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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단단히 외통수에 걸린 ‘응급실 당직법’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2.08.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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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5일부터 이른바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이 시행에 들어갔다. 원래 이 법의 취지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보다 신속하게 적절한 응급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입법 취지다. 그런데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본래의 목적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이 법이 좋은 취지를 잃고서 왜곡된 배경에는 ‘전문의 직접 진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단단히 한 몫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응당법의 개정 물꼬를 튼 2010년 대구에서 발생한 장중첩증 소아 사망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여론은 장중첩증 소아가 사망한 원인으로 경험이 일천한 인턴이 진료를 잘못한 탓으로 몰아갔다. 만일 전문의가 직접 진료를 봤다면 그 소아가 생명을 구했을 것이란 가정 하에.

물론 맞는 지적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병원 내 관행화된 진료체계와 함께 부실한 비상응급의료전달체계 및 응급의료시스템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 있다. 한발 더 나아가면 비상응급의료시스템 구축과 지원을 등한시한 정부의 책임도 컸다.

안타깝게도 모든 원인이 전문의가 직접 진료하지 않은 상황에만 집중되면서 결국 이 법도 ‘당직전문의 직접 진료’에만 집착하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패착이 시작됐다. 그래서 처음에는 복지부도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면서 응급실 '당직전문의' 자격을 해당 진료과목 전문의나 3년차 이상 레지던트로 규정하고, 근무 방식도 온콜이 아니 병원 내 상주 개념을 적용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당직전문의 자격을 진료과별 전문의로 뜯어고치고, 근무 방식도 병원 내 상주가 아닌 온콜 방식으로 바꿨다.

겉으론 그럴 듯하지만 당직전문의 온콜 개념을 뜯어보면 문제투성이다. 시행규칙에 따른 세세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복지부가 제시한 유권해석을 보면 응급의료기관내 모든 당직전문의가 온콜 대상에 포함되고, 온콜을 받은 이후 적정한 대응 시간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놓고도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당직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일단 응급실 당직의사의 온콜을 받았다면 무조건 직접 진료에 응해야 한다는 유권해석마저 내놓으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결국 복지부도 머리가 아팠던지 응당법 시행 이후 3개월간 당직전문의 온콜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그것도 법 시행 이틀 전에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예고된 대로 응당법 시행에 부담을 느낀 지방 병원들이 응급의료센터와 응급의료기관 지정을 반납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해당 진료과별로 전문의 1~2명을 두고 있는 지방 응급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자 복지부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이참에 응급의료기관 인력기준 등을 충족하지 못하는 병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복지부가 발표한 응급의료기관평가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지역응급의료기관의 58%가 인력 기준을 채우지 못한 상태다. 원칙대로 하면 지역응급의료기관의 절반 이상을 정리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지방의 응급의료 공백 사태가 빚어질 것이고, 지자체는 물론 지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특히 복지부는 해마다 응급의료기관 평가를 통해 연간 수 백 억원을 응급의료기금을 국고에서 지원해 왔는데 이제 와서 부실 운운하는 것도 자가당착이다. 국고지원사업의 부실한 관리 책임에서 복지부가 자유로울 수 없다.

또 다른 문제도 생겼다. 응당법에 따라 응급의료기관이 당직전문의 온콜 체계를 운영할 경우 ‘온콜 당직비’ 지급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규모가 큰 일부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는 벌써부터 온콜 체계에 따른 당직전문의 당직비를 고민해 왔지만 대부분의 응급의료기관은 온콜 당직비 지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상황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과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당직전문의의 온콜 대기시간은 엄연히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만일 당직전문의를 서게 되는 의사들이 당직비 지급 문제를 법적 문제로 들고 나온다면 응급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칫 법정공방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다.

이미 법은 시행에 들어갔다. 복지부는 3개월간 행정처분을 유예하면서 드러나 문제점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또다시 법 개정을 통해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은. 복지부가 단단히 외통수에 걸렸다. 안타깝지만 ‘자승자박’이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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