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에는 태풍 '덴빈'이 거센 비바람을 몰고 와 한반도 곳곳을 덮쳤다. 그 폭우 속에서 일곱 살 여자 아이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과도 같은 폭력을 경험했다. 그리고 알몸으로 집 근처 다리 밑의 어두운 공간에 홀로 던져졌다. 일곱 살의 조그마한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7m나 되는 제방 비탈길을 온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그리고 젖은 이불을 움켜쥔 채 폭우 속에서 정신을 잃고 12시간이나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전남 나주에서 또다시 끔찍한 아동성범죄가 발생했다. 다행히 피해 어린이는 목숨은 건졌지만 신체 곳곳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거북하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저지른 금수만도 못한 짓을 기억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피해 어린이는 지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언론의 지나친 관심과 정치권과 정치인의 당리당략적 의도가 뻔히 눈에 보이는 행태가 피해 어린이의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 극성스런 언론은 성폭력 피해 어린이의 집 약도와 집안 내부 구조까지 공개했다. 심지어 피해 어린이가 입원한 병원 측은 현재 몸 상태와 치료 계획까지 언론 브리핑을 통해 상세하게 공개하고 나섰다. 그런 진료정보를 공개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 극성스런 언론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와중에 지난 2008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 어린이 주치의로 유명한 의사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신속하게 아동성범죄가 발생한 지역을 방문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 의원은 언론을 통해 피해 어린이의 상태를 설명하며, 치료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고 조두순 사건과 비교래 자신이 소속된 당 차원의 대응책을 설명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그 덕분에 2008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의 가명이 또다시 언론지면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조두순 사건의 피해 어린이와 그 가족들에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 셈이다. 

참 극성맞고 호들갑스럽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큰 사건이기에 관심을 갖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라는 측면에서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언론이나 정치권 어느 쪽에서도 그런 조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끔찍한 범죄의 내용만큼 그 이후 전개되는 상황도 꺼림칙하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그 피해 어린이가 홀로 내던져진 캄캄한 폭우 속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그들이야 어쩔 수 없다 치고, 성범죄 피해 어린이를 보듬는데 의료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 캄캄한 어둠과 폭우 속에서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은 일곱 살 어린 초등학생의 몸에 생긴 악몽 같은 상처를 없애주고, 사납게 찢긴 마음이 덧나지 않도록 치유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의료현장의 환경과 제도가 그것을 쉽사리 용납하지 않으리란 것도 짐작이 간다. 지난 2008년 조두순 사건 발생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아동성폭력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의협은 아동 성폭력 대책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사건 초기부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아동 성폭력 의료지원을 위한 전문가 양성체계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 상황을 볼 때 의료계 차원의 그러한 노력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었는지 의문이 든다.  아마 그 당시의 노력이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두지 못한 나름의 사정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데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적극 나서 성범죄 피해 어린이와 여성에게 전문적이면서 신속한 의료적 처치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으면 한다. 또한 의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교육에 성폭력 관련 사안을 포함시키는 것은 물론 의대생과 전공의 교육과정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포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치료를 단순히 의료행위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권보호 차원에서 배려하고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의료인들의 전문가적 책임과 윤리의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의료행위가 자칫 또 다른 인권침해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항상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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