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정신과적 치료 중요해…통합진료 가능한 의료시설 손에 꼽을 정도
의사·상담 전문가도 치유 과정서 정신적 외상 시달려

지난달 30일 전남 나주에서는 일곱 살 초등학교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성폭행 이후 집 근처 다리 밑에 방치돼 있던 피해 어린이는 발견 즉시 인근 종합병원에서 외과수술을 받고 전남대병원으로 전원됐다.

주치의를 맡은 전남대병원 주재균 과장(외과)은 “재수술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환아는 정신적 불안 등을 포함한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아정신과적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소견을 냈다.  피해 어린이의 신체적 상처는 감염이 없는 한 잘 아물 것이다. 문제는 일곱 살 어린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다.

현재로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PTSD는 개인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외상 적 사건 이후 극도의 공포감, 무력감, 과다각성, 재경험 등의 특징 증상을 겪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PTSD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재경험이란 쉽게 말해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의 화면에 팝업창이 계속 뜨듯이 이전 기억이 계속되는 현상이다.

또 생존 위협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과거의 안정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항상 불안해하는 '과다각성' 증상도 겪게 된다. 

성폭력 피해 아동(13세 미만)에게 통합진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해바라기아동센터의 사업보고서(2005)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한 아동 164명을 조사한 결과 PTSD로 확진된 경우가 39명(37%), PTSD에 가까운 증상을 보인 환아는 65명(45.5%)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상처 치료와 더불어 초기 정신과적 치료가 아이의 삶의 질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북대병원 정운선 교수(소아정신과)는 “의료진인 제 3자가 피해 아동에게 짧은 시간 안에 신뢰감을 주기 어렵다. 이럴 때는 아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부모의 힘을 빌려 치료해야 한다”며 “하지만 부모는 사건 이후 죄책감으로 극도의 심리적 불안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부모의 심리 치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 아동 통합적 치료 인프라 열악해의료·상담 전문인력도 태부족 문제는 성폭력 피해 아동을 통합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것이다. 

현재 외상 및 정신과적 치료 등 종합진료체계를 갖추고 있는 기관이라고 해봐야 해바라기아동센터 10곳이 거의 전부다.

작년에만 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이뤄진 성폭력 피해 아동의 진료 건수는 500여건에 달하며, 이 중 정신과 진료가 약 90%를 차지했다.  

그나마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나주 지역이 포함된 전남도에는 이런 센터가 아예 없다. 

▲ 해바라기아동센터 성폭력 피해 아동 치료 현황(2011).

더 큰 문제는 성폭력을 상담하고 치료하는 인력들이 엄청난 업무부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운선 교수는 “상담인력은 대부분은 아이를 둔 여성이어서 오랫동안 성폭력 피해 아동을 상담하고 진료하다보면 이들도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며 “실제로 몇 년 이상 일을 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대체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정 교수는 “성폭력 피해 아동을 전담으로 치료할 수 있는 정신과 의사들이 줄고 있다”며 “이들은 일종의 번아웃(burn-out· 탈진) 신드롬을 두려워 하는데 외국에서는 이런 인력들에게 리프레시 기간을 충분히 제공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해 메우 지쳐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근거중심의학(EBM)을 기반으로 한 성폭력 피해 아동의 PTSD 치료법 연구도 필요하다. 

PTSD 환자의 신경생리학적 현상과 사회적 배경을 고찰하고, 그에 따른 치료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3일 아주대의대 안영실 교수팀이 공개한 ‘성폭행 관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서의 뇌 혈류 및 당 대사 양상에 관한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연구에 따르면 PTSD 진단을 받은 성폭력 경험 여성(19세 이상)의 뇌구조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우선 혈류 및 뇌 당대사 모두에서 해마 부위의 섭취 감소가 발견됐고, 특히 뇌 당대사 영상에서 양측 소뇌의 기능이 증가됐다.

안 교수는 “해마는 주로 기억과 감정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곳으로, PTSD 환자에서 기억력 감퇴와 공포감을 없애고자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또 소뇌 기능 증가는 PTSD 환자의 과다각성 상태(불규칙한 심박수 변화, 깜짝 놀라는 반응, 수면 장애 등)과 관련이 깊다”고 설명했다.

다만 성폭력을 경험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신경생리학적 연구는 진행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앞으로 성폭력 피해 아동의 뇌영상 연구와 유전자 연구 등을 통해 개인에 따라 어떻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치료와 항우울제 치료를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일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성폭력대책특위 간사)은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나주에 다녀와 아동 성폭행 진료체계에 대해 개선 의지를 밝혔다. 성폭력 지원센터의 통합적 협조체계가 미흡하고 이를 뒷받침할 전문 상담인력이 부족한 점을 개선 사항으로 꼽았다.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신체적 진료와 함께 정신적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도 지적했다.

신 의원은 이밖에 성폭력 피해 아동의 정부지원금 확대, 아동 성폭력 가해자의 형량 상향 조정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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