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중증 만성질환자 가족들 경제적·신체적 고통에 삼중고…"의료사회복지 서비스 적극적 관심 필요해"

#. 그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다만 40대 중반을 넘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독신으로 살면서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고 산다. 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탓에 결혼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 간병인이 하루에 몇 시간씩 와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지만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어머니 곁에서 보낸다. 직장 생활도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의 삶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은 고사하고 당장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마냥 벅찰 뿐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에게 간병인을 파견하는 업무를 하는 한 장기요양센터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현재 암환자나 중증 만성질환자 보호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신적 신체적 피곤함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날마다 삼중고에 시달린다.

대한치매학회가 치매 환자 보호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어려움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치매 환자 보호자 가운데 직장을 그만둔 비율이 27%를 차지했고, 51%는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고 응답했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인 비율은 간병 기간이 5년 이상일 경우, 환자가 중증일 경우 더욱 컸다. 

이런 상황은 곧 치매 환자를 둔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고, 환자의 간병과 치료를 더욱 힘들게 만들어 상태가 악화되는 악순환을 초래하면서 ‘질병빈곤층’을 양산한다.

치매학회 홍보이사인 가천의대 신경과 박기형 교수는 “환자 보호자들이 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급여제도의 도움을 일부 받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부담은 너무 크다”며 “이로 인해 보호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문제, 간병 시간 증가로 인한 건강 악화 등 2차, 3차의 문제가 뒤따라 질병빈곤층을 양산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인구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노인 환자들의 간병비 부담은 대부분 자녀 세대들의 몫이다.   

서울특별시 북부병원이 2011년 한 해 동안 병원을 이용한 노인환자 1,28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원환자의 진료비를 부담하는 주체는 자녀가 78%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배우자 15%, 본인 8% 등이었다.  

노인환자가 입원치료를 위해 1개월간 부담하는 진료비는 약 70만원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기간은 평균 2~3개월에 달했다.

입원치료 후 가정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약 32%에 불과했고,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15%), 재활․ 요양병원(35%) 등으로 옮겨가 또다시 병원신세를 지는 경우가 50%나 돼 자녀들의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암 환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 만만치 않아

암환자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사회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특히 여성암 환자가 있는 가정이 더욱 그렇다.

지난해 이대여성암전문병원 유방∙갑상선암센터 문병인 교수가 내원한 유방암, 갑상선암, 자궁암, 난소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투병했던 여성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심적 스트레스 여부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자 중 85%가 울화병이 의심되거나 화병 진단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정에서 아내이자 어머니인 여성이 암에 걸릴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여성암으로 투병중인 어머니가 장기간의 투병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로 울화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가족구성원인 남편과 자녀들이 환자 간병을 위해 휴직, 휴학, 업무 단축 등이 반복되면서 경제적 어려움과 학업수행의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를 진행한 문 교수는 “가정 내에서 아내, 어머니로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암 환자들은 암이라는 질병 이외에도 심각한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으며 가족구성원들은 가사노동 및 간병으로 인한 경제·사회적 비용까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며 “가정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여성암 환자들에게는 심리적 치료가, 가족들에게는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암환자의 배우자는 관상동맥질환이나 뇌졸중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외국의 조사결과도 나왔다.

올해 초 미국심장학회(AHA) 학술지에 게재된 스웨덴 룬드 대학 보건의료연구소의 지젠광(Jianguang Ji)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암환자 배우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을 겪을 위험이 13~29% 더 높았다.

이처럼 암이나 중증 만성질환자를 둔 보호자들은 간병과 함께 경제적, 신체적 어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안타깝게도 국내 건강보험제도나 사회복지제도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경제적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

수년 전부터 간병비 급여화와 ‘보호자 없는 병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간병비 급여화를 위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건강보험 재정 부담 우려 때문에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폐기됐다.

간병서비스 급여화가 이뤄지면 '보호자 없는 병원'도 자연스럽게 도입될 수 있다.

19대 국회 들어서면서 지난 7월 민주통합당 이용섭 의원이 간병서비스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용섭 의원은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도시화, 핵가족화 등으로 가족구조가 변화하면서 병원 내 간병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간병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져 있어 가계의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환자 간병에 따른 비용 부담을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암이나 중증 만성질환자 보호자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는 정책과 함께 이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배려도 필요하다.   

한 전문가는 “중증질환자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서는 보호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정책적인 접근은 환자 중심으로만 이뤄져 왔다”며 “따라서 중증질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의료사회사업 서비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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