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와 손잡고 난임치료 사업 추진…한방 병의원 불황 타개 모색
산부인과 "지금까지 나온 자료만 보면 의학적 근거 부족해"

한의계가 저출산 극복을 위한 한방 난임치료 사업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한방 병의원의 불황 타개를 위한 새로운 진료 영역 확대를 꾀하는 것이 아니냐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대한한의사협회는 오는 10일로 예정된 ‘한방의 날 기념식’에 한의약적 진료로 임신을 원하는 난임 여성들을 초청한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오는 10일은 '한방의 날'인 동시에 '임산부의 날'이기 때문에 이를 기념해 난임여성들을 초청한다는 것이 한의협의 설명이다.

한의협은 지난 2010년 한방의 날 기념식에서 독립 유공자에게 한약 전달식을, 지난해 기념식에서는 세계태권도연맹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그런데 올해 기념식에는 이례적으로 난임 여성을 초청한다는 계획을 세워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한의계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 돌파구 모색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국세청이 지난해 발표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9년 국내 전체 한의원 수입 신고 건수는 총 1만2,441건으로, 사업장당 평균 신고수입금액은 2억5,400여만원으로 전년도의 신고건수 1만2,801건에 사업장당 평균 신고수입금액 2억6,500여만원과 비교해 소폭 증가했다.

같은 시기 일반과‧내과‧소아과 등의 사업장당 수입금액인 4억7,100만원, 일반외과‧정형외과의 7억9,000만원, 산부인과 7억5,700만원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한의사의 적정인력 초과도 한의계 불황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자원 수급현황 및 관리정책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가용 한의사를 기준으로 2015년까지 지속적으로 공급과잉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매년 11개 한의대와 1개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 약 750여명 이상의 신규 한의사가 배출되고 있지만 이들 중 대부분이 한의원을 개설하면서 환자유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한의계가 불황을 타개하려는 방안으로 난임치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의협 김정곤 회장은 10일 한방의 날 기념식과 관련해 “평소 한의약에 관심이 많은 임산부들과 난임 여성들을 초청해 한의약적 태교법과 난임 치료법을 알려줌으로써 그 어느때 보다 뜻 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며 “현재 한의협은 각 지부별로 실시 중인 난임사업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가적 차원의 이슈인 저출산 및 난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의계 차원의 한방 난임치료 사업 추진은 이미 수년 전부터 추진돼 왔다. 

대구시한의사회, 인천시한의사회, 경기도한의사회 등은 지난 2009년부터 해당 지역 보건소 등과 연계해 불임여성을 대상으로 한방 난임치료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대구시한의사회는 지난 2009년 동구에서 난임여성 18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주 2회 침구 치료 및 한약 투여를 실시했으며, 인천시한의사회도 인천시 등과 ‘저출산 극복 민‧관 협력 한의학 난임치료 사업’ 업무 협약을 체결해 지난해 4울부터 6월까지 3개월간 한방 난임치료를 실시했다.

경기도한의사회 역시 지난해 일산동국대한방병원 및 화성시 보건소와 공동으로 난임여성 대상 한방 난임치료를 추진한 바 있다.

복지부, 저출산 대응 한의약 불임치료율 제고 추진

보건복지부도 한의협의 한방 난임치료 사업 추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2차 한의약육성발전계획’에 따르면 저출산에 대응해 한의약의 불임치료율을 제고한다는 목표 아래 ▲표준적 불임치료 방법 정립 및 한방임상진료 지침 개발 추진 ▲표준한방불임시술 재정지원 추진 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이동녕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선정해 한국한의학정책연구원을 통한 한방 난임치료의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복지부 한의약정책과 관계자는 “한방을 통해 안전하고 효과적 방법으로 난임치료에 대한 임상진료가 정립되면 한의학을 이용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다 효과적인 진료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방치료가 출산률 제고에 의미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 정책적 지원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한의약정책과 관계자는 “한방난임사업이 과학적으로 의미 있다고 정리된 자료가 없는 만큼 일정 부분이라도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나온 한의약의 결과를 보고 싶다”며 “여성의 생식건강에 한방치료가 의미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지원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의협 역시 한방 난임치료 추진이 한의약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의협 관계자는 “대구시 달성구의 사례는 한방 난임치료가 과학적으로 충분한 실효성을 입증한 것인데 양방에서 말하는 에비던스(evidence)가 부족할 뿐”이라며 “한방에서 과학적 데이터 마련이 아킬레스건이긴 하지만 체계화를 갖춘다면 경쟁력이 있는만큼 한의약 활성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추진된 한방 난임치료 성과를 볼 때 치료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됐다는 것이 한의계의 주장이다.한의협에 따르면 대구시한의사회가 2009년 동구에서 난임여성 18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주2회 침구 치료 및 한약 투여를 실시해 자연임신 3명, 체외수정시술로 4명의 임신을 성공시켰으며 2010년 달성군에서는 20명 중 5명을 자연임신 시키는데 성공했다.경기도한의사회가 동국대 일산한방병원에 의뢰해 실시한 '한방난임치료 연구지원사업'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한약 투여와 침구치료를 통해 25명 난임여성 중 5명의 임신이 확인돼 20%의 임신율을 보였다.한방 난임치료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한의협 장동민 홍보이사는 “한의약이 과학적 근거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오로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한의약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면서 근거를 만들 방법을 막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장 이사는 “양방의 체외수정시술에 국가가 지원하는 지원금은 1회당 180만원씩 총 4회(4회차는 100만워 범위 내)까지 약 640만원에 이르지만 한방 난임치료에 대한 지원은 전무한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한방 난임치료를 받고 싶어도 비용이 부담돼 이용하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방난임치료가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그 영향이 상당한 범위에 이를 것”이라며 “이로 인해 체외수정시술이 양방 지원금의 삼분의 일 수준이라도 지원이 되면 전체적으로 공공의료가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부인과 “한의약 난임치료 효과, 과학적 근거 미흡”

반면 산부인과 측은 한방 난임치료 효과의 과학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한의계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연구를 했다고 하지만 사실 아직까지 과학적인 면이 부족하다”며 “의학적 근거로 인정하기에는 미흡한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용대비 효율성을 따졌을 때 한방 난임치료보다 산부인과의 치료에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신 사무총장은 “재정 지원 비용대비 효과를 볼 때 한의약 쪽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지원 우선순위를 고려해 산부인과의 불임 시술 등을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객관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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