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방안 논의 원론적 수준에서 그쳐…'비급여 직권심사제' 도입 등 제안
민간의료, 건보 보충형으로 역할 확대 논의 급물살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보장성 확대를 위해 비급여진료비 관리기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논의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무르면서 비급여진료비 관리기전 마련이 요원한 가운데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이 그 틈새를 파고드는 모양새다. 

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통합당 남윤인순 의원 주최로 정계, 학계, 병원계, 시민단체 등 관계자들이 모여 ‘비급여진료비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관리방안’이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비급여진료비의현황과 문제점, 비급여진료비의 관리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비급여 항목과 진료비 현황·정보공개 이뤄져야" 정 교수는 “국민의료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조만간 OECD 국가의 평균에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면 보험료 수입은 꾸준히 증가함에도 건강보험재정은 당기 적자를 반복하고 있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비급여진료비 관리방안 마련의 일환으로 비급여 항목과 진료비에 대한 현황 파악 및 정보공개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 행위 및 치료재료 비급여 항목의 코드 표준화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 및 의료 이용 선택권을 제고하고 치료재료의 세부표준코드를 마련해 체계적인 관리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의료기관별 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하고 비급여 진료비 직권심사제를 추진해 환자의 확인요청이 없더라도 직권으로 진료비를 확인할 수 있게하고 비급여대상 내역 및 금액 등의 자료제공을 요양기관에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위한 원칙과 절차 확보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정 교수는 "급여 확대의 기본원칙으로 비용효과성에 따른 우선순위 설정이 최선이며 가계의 의료비부담과 건강증진 전반에 대한 중장기적 영향을 고려해 급여항목을 확대해야 한다"며 "비급여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선택진료비, 병실차액, 간병비 등의 왜곡된 비급여 구조에 대한 시정이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후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학계, 병원계, 시민단체, 정부 등 각계의 의견이 오갔다.

첫 토론자로 나선 순천향대학교 보건행정경영학과 민인순 교수는 "합리적 재평가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 비급여 대상 항목의 전면적 재평가 및 단계적 급여 전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비급여 진료의 정보수집 체계 제도화를 통해 비급여 진료비 현황을 파악하고 상시 모니터링 및 비급여진료비 정보공개가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 교수는 “임의 비급여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및 정책효과가 미흡하다”며 “이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본인부담 진료비 직권심사체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병원계는 비급여진료비의 급여확대 논의에 앞서 수가 현실화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맞섰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대한병원협회 이근영 보험위원(사진, 한림대의료원 부의료원장)는 “정형선 교수의 발표 중 국민의 보장성 확대를 위한 비급여 항목의 급여전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며 “그러나 비급여의 축소를 통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함께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투자가 가능한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비급여진료비의 급여화에 따른 추가 재정 확보방안의 제시없이 급여확대 항목만을 제시한 것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에 대한 통제만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밖에 안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급여 확대를 위해 필요 재정의 확보, 사회적 합의를 통한 급여확대 원칙과 대상선정 등이 우선돼야 한다”며 “이에 대한 고민없이 원칙없는 비급여의 급여화는 식대급여화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의 근간을 흔드는 보장성 악화정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건복지부는 비급여진료비의 급여확대를 위해 원칙과 절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배경택 과장은 “비급여로 인해 국민들이 보다 많은 보장성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급여를 확대하려면 원칙과 절차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확대 되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급여확대에 따른 보험료 인상과 관련해 보험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배 과장은 “급여 확대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서 볼 때 보험가입자의 보험료 수준이 올라 갈 수 있다는 의미”라며 “중요한 것은 진료를 더 받기 위해 보험료 인상하는 것에 대한 보험자들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당초 예정된 시간을 초과해진행됐지만 비급여 관리방안에 대한 각계의 원론적 입장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비급여 급여화 앞서 적정수가·적정보험료부터 먼저 이뤄져야"어물쩍 하는 사이 비급여 영역서 민간의료보험 역할만 자꾸 커져  

이처럼 비급여 관리방안 논의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에 대해 병원협회 이근영 보험이사는 의료정책이 의료계를 제외한 일부에 의해 논의되고 있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의사들의 접근을 막은 채 정책을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다보니 일부 주장은 임상현장과 맞지않는 주장도 있다. 의료공급자를 선두에 내세워 의료비용과 관련된 데이터를 정확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효율적인 비급여 관리방안 도출을 위해 보다 큰 틀에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김종명 운영위원(사진, 가정의학과 전문의)은 “단순하게 비급여를 개별적으로 손대다보면 비급여 가격이 내려갈 것이고, 의료기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경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험수가를 올려줘야 하고 재정 확충을 위해 국민들은 보험료를 더 내고 사업장과 국가 보조금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이해관계에 대한 합의가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비급여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재정문제”라며 “보다 큰 틀에서 비급여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비급여 관리기전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면서 오히려 민영의료보험 영역만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정부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민간의료보험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상태다.

앞서 지난해 10월 복지부를 중심으로 금융위원회,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험개발원, 금융감독원 등이 참여하는 ‘개인의료보험정책협의체’가 꾸려졌다.

이 협의체는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간 영역 이해를 넘어 민간보험이 보충형 보험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자는 목표 아래 실손의료보험을 어떻게 공적영역으로 끌어들이느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김종명 운영위원은 “협의체에서 비급여의 통제기전을 확보해달라는 보험사의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며 “특히 비급여 가격에 대해 보험사가 병원과 가격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비급여 통제기전이 없는 상태에서 건강보험이 부담하지 못하는 비급여 본인부담영역을 민간의료보험이 커버하고 있다”며 “당장 의료 불안요소를 해결하려고 하면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이는 해결책이 안된다. 국가 차원에서 통제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간의료보험이 실손형의료보험을 통해 이미 일부 공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책연구원 이현복 연구위원은 “민간보험사에서는 실손형의료보험 상품 판매를 통해 공단에서 못하고 있는 공익적인 부분을 메꾸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사가 주식회사 형태라 공단이 이익을 배제한채 공공성만을 주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간의료보험을 공보험의 영역을 담당토록 하려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한 영역설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병협 이근영 보험위원은 “민간의료보험을 보충형 보험으로서 자리매김하기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민간의료보험이 어디까지 커버할 것인지에 대한 영역 설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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