남편이 개원의를 하던 시절 셋째를 임신하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 병원 일을 봤다. 당시 남편은 환자가 오면 진료실을 나갈 때까지 이것 저것 자세하게 질문을 했다. 보통 20~30분 정도 대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이 떠난 뒤 강화도에 있는 요양원 원장으로부터 남편이 그곳으로 의료 봉사를 다닐 때도 노인분들게 가족처럼 대했다고 들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은 남편을 친손자처럼 대했다고 했다. 남편은 환자가 신뢰하는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생각했다.”

 

▲ 고 박준철 의사가 생전에 아프리카 배넹의 머시쉽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모습. (사진제공 : 송미경)

- 생전에 많은 의료봉사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아프리카 배넹의 ‘머시쉽’ 의료봉사를 비롯해 필리핀 의료 선교, 국내 의료 선교도 꾸준히 다녔다. 다니던 교회에 의료인이 열 명이 넘어 별도의 의료봉사팀이 구성돼 있다. 해외 의료봉사는 1년에 한 번 정도 다녔고 국내 의료봉사는 수시로 다녔다. 남편은 연애 시절부터 의료봉사에 대한 관심을 자주 보였다. 남편이 전남대 의대생 시절 방글라데시 같은 곳으로 의료봉사를 다니고 싶다고 말하며 함께 다니자고 한 기억이 난다. 그 때 ‘이 사람이 슈바이처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 혹시 아빠처럼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녀가 있나.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 예찬이가 남편과 같은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장례식 이후 남편의 물품을 화장할 때 청진기와 의사 가운 한 벌을 남겨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 때 막내가 나중에 의사가 되면 아빠의 가운을 입을 거라며 잘 보관해달라고 했다. 남편이 생전에 아이에게 의료봉사와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얼마 전 아이가 전해 준 편지에서도 아빠처럼  의사가 돼서 의료봉사와 선교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쓰여 있었다.”- 남편이 떠난 후 생계는 어떻게 이어가고 있나.“의사가 산재보험을 받은 전례가 드물어 모두들 산재처리가 힘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다행히 해결이 되서 보험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남편이 생전에 받던 월급의 5분의 1에 불과한 적은 보험금이지만 마침 해외 의료선교를 위해 남편과 함께 마련해 둔 돈도 있어 이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 남편은 세상을 떠나며 100여명에 이르는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해줬다. 남편의 인체조직기증과 회고록이 어떤 의미가 되기를 바라나.

“남편의 인체조직 기증의사를 밝히자마자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요청이 왔었다. 다음날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남편 한 사람의 기증으로 100여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장기기증은 기껏해야 5~10명 정도의 환자가 새로운 삶을 얻는데 인체조직 기증은 열 배가 넘는 환자들에게 새생명을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 놀랐다. 남편의 생전 철학 중 하나가 ‘우리는 나그네다’라는 것이었다. 물질적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떠날 때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인체조직 기증은 남은 환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인체조직 기증을 하기로 서약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인체조직기증이 미미한 실정이다. 100만명 중 3명 정도만 인체조직기증 의사가 있다고 들었다. 이런 점에 비쳐볼 때 남편의 결정이 인체조직기증을 확산시키는 데 어느 정도 관심을 일으켰다고 본다. 앞으로 인체조직기증 희망자들이 많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손의식 기자  hovinlove@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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