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 이브 파칼레 지음 / 이세진 옮김 / 해나무 펴냄

지난 6월 우리 과학계는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한국이 창조주의자의 요구에 굴복하다)”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로 시끄러웠습니다. “교과서진화론 개정 추진위원회”라는데서 압력을 가해서 우리나라 일부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서 시조새 부분이 삭제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서의 내용을 출판사에 맡긴 때문이라 합니다.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에 해당하는 존재로 진화론의 상징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조새의 화석에 대한 논란이나 조류의 진화에 대하여 몇 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을 이용하여, 진화의 상징이라는 시조새 화석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므로 진화론 역시 논란이 많은 이론일 뿐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려는 창조주의자 혹은 지적설계론자의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계의 인식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교과과정을 두고 진화론과 창조론이 뜨겁게 맞붙는 나라는 미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전과학을 비롯하여, 천문과학, 지질학, 고생물학, 생화학 등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과학적 증거들은 우주의 생성을 비롯하여 생명의 탄생과 진화이론을 강화시켜오면서 창조론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면서 그동안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을 퇴출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해 온 창조론 지지세력은 이제 교과과정에서 공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철학을 전공하는 마시모 피글리우치 교수는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에서 2000년대 초반 펜실베니아 도버시 법정에서 벌어진 진화론과 창조론과 지적설계론의 격돌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건은 2004년 10월 펜실베니아 도버시 교육위원회에서 “학생들에게 다윈의 이론 및 이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지적설계론을 포함한 기타 진화에 관한 이론들의 허점/문제를 알게 할 것”이라고 결정한데서 발단되었습니다. 피글리우치 교수는 “지적설계론에 관해 간략히 분석해 보니, 이 이론이 초자연적 원인을 끌어들여 베이컨과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 접근법을 위반하므로 과학이 아님이 드러났다.”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변경지대>에서 사이비창조론 혹은 이를 변형한 지적설계론을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사이비과학으로 분류하고 있는 마이클 셔머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서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비하여 과학적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이 과학계에 제기하는 핵심적인 문제는 생명의 탄생과 우주의 시원에 관하여 분명한 과학적 증거가 있는가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담은 책들을 읽어왔습니다만, 최근 읽은 책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들어보면, <눈먼 시계공>에서 리처도 도킨스는 바이오모프 모델을 이용하여 진화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전체에 담긴 생물체의 형질에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가 자연에 의하여 선택되어 살아남게 되고 그러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가 종의 차이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미생물학자 제럴드 캘러헌교수는 <감염>에서 인간의 DNA의 반 이상은 감염에 의하여 인간염색체에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감염을 통하여 인간의 유전자에 삽입된 미생물의 유전자가 인류의 진화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주의 시원과 생명체의 진화를 같이 다룬 대표적인 분은 칼 세이건교수입니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이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태양계의 탄생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하는 순간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진화해온 과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을 비롯하여 물리학, 분자 생물학, 진화 생물학, 진화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쌓아올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생인류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지구상에서 일어난 일을 뒤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은 우주의 시원과 지구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과학자들이 쓴 것들이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자연과학을 전공한 분들의 책은 대체적으로 전공용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글이 어렵고 딱딱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소개하는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소르본느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자연학자 이브 파칼레가 쓴 이 책은, 자연과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시각으로 본 우주의 시원과 생명체의 진화에 대한 사유의 결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전혀 색다른 책읽기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파칼레는 시선을 태양계 넘어 우주의 시원으로까지 넓히고 있습니다.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우주 속에 태양계가 자리를 잡고 지구가 만들어지기까지 천문학을 비롯하여 우주물리학 등 다양한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37억년전 우주의 시원으로부터 인류의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루기에는 원고의 분량이 지나치게 방대해진 탓인지 5억 4,200만년전 캄브리아기까지 지구상에 등장한 지구생명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세 가지 근본 관심 가운데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두 가지 질문은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를 통해서 그 답을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 질문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는 후속작인 <인간의 장편소설>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파칼레는 서문에서 시적이고 반어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이 책을 쓸 것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티투스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영향으로 받아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생명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는 생명체이기는 하지만 누구에게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잘것없는 물질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점도 깨닫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파칼레는 우주가 인간의 모태 혹은 활동무대로 쓰이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견해를 거부합니다. 즉 창조론은 지구상에 나타난 생명체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 자기중심적으로 쌓아올린 오만의 극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주의 기원이라고 할 137억년 전 빅뱅이 일어나는 시기에 “태초에는 말씀도 없고 신도 없었다.(37쪽)”고 일갈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도는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구나”라고 <도덕경>에 적은 노자의 사상에 대하여 “하늘보다 앞서 있었으나 비어 있었고, 아무도 그것이 무엇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다니 정말 기가 막힌 직관(66쪽)”이 아닐 수 없다고 탄복하고 있습니다.

