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연(대한전공의협의회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이사,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대한전공의협의회 제 16대 집행부가 최근 출범했다. 경문배 신임 회장은 전공의 노조를 부활시켜 전공의 인권 찾기에 올인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특히 새 집행부는 조직개편 과정에서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을 별도 사업국으로 분리, 독립시켰다. 이는 그동안 쉬쉬해왔던 여성 전공의들의 인권 침해 사례를 공론화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해보겠다는 취지다.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 초대 이사를 맡은 고대안암병원 김이연(가정의학과 레지던트 2년차) 전공의를 만나 향후 활동계획을 들어봤다.


 
-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이 별도 사업국으로 독립된 배경은.

“현재 2~3차병원급 의료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여전공의 비율이 40%에 육박하고 있다. 의대 정원 내 여학생 비율이 절반에 달할 정도로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의료인력 성비에도 많은 변화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여전공의가 양적으로 늘고 있지만 직능환경의 질적 수준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5대 대전협까지는 복지국에서 여전공의를 포함한 전공의 전반의 수련환경에 대한 다양한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여전공의들의 교육수련 환경을 발전시키려면 보다 섬세하고 특화된 접근이 이뤄져야함을 인식하고 별도 사업국으로 독립을 결정하게 됐다.”

-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 차원에서 여전공의 실태조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한다고 들었다.

“16대 상임이사회 사업에 포함된 전공의 교육수련 및 복지환경에 대한 실태조사가 우선 시급하다. 특히 여전공의와 관련된 설문조사 섹션을 구성해 남녀 전공의 모두에게 질의할 계획이다. 또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의 기능을 대전협 사업과 연계해 특화하고 여전공의를 위한 창구가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여전공의들의 인권침해 사례 수집을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나아가 전공의 대 전공의, 전공의 대 의료기관, 전공의 대 환자 간 발생하는 문제로 나눠 상황별 예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법적 해결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 여전공의들이 주로 토로하는 불만은 어떤 것들이 있나. 

“얼마전 한국여자의사회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여의대생과 여전공의의 90% 이상이 성별로 인한 불이익을 체감했다고 한다. 진로선택에 있어서 암묵적인 성차별 관행을 경험한 여전공의들은 지속적인 좌절감을 겪어왔다. 또 성희롱 및 성추행에 따른 고민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까지 접수된 민원 사례를 보면 회식 자리에서 여전공의를 교수 옆에 꼭 앉힌다든지, 교수가 여전공의 특정 신체 부위를 지칭하며 예쁘다고 표현하는 성희롱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희롱 사례는 가해자, 피해자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 때문에 대부분 여전공의 혼자서 감내하는 것으로 종결되고 만다.”

- 병원 내에서 여전공의가 성차별을 받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전공의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그 과에서는 여전공의를 선발하지 않는다’, ‘그 과의 여전공의는 총원 중 몇명 이내로 제한된다’는 식의 차별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인턴 병원을 선택할 때도 소문에 의해 여전공의가 뽑힐 수 있는 과를 선택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사견을 가장한 크고 작은 성희롱 발언이나 성추행 등은 전공의와 환자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여전공의들이 입원 환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경험을 서로 털어놓는 모습은 드문 일이 아니다.”

-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이 이런 피해자들을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여전공의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문제 상황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미 발생한 문제도 그 불합리성을 명확히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 또한 여전공의 권리장전을 만들어 피해자가 부적절한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지지하는 의료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민․형사 고발이 필요한 사례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를 안내하는 등 대처 방안을 자세히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이런 경우 대전협 차원의 공식적인 의견표명 및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한 이슈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얼마전 최종 판결이 난 고대의대생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고대의대생 성추행 사건은 특정 학교에 국한된 불명예나 특수 상황이 아니며 그간 방치돼 왔던 의학교육 및 의료현장 내의 문제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례다. 우리 사회가 의사에 기대하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도 재확인된 사건이다. 사건 직후 가해자 측이 피해자에게 인신공격을 가한 시도가 있었다는 점도 충격적이었다. 의대생들의 성의식은 의사가 되고 나서 병원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 초대 이사로서 각오도 남다를 것 같다.

“전공의 전반의 의료환경을 개선하는 과정 일부에 여전공의 교육수련이라는 관점이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전공의로서 직간접적으로 겪은 경험들은 여전공의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여성전공의교육수련국이란 명칭을 붙인 것도 여전공의 친화적인 기구를 고심한 흔적이다. 여전공의가 자신의 권리와 역할을 바르게 인식하게끔 도움을 줄 수 있는 열린 기구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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