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질환 약값차등제 시행후 등 대형병원-병의원 증감 수치 큰 차이
"부상병으로 편법 청구한 것…환자 약제비 부담만 가중"

보건복지부가 경증 및 만성질환자의 '약국 본인부담 차등제'와 '동네의원 만성질환관리제' 시행으로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복지부의 이런 분석 결과와 달리 당뇨병 등 일부 질환은 병원들의 편법적인 질병코드 기입 등으로 오히려 만성질환자 관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복지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분석 결과를 보면 약국 본인부담 차등제의 경우, 전년 동기대비 52개 경증질환의 대형병원 외래환자수는 63만명 감소한 반면 동네 병의원 외래환자수는 79만명 증가했다.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도 점차 참여기관수와 진찰료 감면 건수가 증가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복지부는 이런 효과분석 자료를 발표하며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복지부의 발표대로 제도 시행에 따른 효과는 분명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질환별로 보면 어떨까.

이와 관련해 복지부는 52개 경증질환 중 의원·병원으로 환자가 가장 많이 이동한 상위 5개 질환과 하위 5개 질환의 수진자 수만 공개했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의원·병원으로 이동이 없었던)하위 5개 질환 중 폐경기전후장애(88.6%)만 제외하고 4개 질환은 모두 90% 이상이 여전히 종합병원급 이상 대형병원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위 4번째 질환에 속한 '당뇨병'은 지난 해 52개 경증질환 상병 분류 논의 당시 경증질환에 포함시키는 것을 두고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질환별 환자 이동 추이나 이에 따른 원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위5위와 하위 5위 질환만 명시된 질환별 환자 이동에 대한 원인분석과 52개 질환별 환자 이동현황에 대한 자료 요구에 대해 "배포된 자료 외에 총 52개 질환별 자료는 따로 정리된 것이 없다"면서 "상·하위 5개 질환의 종별 이동현황에 대한 원인은 자료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뭐라 추정할 수도 없다"고만 답했다.

복지부, 브리핑 전 당뇨병학회-천식학회-환자단체와 사전회의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의 이런 설명은 사실과 달랐다. 복지부는 언론 브리핑 직전인 지난 22일 오전 대한당뇨병학회와 천식알레르기학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자문회의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는 52개 상병 중 당뇨병, 천식과 관련한 약국 본인부담 차등제 시행 전후 추이를 상세히 담은 자료를 제시하면서 전문가 의견을 구했다.

특히 이 자료에는 질병코드상 3단분류(E11)만이 아닌 4단 세부분류 코드별(E112~E119, 혼수를 동반한 당뇨병(E110)과 산증을 동반한 당뇨병(E111) 두 상병은 당초 제도에서 제외) 내원일수 변화가 수록돼 있었다.

약국 본인부담 차등제 시행 전후 당뇨병 내원일수 증감 현황

본지는 복지부가 전문가 자문을 구하기 위해 제공한 자료를 단독 입수해 살펴봤다. 그 결과, 당뇨병의 경우 제도 시행 후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시행 전보다 내원일수가 감소했지만 특이하게도 의원과 병원급의 내원일수 증감이 일관되지 않았다.

더구나 신경학적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E114)과 순환기계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E115), 기타명시된 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E116), 다발성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E117) 등은 오히려 모든 종별에서 내원일수의 감소세를 보였다.

제도 시행 후 대형병원의 환자가 의원·병원으로 이동했다는 복지부의 논리가 설명되려면 의원·병원의 당뇨병 내원일수가 증가해야 하며, 그 증가분은 대형병원의 감소분과 얼추 맞아야 한다. 하지만 각 4단분류된 당뇨병 대부분은 큰폭의 마이너스(-) 내원일수로 나타났다. 합병증을 동반하지 않은 당뇨병(E119)과 정체불명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E118)만이 내원일수가 증가했다.

이는 대형병원의 당뇨병 진료가 제도시행 후 감소하기는 했지만 의원과 병원급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내원일수가 증가한 합병증을 동반하지 않은 당뇨병(E119)과 정체불명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E118)을 비롯해 모든 당뇨병의 증감을 합하더라도 9만7,634일의 내원일수가 마이너스로 남는다.

즉, 그 만큼의 당뇨병 내원일수가 사라진 것이다.

복지부의 발표대로라면 종합병원급 이상 대형병원의 총 52개 경증질환 내원일수 감소분보다 의원·병원 내원일수 증가분이 121만4,000일이나 많은 만큼, 경증질환 자연증가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당뇨병이 만성질환인 만큼 1년 새 내원일수가 줄어들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 52개 경증질환 중 환자 종별 이동 상·하위 5개 질환

당뇨병학회, 합병증 동반한 당뇨병은 '약값 차등제' 적용 제외 요구 이날 자문회의에서 전문가들은 대형병원의 당뇨병 내원일수가 감소한 것과 병의원급의 내원일수 증가가 큰 차이가 나는 이유로 '주상병'이 '부상병'으로 등록된 결과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당초 약국 본인부담률 차등제가 경증질환이 주상병으로 청구된 부분에 대해서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가령 당뇨병성 망막증이 있는 환자가 안과에서 진료를 받거나 약제비 인상 부담에 따른 환자의 요구로 경증질환을 부상병으로 청구할 경우 제도 대상에서 제외된다.

의료계에서는 이미 지난 해 제도 시행 전 의료현장에서의 편법운영 부작용을 지적했고, 복지부는 의사협회 및 병원협회 등 관련단체에 고의로 부상병으로 등록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당뇨병학회 박태선 식품영양이사(전 법제보험이사)는 "당뇨병 환자의 내원일수가 갑자기 줄어들 수는 없다. 만성질환자이기 때문"이라며 "이는 환자들이 약제비 인상을 부담스러워해 부상병으로 청구된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도 시행 결과 당뇨병 환자가 의원·병원으로 이동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환자들이 인상된 약제비를 부담하면서까지 큰 병원을 이용했다는 것"이라며 "결국 이 제도로 인해 당뇨병 환자들은 본인부담만 늘어나게 됐다. 종별 진료비가 인상된 이후 약제비까지 인상된 것이어서 환자들에게는 이중고"라고 지적했다. 

당뇨병학회는 이같은 결과를 놓고 복지부와 논의하면서 합병증이 없는 당뇨병은 경증에 포함시키더라도 나머지 당뇨병은 경증질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입장에서는 약값 차등제 적용 대상 52개 경증질환 중 당뇨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를 제외할 경우 사실상 제도 시행의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에 당뇨병학회측 법제보험이사를 대신해 참석한 박석오 내분비내과 전문의(광명성애병원)는 "학회 입장에서도 모든 당뇨병을 제외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합병증 없는 당뇨병만 적용시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며 "하지만 복지부는 계속 밀고나갈 생각인 것 같다. 4단분류코드 중 일부만 빼 줄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복지부도 당뇨병에 대해서는 정책실패라고 내심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질환 특성상 안고 가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뇨병학회 박태선 이사도 "학회는 지난 해 제도 시행을 앞두고 시설과 여건을 갖춘 상급기관들이 환자에 대한 교육과 생활습관 교정을 실시한 뒤 다시 병원이나 의원급으로 환자를 되의뢰하는 시스템을 제안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당뇨병을 제도에 포함시키려는 복지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복지부는 "약국 본인부담 차등제는 시행 당시 논란이 있었던 당뇨병 등에 대한 추가 분석과 전문가 협의체 논의 등을 통해 제도개선이 필요한 지 검토할 계획"이라며 "만성질환관리제는 완전히 정착되도록 지속적으로 홍보와 설득을 강화하고 내년부터는 의료기관 인센티브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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