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의 행보가 상당히 흥미롭다. 지난 5월 의협 회장에 취임한 이래 다섯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이렇게 역동적인 활동을 펼친 의협수장도 없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런 활동만큼 성과를 거두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로 하고.

노 회장의 행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다. 여태껏 의료계가 정부를 상대로 제도개선을 요구할 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데 급급했다. 그런데 노 회장은 과감하게 의료계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안과 밖 모두를 향해 변화를 요구한다.

언론 인터뷰에서 의사들이 돈 되는 수술에만 집중하고,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교통사고로 말미암은 사망자보다 많을 수 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의료계가 입버릇처럼 '저수가 타령'을 하지만 병원들이 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다. 병원이 돈벌이를 위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남발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간의 의사사회 내부 관행과 뿌리 깊은 동료의식(?)을 고려할 때 그의 발언은 참으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고해성사’나 마찬가지다. 일종의 암묵적인 금기를 깼다. 당연히 그의 언론 인터뷰를 접한 일부 의사단체들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일반화해 말하고 개인의 의견을 협회의 의견처럼 언론에 발표해 음지에서 묵묵히 진료에 임하는 회원 다수를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 의사로 매도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노 회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사회 내부의 자정선언을 추진하고 나섰다. 의협 차원에서 회원들에게 고도의 윤리적 수준을 요구하는 동시에 비윤리적 행위를 한 회원을 제재하는 내용의 자정선언문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노 회장은 자정선언 추진을 우려하는 회원들을 향해 “자정 선언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는 회원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우리가 모두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냈다.

추측건대 노 회장의 의중은 이런 것 같다. ‘의료계 내부적으로 이런 병폐가 만연한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의료제도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여기에 순응하며, 제도를 뜯어고치려는 노력보다는 편법을 동원해 의업을 이어가고 있다, 더 이상 이런 문제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된 의료제도 탓에 의료시스템이 이 만큼 왜곡되고 병들어 가고 있으니 이참에 과감하게 문제를 개선해 나가자는 게 아닐까 싶다.

그의 행보에 지지를 보내는 목소리도 있다. “의사 사회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과 자정선언은 의료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위대한 첫 걸음”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틀리지 않은 평가라고 본다. 왜곡된 의료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외부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깊이 성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노 회장의 대응 전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만 문제는 진정성이다. 그의 고해성사가 과연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냐는 것이다. 자극적인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끌고 외부의 규제를 면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자정선언’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심지어 그의 말과 행보를 ‘악어의 눈물’에 빗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고해성사와 자정선언 발언이 얼마만큼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참에 노 회장이 과감하게 의료계 내부에 깊이 봉인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으면 한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그 속에서 온갖 욕심과 질투, 시기 등이 빠져나가고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희망이다. 그는 지금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속에서 어떤 재앙이 뛰쳐나올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외부의 탓만 하는 문제제기 방식으로는 어떠한 변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 수 십 년간 누적돼온 의료시스템의 왜곡과 뒤틀림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얼마나 뿌리 깊은지 명확히 알아야만 올바른 개선책을 찾을 수 있다.

더 이상 “저수가로 병원 경영이 힘들고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져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는 모호한 언어로는 의료제도 개선을 위한 의료계의 요구에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지난 7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국의사 가족대회’에서 노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우리들만의 언어로 주장을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국민의 언어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그의 말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볼까 한다. 물론 최종 판단의 키워드는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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