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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만나다] 예비의사들, 나눔의 몸짓으로 세상과 프리허그를 하다유영상·최대규(경희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본3·본2)
의대에도 축제가 시작됐다. ‘세란제’는 연세대 의대생 600명이 모이는 큰 행사다. 일일호프, 체육대회, 영화제 등으로 시끌벅적한 며칠이 계속된다. 그런데 이번 축제에는 예년과는 다르게 소아암 환아를 돕자는 내용의 포스터가 여기저기 걸린다.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앓고 있는 올해 4살의 동욱이를 돕기 위해서다. 의대 축제 기간 동안 진행되는 행사 수익은 온전히 동욱이 치료를 돕는데 쓰일 예정이다.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늘 그렇듯 젊은 인파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이들 사이로 ‘눈이 마주치면 웃어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간혹 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는 행인도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프리허그'를 한다. 웃으면서 사진도 찍는다. ‘자살 및 우울증 예방사업’ 리플렛도 나눠준다. 이 캠페인은 자살·우울증 문제의 심각성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웃음을 전해주는 ‘스마일캠페인’ 행사의 일환이다. 이 캠페인을 주도하는 이들은 모두 의대생이다.

작년 여름부터 대한민국 의대에서는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물안 개구리’라고 자칭했던 의대생들이 사회와 소통에 나선 것이다. 학생회비와 개인 용돈을 아껴 십시일반 돈을 모으고, 축제기간에 모금함을 들고 캠퍼스를 누빈다. 자살과 우울증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러 거리로도 나섰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 두 청년이 있다. 유영상(경희의전원 본3)씨는 ‘1% 나눔운동’을, 최대규(경희의전원 본2)씨는 ‘스마일켐페인’을 각각 기획했다. 지난 25일 늦은 저녁 경희의대 본관에서 이들을 만났다. 


- 예비의사들이 나눔운동과 자살예방사업을 벌인다고 했을 때 일시적 행사려니 했다. 그런데 꾸준히 지속하는 행사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어떻게 기획된 건가.

▲ 유영상(경희의전원 본3, 국제나눔연대회장)

유영상(이하 유) : ‘국제나눔연대’를 잠깐 언급해야 할 것같다. 2009년 의대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모임인데, 정기적으로 자선파티를 열고 거기서 모인 회비를 희귀난치병 환아를 돕는데 기부해왔다. 또 국내에 임시로 거주하는 난민(아프리카, 동남아 등지에서 입국해 체류 허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의료봉사도 실시하고 있다. 지금은 회원 수만 2,300여명에 달한다. 의대생, 치대생, 간호대생, 일반직장인 등 다양한 직역의 젊은이들로 구성돼 있다. 이런 국제나눔연대 활동을 공유하고 싶어 가장 먼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의회(의대협)에 ‘1% 나눔운동’을 제안했다.

최대규(이하 최) : ‘스마일캠페인’은 처음에 의대생 6명이 자살예방의 중요성을 일반인에게 알려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무작정 거리로 나가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웃고, 안고, 사진찍고, 자살예방사업 리플렛을 나눠줬다. 처음엔 무관심과 홀대도 받았다. 캠페인이 지속되면서 사람들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페이스북 팬페이지(www.facebook.com/medikeeper2012)에 오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 웃고, 사진찍는다고 해서 자살예방운동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 : 그래서 조금이나마 자살예방운동에 전문성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경희대학교 의대 백종우 교수(정신건강의학과)님께 도움을 청했다. 백 교수님은 현재 동대문구정신보건센터장을 맡고 있고,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원이다. 교수님은 의대생을 위한 게이트키퍼 교육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게이트키퍼란 일반인들이 자살예방교육을 받고 주변의 힘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게이트키퍼 교육은 여러 자살 예방 활동 중에서 효과가 입증된 몇 안 되는 활동이다. 이번엔 의대생 게이트키퍼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의대생 게이트키퍼를 ‘메디키퍼(medikeeper)’라고 부르기로 했다. 메디키퍼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위해 지난 8월 1박2일 동안 의대생 24명이 한국자살예방협회와 동대문구정신보건센터 등의 후원으로 자살예방전문가 교육을 받았다. 이들 24명의 메디키퍼 기획단은 총 3개팀(청소년팀, 대학생팀, 노인팀)으로 나눠 팀별 활동을 진행 중이다.   

- 메디키퍼 기획단의 게이트키퍼 교육프로그램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됐나.

최 : 청소년팀은 첫 활동으로 지난 8월 23일 광주수완고등학교에서 28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자살예방교육을 했다.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 스마일캠페인을 만들고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노인팀에서는 대학생들이 봉사활동에 갔을 때 노인분들의 자살우울증 위험도를 측정하고, 고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는 매뉴얼을 개발하고 있다. 매뉴얼을 개발하면 이를 봉사동아리들에게 교육할 예정이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각 팀별로 구상한 자살예방활동을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그렇게 준비한 자살예방활동은 내년 1월에 '메디키퍼 1기'를 뽑아 정식으로 진행된다.

- 1% 나눔운동을 시작한지 1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동안 성과는 있었나.

