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선(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보건경제정책학회장)

한 보건경제학자의 '의사 증원론'이 의료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연세대 정형선 교수가 올해 초 ‘적정 의사인력 및 전문분야별 전공의 수급추계’ 보고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면서부터다.

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0명(한의사 포함) 수준으로 OECD 평균 3.1명에 비해 의사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역별·진료과별로 쏠려있는 의사인력 구조와 일명 ‘3분진료’라 불리는 공장식 진료환경도 근본적으로 의사 수 부족에 기인한다. 따라서 의대입학 정원을 지금보다 최소 20% 이상 늘려 기피과나 의료취약지에 의사가 가게 하고, 의사 1인당 진료 환자를 줄여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하지만 의사 인력 증원론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은 거세다. 정 교수는 최근 수십통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정형선 교수로부터 직접 의사 증원론을 주창한 배경과 이유를 들어봤다.      


- 지역별·진료과별 의사 수급 불균형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모색하고 의사 증원은 그후에 결정할 문제라는 의견도 많다. 의사인력을 섣불리 늘렸다간 공급체계의 왜곡만 초래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건 시간벌기 내지는 지금의 문제 상황을 계속 끌고 가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의사 수급 불균형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다. 핵심은 의사 증원 없이 수급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전체 임상의사 인력풀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부족하다."

- 의사인력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기존 의대의 입학정원을 증원해서는 인기과·대도시 쏠림 현상은 여전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인기과를 가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문제는 의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기피과가 아닌 다른 과로 갈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즉 다른 과로도 못가고 넘치는 정도의 인원이 있어야 기피과 이외의 과를 갈 수 있는 거다. 과거에도 기피과는 항상 존재했다. 대도시 쏠림 현상도 마찬가지다. 지방 병원에서는 2억~3억원을 줘도 의사를 못데려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배부른 얘기다. 전체 의사 수가 늘면 지방에도 자발적으로 가는 의사가 생길 것이다."

- 의사인력을 늘릴 경우 일명 ‘3분진료’라 불리는 진료환경이 개선되고 결국 의료서비스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 근거는 뭔가.

"환자를 볼 때 의사가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의료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여지가 있다. 의사 수를 늘리면 1인당 진료 환자 수도 줄어들게 된다. 물론 3분진료의 원인에는 수가제도 탓도 있다. 그 부분은 정부와 의료계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만 그전에 의사 공급량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사인력 증원과 병행해 저수가 구조를 개선하는 수가 재조정 노력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 

- 만일 의사인력을 늘리지 않았을 때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나.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요한 전문분야로 의사인력이 가지 않으면 당장 국민들이 불편해진다. 현재 흉부외과, 산부인과까지 대증요법에 불과한 수가 가산금이나 소폭 인상을 고민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전체 진료과간 수가체계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결국 의사 수 증원 없이는 이쪽 저쪽에서 의사 부족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환자가 받고 싶은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적어도 5분진료는 받아야 하지 않겠나. 지금은 환자가 의사한테 질문하기도 어렵다. 최고 실력을 갖춘 한국 의사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아깝지 않은가."

- 의료계가 의사 인력 증원을 두고 극도로 반대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의사인력이 늘어나면 한정된 재화를 나눠가져야 한다. 의사 개별 수입이 적어진다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의사들의 희소가치도 줄어든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의사들이 반대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전체적인 보건의료제도 차원에서는 국민 의료서비스 확대가 먼저 고려돼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의사 수 증원으로 더 큰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 의료 공급이 수요를 이끈다는 ‘의사유인수요론’으로 의료계가 의대정원 축소론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뭔가.

"의사들이 수요를 유인할 힘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정보비대칭 등 의사는 진료 시 환자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인수요를 겁내서 의사 공급량을 늘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불필요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관리하면 된다. 의사 인력 증가에 따른 유인수요 발생은 국민이나 정부가 걱정할 일이다. 이를 의사가 의대정원 억제 논리로 활용하는 건 억지이자 국민에 대한 협박이다."