파칼레는 매 장의 글머리에서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내용을 인용하고 현대적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원자론과 유물론을 계승한 책으로, 원자가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 공간에서 상호작용하여 모든 사건이 발생한다는 원자론적 우주관을 담은 고전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중간에는 일종의 하이쿠라고 할 만큼 두 세 줄의 짧은 시를 넣어 본문을 요약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빅뱅에 관한 시는 “신 없는 신 / 전부이자 무(無) /말할 수 없는 빅뱅(38쪽)”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원에 일어난 빅뱅으로부터 소립자들의 작용으로 빛이 생기고 원시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우주가 확산되는 과정을 요약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레너스 서스킨스교수가 <우주의 풍경>에서 상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소 어렵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우주에 물질, 별, 태양, 태양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지구에 생명이 등장하여 진화하는 과정을 손에 쥘 듯 그리고 있습니다.

고대 원자론을 확립한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산물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지구라는 행성에 우리가 살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태양계가 은하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지구가 지금의 위치에 만들어진 우연(偶然)이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시지구에서 생명의 원천이 되는 유기물질이 만들어지고 이들 물질이 생명체로 발전해 나오는 과정에 대한 설명은 지금까지 읽은 어떤 책보다 구체적입니다. 유기물질로부터 유전물질이 만들어지고 유전물질이 단세포동물이 되고 단세포동물이 다세포동물로 발전하는 과정에는 우연도 작용하였지만, 지구환경의 급변이 계기가 되어 생존을 위하여 마련한 자구책의 결과였다는 설명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하게 된 몇 차례의 전기가 있었다는 것인데 “첫 번째는 137억년전 빅뱅과 함께 우리는 물질과 에너지로서 한 번 태어났고, 40억년 전에 리보자임과 핵없는 세포로서 다시 한 번 태어났으며, 10억년 전 진핵세포와 성(性)의 출현으로 세 번째 태어났고, 5억 3,000만년 전에 척삭동물 계열이 출현하면서 네 번째 태어났는데,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300만년이 조금 못 되었을 때, 호모(Homo)속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550쪽)”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중심의 사고를 벗어던진 저자는 진화가 특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존재가 진화(進化)에서 ‘정점’을 찍거나 ‘궁극’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지구생물들의 정점에 서 있는 인간도 고생대 혹은 중생대에 일어난 대규모 멸종을 통하여 사라진 생명체들처럼 어느 순간 지구를 떠나게 될 운명을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583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서 보면 태양계에 속하는 위성에 대한 설명이나 캄브리아기에 나타난 생물들에 대한 설명들은 어떻게 보면 사족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특히 캄브리아기를 전후해서 등장한 생물들에 대한 설명은 명칭부터 생소한 탓인지 이미지조차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석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생물 가운데 상당수는 현존하는 어떤 동물과도 닮은 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전자변이가 일어나 진화가 시도된 생물군이 살아남지 못한, 즉 지구 생태계로부터 진화를 승인받지 못하고 폐기된 생물일 것이라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설명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물론 철학자로서 저자는 아이들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조차 창조론이 여전히 권세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창조주의 의지에서 나왔고, 하느님의 법은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권정치사회에서는 창조론 이외의 다른 이론은 설 자리조차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인 데이비드 밀스의 <우주에는 신이 없다>에서도 천지창조에 신의 의지가 개입된 바 없다는 주장을 읽은 바 있습니다만, 이브 파칼레의 <신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에서는 물리학, 천체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유전과학 등 자연과학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한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주와 물질,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장대하고 웅장한 대서사시를 철학과 과학 그리고 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필치로 펼쳐내고 있어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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