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의 서바이벌 의료윤리>

■ 지난달의 딜레마 사례 – 돼지감자로 당뇨를 치료하겠다는 단골환자

65세 최씨는 당뇨병으로 10여년째 치료중인 당신의 단골환자이다. 식사조절도 잘 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는 모범환자로 경구용 혈당강하제를 복용중이다. 최근 시행한 당화혈색소가 7.1% 정도로 비교적 조절이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약을 그만 먹고 싶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친척중 한분이 돼지감자를 먹고 당뇨가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단다.  최씨도 이미 돼지감자 엑기스 6개월분을 주문해 놓았다며 당신의 의견을 묻는다. 주치의로서 당신은 어떻게 대화를 지속해 나갈 것인가?

■ 이렇게 생각합니다!

공중보건의사로 보건지소에 근무할 때 비슷한 일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당뇨병 약값이 부담된다며 불만을 얘기하곤 하던 분이, 정작 당뇨에 좋다며 100만원짜리 정수기를 턱하니 들여놓았다고 하시던. 참 이런데 쓰는 돈을 의료보험료로 돌릴 수 있다면 우리나라 의료가 얼마나 좋아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지요.(요즘 여러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고.) (라포르시안 독자의견)

본 사례에 있어 제 머릿속의 생각은 '소용 없으니 먹지말고 환불하거나 당뇨병 없는 가족들이 간식으로 드시게 해라. 앞으로 그런 돈 아껴서 다른 데 써라' 하고 싶지만,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환자가 자기 몸에 대해 직접 시행하는 행위를 강제로 금할 수는 없습니다. 판례로도 자가의료행위는 의료인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대한 예외로서, 제한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으로 알고있구요.

따라서 의사의 역할은 충실한 조언자로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의사로서 제가 아는 한, 그리고 의학계에서도 돼지감자엑기스가 당뇨병을 완치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다만 돼지감자가 당뇨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앞으로 연구가 이뤄진다면 일정한 효과가 입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명백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이미 명백히 입증된 여러 치료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소비일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일상어로 잘 풀어서 설명해야겠지요.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당뇨약을 끊고 돼지감자엑기스를 섭취하는 것을 막을수는 없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도 이 의사에게 치료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상의해주기를 바라는 경우입니다.

환자는 이미 의사의 권유를 따르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의사-환자계약의 실질적 내용을 파기한 것임에도, 의사는 자신이 권유하지도 않은 치료법에 대한 경과를 모니터링하고 일정부분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의사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현행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료거부를 명시한 의료법의 불합리한 측면을 드러내는 것인데, 의료법에서 진료거부를 명시한 조항은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절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념을 반영한 것이기는 하지만 의료윤리의 측면에서 보면 공정성을 훼손한 조항으로서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라포르시안 독자 의견)

 

■ 긴 고민, 간략한 조언

과거의 의사-환자관계에서는 정작 아픈 것은 환자이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부분 의사에 의해 내려졌지요. 환자들은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값비싼 검사나 위험이 따르는 시술의 시행여부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행사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많이 변하여 이제는 환자의 자율성이 무시되는 의학적 결정이란 있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의학적 결정권은 더 이상 의사의 몫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협력의 과정입니다. 이제 의사는 환자에게 진단과 치료에 관한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뿐, 그 시행여부는 환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새로운 경향이 대세가 됐습니다.  그런데, 보완대체의학은 제도권 의학에만 익숙한 대부분의 의사에게는 아직도 낯선 분야인지라 종종 난처한 상황이 초래되곤 합니다.

보완대체의학의 윤리를 다루는 의학문헌들은 정통의학에서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대체요법을 고려해 보되, 안전성과 효과라는  두 가지 잣대를 염두에 두라고 조언합니다.  환자가 원하는 대체요법이 어느 정도 이상의 안전성과 효과가 있는 것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시도해 볼 수 있겠지요. 문제는 대부분의 대체의학이 효과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안전성을 고려하라는 것입니다. 부작용이 별로 없는 식이요법 등이라면 환자를 모니터링한다는 전제하에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질병치료에 기존 정통의학의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는 경우라면 환자를 잘 설득해서 불확실한 치료에 실험대상이 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보완대체의학에 별 관심이 없는 의사가 환자들의 물음에 잘 모른다거나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는 식으로 무시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설득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십중팔구는 환자들이 두 번 다시 그 의사에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환자가 다른 정보를 찾아 헤매다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면 악행금지의 원칙이라는 의료윤리의 원칙에 위배되는 결과가 초래되겠지요. 의사-환자 관계에도 상당한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제 견해는 이렇게 의사의 충고에 반하여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환자라도 당장 관계를 끝장내는 것 보다는 몇 가지 조건하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잠시 진정시킨 후에 잠시 짬을 내어 의학정보 검색을 통해 그 효과에 관해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시간이 없다면 “제가 한번 근거를 찾아 볼테니 다음번 진료까지만 참아 주세요...” 라고 설득해 볼 수 있겠지요.  설령 다음번 만남까지 근거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시간만 낭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환자가 의사 선생님의 성의와 노력을 알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독자 의견 중에 의사 말을 안 듣는 환자와는 라뽀가 깨진 것이므로 진료를 거부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지요. 이 지점에서 환자의 시도를 인정해 주고 대신 제가 책임지고 당수치를 모니터링 해 드리겠다고 제안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한 두달 돼지감자를 먹어 보시고 당화혈색소가 떨어지지 않으면 다시 약을 드십시다' 이렇게 가는거지요. 물론 이러한 접근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환자가 시행하려는 대체요법의 안전성은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이달의 딜레마 사례 - 미용상의 이유로 전과를 원하는 갑상선암 환자

모 대학병원의 직원인 31세 여성이 갑상선의 세침흡입검사상 갑상선암으로 확인됐다. 건진센터를 통해 외과 쪽으로 전과가 됐고, 수술준비를 위해 입원했다. 그런데 입원 다음 날 환자가 이비인후과로 전과를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이유인즉, 외과 교수님이 절개를 크게 넣는다고 소문을 들었다며 미용상의 이유로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의사를 전해 들은 외과 교수는 불같이 화를 냈다. 담당 주치의로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 '딜레마 사례 1'에 대한 여러분의 소중한 견해를 e메일(drloved@hanmail.net)로 보내주세요. 혹은 라포르시안 기사 본문 하단에 '독자첨부뉴스'로 의견 남겨 주시면 다음 호에 간략한 해설과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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