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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자헌재, 낙태 처벌 '합헌' 판결 냈지만 위헌 의견도 만만찮아
사문화된 낙태법이 태아·여성 건강권 위협…"현실적 법개정 필요"

헌법재판소가 낙태 시술을 처벌하는 현행 형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낙태와 관련된 보다 현실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헌재는 지난 23일 조산원을 운영하는 송모씨가 낙태 시술한 조산사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270조 1항(동의낙태죄)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임신부가 스스로 낙태를 한 것도 임신 기간에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돼 있는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 역시 합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판결에서 재판관 8명 가운데 4명은 반대의견을 냈을 정도로 찬반 논쟁은 팽팽했다.

‘낙태죄’ 처벌에 반대의견을 제기한 재판관들은 모두 현행 형법 조항이 낙태근절에 효과가 없고, 따라서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를 일부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낙태죄로 기소되는 건수는 연간 3~10건 정도로 이마저도 선고유예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낙태를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형법 규정이 현재는 거의 사문화돼 낙태의 근절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형사처벌 보다는 성교육이나 피임 관련교육이나 낙태상담 등의 실시, 임부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부조와 국가적 지원 등이 실효성있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로엠의 변창우 변호사는 “종전 판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낙태 인식에 대한 변화가 감지된다”며 “향후 같은 성격의 위헌소송이 제기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위헌)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의료계·여성단체 "현실적인 낙태 허용 가이드라인 재논의해야"의료계와 여성단체는 이번 헌재 판결을 두고 희비가 엇갈렸지만 낙태근절을 위한 현실적인 입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번 결정은 의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관심이 높다.진오비 심상덕 회원(아이온산부인과 원장, 산부인과 전문의)은 “낙태죄 처벌 합헌 판결은 환영한다”며 “다만 처벌 조항만 갖고 불법 낙태를 막기 역부족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심 원장은 “지금도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이유로 낙태를 고민하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온다”며 “낙태를 종용하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중장기 계획을 수립, 실행하는 동시에 일부 낙태 허용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는 헌재 판결에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낙태죄 찬반 논란에서 벗어난 실질적인 대안 찾기에 나서자는 주장이다.

여성민우회 김희영 여성건강팀장은 “합헌 판결은 유감이지만 낙태죄 찬반이라는 원론적 수준에서 탈피해 낙태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출산 환경을 개선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현실적인 낙태 허용 가이드라인을 재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우리와 같은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엄격한 낙태 허용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독일은 착상 후 12주 미만의 낙태는 임부 요청에 따라 의사가 시술하며, 22주 미만의 낙태는 임신갈등상담소의 상담을 거쳐 의사가 시술하면 형을 면제하고 있다.

영국은 두명의 등록된 의사가 의학적 근거가 충족됐다는 점을 증명한 이후에는 임신 24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일본도 태아가 모체 외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특정 사유(모체보호법 14조 1항)의 경우 의사회에서 지정한 의사에 한해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다. 

낙태 처벌 위헌 의견을 낸 헌재 이동흡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입법자는 임신 초기의 낙태를 허용함에 있어 임부가 낙태에 대해 충분히 숙고한 뒤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상담 등의 사전조치를 강구함과 동시에 의학적으로 안전한 낙태시술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병원이나 의사에 대한 일정한 요건을 두는 등의 입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독일의 경우 임신 초기 낙태 허용 시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사전 상담 등 낙태시술의 절차적 요건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나라도 불과 2~3년전 낙태 사유를 정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14조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허용하고, 그 사유에 대한 상담절차를 마련하자는 등 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 적이 있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태아의 출생 후 생존 가능성에 대해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고, 허용 사유에 태아의 병인적 사유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신정호 사무총장은 “출산 후 생존가능성이 없는 무뇌아의 경우도 무조건 낙태죄로 처벌을 받는 실정”이라며 “산전진단 기술의 발달 등을 고려한 보다 현실적인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낙태 따른 여성 건강권 침해 심각한 상황  무엇보다 의료계와 여성단체 등은 낙태 관련 법안과 정부 정책이 지금처럼 유지될 경우 불법낙태가 계속 성행하고, 여성의 건강권은 끊임없이 침해 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0년 8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위기임신상담신고센터(129)에 2011년까지 접수된 상담 건수만해도 2,700여건에 달한다.

특히 불법낙태 신고건수는 2010년(8~12월) 25건에서 2011년 68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영국 정신과학회지에 발표된 낙태 후 정신적 후유증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6개국 여성 87만여명(낙태 경험자 16만여명)을 대상으로 낙태 후유증을 조사한 결과, 낙태 후에 불안장애 34%, 우울증 37%, 알콜중독 110%, 마약중독 220%, 자살 155% 등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진오비는 낙태로 인한 신체적 후유증(자궁 천공, 골반염, 출혈 등)은 전체 낙태 중 10% 정도이며, 이 중 2%는 심각한 합병증을 수반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저출산 정책에만 사로잡혀 낙태 예방 종합 대책은 고사하고 관련 예산마저 삭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복지부 출산정책과의 낙태 예방 사업 과제에 배정된 예산은 8억원으로 작년 대비 4억원이 깎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낙태 예방 상담원 1명을 늘리는 것도 빠듯하다”며 “내년 예산도 8억원을 올렸지만 그마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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