▲ 지난 13일 건강보험공단 주최로 열린 '건강보험 미래발전을 위한 의료인력 적정화 방안'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정형선 교수.

- 성적우수자가 의대에 집중되는 현상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고 들었다.

"성적우수자의 편중 현상은 의사들도 스스로 인정하는 문제다. 사회적으로 인력 재배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 성적우수자 쏠림으로 인해 의사 입장에서 기대 수준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높은 사회계층으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생긴다. 따라서 이 수준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그런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건 의사라는 직종이 모두 성적우수자만 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 분야에서 필요한 의사가 있고, 환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진료현장에 필요한 의사가 있다는 얘기다."

- 의대생 선발 기준을 개선하면 의사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나.

"의대생 선발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연구용역 보고서에 선진국이 의사 수급 불균형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자세히 기술했다. 이들은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지역 쿼터제 같은 제도를 동시에 도입했다. 예를 들어 지역 고등학교 출신 졸업생을 그 지역 의대 정원의 절반을 배정하는 식이다. 의대 교육과정도 중요하다. 지역의료 현장에서 실습하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실제로 여러 외국의대에서 지역의료 커리큘럼을 실시한 결과 지역의료 순응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 ‘장학의사제도’나 ‘시니어닥터’ 등으로 현재 의사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의대 입학정원 증원 문제를 피하기 위한 발언이라고 본다. 직접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현 의사 인력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키는 이야기다.  한 의사단체에서는 OECD 평균 의사 수가 한의사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라고 하면서 지금의 의사 인력은 충분하고, 공급과잉이라고 주장한다. 팩트를 정확히 하자. 한국은 임상의사 수만 인구 1,000명당 2.0명이다. 의사가 1.7명, 한의사가 0.3명이다. 의사 수만 놓고 보면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다. 

-의사 수급 추계와 관련 OECD 국가와 우리나라의 의료환경 차이가 상당히 큰데, 거기에 대한 보정 없이 단순 수치로만 비교했다는 지적도 많다.

"보정 절차가 당연히 필요하다. 보정하면 OECD 국가 수준인 3.1명까지 의사 인력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가 나온다. 다만 OECD 지표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 지 확인된다는 게 중요하다. OECD 통계는 국가간 임상의사 인력을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의대 입학 정원을 500여명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우리 환경을 감안해 보정한 것이다."

- 건강보험공단 노조가 ‘건강보험공단 의과대학’ 설립 등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한 의견은.

"현 상황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보험자가 의과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고 본다. 공단일산병원을 임상연수 장소로 활용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다만 공공기관이 설립한 의대이기 때문에 여러 근무 옵션을 걸어서 의료취약지에 가는 공공의사를 배출하는 방법을 모색해봄직하다. 의사 수급 불균형을 고민하는 의사협회와 협조해 추진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 2013년도 환산지수 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가 좀 더 객관적인 수가협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의료계에 수가인상 결과에 동의를 구할만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환산지수 점수로만 수가인상폭이 알려졌는데 상대가치점수 자체도 매년 올라간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실제 수가인상폭을 계산해냈다. 여기에 진료량도 의료기관 순수익만 추출해 수가인상폭에 포함시켰다. 그랬더니 2012년도 수가인상폭이 2%가 아닌 5~6% 이상 나왔다. 앞으로 이런 계산 방식을 수가협상에도 본격 적용할 방침이다."

- 의료계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사 인력 증원을 주장한 이후 이메일로 별의별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최소한 우리 사회의 엘리트라고 하는 의사들이 서로 의견이 다른 데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서는 안되지 않나. 그렇다고 학자의 주장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회 현상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럴 때는 논리로 대응했으면 좋겠다. 의료제도는 의사가 핵심이다. 의사도 의사 인력 구조를 거시적인 측면에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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