▲ 최대규(경희의전원 본2)

유 : 1% 나눔운동의 첫 결실로 의대협은 지난달 8일 총 468만원의 성금을 모아 희귀난치병(뮤코다당체증)으로 삼성서울병원에서 투병중인 정상혁 환아에게 전달했다. 468만원은 전국 23개 의대생들의 학생회비 1%와 의대생 174명이 한달에 커피한잔을 아껴 모은 거다. 경북의대에서는 처음으로 축제 기간 동안 나눔운동을 실천했다. 소아암 환아 동영상을 상영하고, 이웃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봉사도 진행해 총 85만원을 모았다. 의대 축제를 나눔행사로 기획하고 있는 학교는 중앙의대, 연세의대, 고려의대 등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라면 패쇄적이었던 기존 의대생 봉사활동을 탈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눔운동은 사회와 좀 더 소통하게끔 의대생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노력은 향후엔 의사의 좌표를 결정하는 더 중요한 조건이 될 거다.  

- 고려대의대 학생회에서 환아가 그린 티셔츠를 오는 10월 축제기간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신선한 발상같다.

유 : 나눔운동이 그렇게 진화하고 있는 거다. 연세대 의대에서는 소아암 환아를 돕기 위해 축제 때 커피 할인 티켓 판매, 체육대회 아이스크림 판매를 기획하고 있다. 의대생들은 환아를 찾아 대화를 나누고 웃음을 전하는 나눔운동을 더 가치있게 여긴다. 앞으로 더 많은 나눔 아이디어들이 속속 나올 것 같아 기대된다. 다른 단체에도 나눔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클럽S2’라는 의대생 동호회 단체도 나눔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향후 보건의료계열의 대학생과 일반 대학생을 중심으로 나눔운동을 제안할 계획이다.

- 메디키퍼는 의대생이 전문적으로 자살예방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거나 다름없는데. 왜 의대생이 자살예방운동에 나서야 하나.

최 : 의대생, 특히 의료인이 자살예방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메디키퍼 기획은 불가능했을 거다. 의대생은 아직 의사는 아니지만 국시를 통과하면 일차의료의사가 된다. 논문에 따르면 자살자 80~90%는 죽기 전에 1차병원(동네의원)을 방문한다고 한다. 의사라면 자살 징후를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런 징후를 파악하는 능력을 미리 갖춰야 한다. 그래서 게이트키퍼 교육 효과가 가장 높은 집단은 의료인이라는 연구보고도 있다.       

- 의대생도 자살 충동을 느낄만큼 빡빡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유 : 저도 메디키퍼 기획단으로 활동 중인데, 교육 과정에서 미국 의대생 21%가 자살을 생각했다는 설문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한국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족보에 적응해야 하는 의대생들 아닌가. 의대생들은 분명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최  : 메디키퍼 대학생팀에서는 실제 의대생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자살문제에 대한 의대생 인식조사’라는 설문조사를 조만간 실시할 예정이다. 설문항목에는 우리나라 자살의 심각성 인식도와 개인의 자살 충동 경험을 묻는 질문도 포함돼 있다. 나아가 의료인이 자살예방운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느끼는가에 대해서도 물어볼 계획이다. 

▲ 메디키퍼는 우리나라 의대생을 대상으로 자살문제 인식 관련 설문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 2012년 현재, 우리나라 의대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뭔지 궁금하다.

유 : 우리가 한국 의대생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다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할 것 같다. 일부 의대생은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지만 이를 악물고 들어온 경우도 있다. 한해 등록금 1,000만원. 6년이면 1억원을 빚지는 학생도 있다. 수련의 기간에 박봉에 시달리고, 봉직의 길도 좁다. 개원가는 갈수록 팍팍해진다. 여기에 포괄수가제, 의료조정분쟁법 등 의사만 옭아매는 규제 투성이다. 의사인력이 핵심이라면서 의대생 등록금 지원은 단 한푼도 없다.

- 얼마전 의대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대생 각성 프로젝트'(MAP)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DB 참여를 요청하는 전체 문자메시지 건 등으로 시끄러웠다. 의사단체, 혹은 선배 의사들과 의대생 간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가.

유 : 선배 의사가 와서 포괄수가제 등 의료현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져 반가웠다. 다만 학생들이 선배가 오는 자리니 인원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접근 방식이 싫었다. 선배들도 그런 측면에서 의대생과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는 물론 위압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민주당 경선 문자메세지를 두고 의대생과 의협이 각을 세우는 건 한마디로 바보같은 논란이다. ‘의사들이 한 목소리를 내자’는 진정성만 이해하면 된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의대협을 중심으로 의대생의 목소리를 모아 올 대선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 어떤 의사가 되고 싶나.

유 : 의전원에 입학해 연구와 환자진료는 물론 의료봉사까지 열심인 훌륭한 교수님들을 많이 봤다.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의사가 패쇄적인 환경에서 교육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족보, 인계장 등등. 그 안에 시험준비, 선후배 관계, 실습 때 과별로 혹은 교수별로 지켜야 할 지침들이 담겨있다. 심지어 특정 교수님이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도 있다. 결국 전통을 따라 가는 게 실수하지 않는 거라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너무 할 일이 많은데 창의력을 갖고 어떤 일에 도전하다보면 소외되기 십상이다. 결국 공식대로 적응할 수밖에 없다. 그건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보수를 탈피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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