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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별세

대장암, 간암, 위암 등 세차례나 암을 이겨내며 불굴의 상징으로 각인된 고창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8월 6일 오전 8시 40분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193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1957년 일본 쇼와의대를 졸업했으며, 서울의대 내과 교수, 핵의학과 초대 과장, 김영삼 전 대통령 주치의, 가천의대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

또 대한내과학회장, 대한내분비학회장, 대한핵의학회장, 대한노화학회장,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원로회원, 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신생 학문인 핵의학의 초석을 놓았고, 학문간 융합에 힘써 대한의용생체공학회, 대한의료정보학회,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창립에 기여했으며, 1978년 서울대병원이 현재의 특수법인으로 발족한 이후 제2부원장, 제1부원장을 차례로 맡아 서울대병원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자 여사와, 아들 재준(지니스내과 원장), 딸 승희, 연희, 주희, 사위 황문성(황문성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천우(SK텔레콤벤처스 상임고문), 며느리 임유정씨를 두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8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절두산 순교성지 부활의집. 문의 2072-2011.

추모사

아, 고창순 선생님

2012년 8월 6일, 우리나라 의학계의 거목이신 고창순 교수님이 타계하셨다. 서울의대 명예교수인 선생님은 핵의학, 내분비학에서 대가를 이루어 많은 제자를 키우신 진정한 ‘보스’이셨고, 의료정보학, 의용생체공학, 노인병학 분야를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시작한 개척자이셨다.

선생님은 넓은 시야와 사물의 핵심을 찾는 안목을 가지고 계셨다. 이러한 능력으로 우리나라에서 의료의 새 장을 열 때 마다 선생님이 주도하시곤 했다. 선생님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진심으로 대해, 의료계 안팎에 넓은 인맥을 가지고 계셨다. 이러한 사교적인 성격으로 1978년 법인체로 출발한 서울대학교병원의 제1, 2부원장을 맡으면서 이 거대한 조직이 안정화 되는데 크게 기여하셨다. 후에 문민정부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으셨고, 정부에서 의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물심양면 전방위적으로 정성을 들여 제자를 키우셨다. 많은 제자들이 감화를 받아 선생님을 ‘학문적 아버지’로 여기면서 생활하고 있다. 12월 31일 한 해를 끝내는 날 제자들과 함께 그 해를 깨끗이 보내는 의미로 같이 목욕을 하곤 했다. 새해에는 모두들 선생님 댁으로 세배를 갔다. 당시의 관습으로 모든 내과 전공의가 다 모여 들었다. 100여 명이 넘는 제자들의 식사를 챙기느라고 사모님께서 특히 고생하셨다.

내가 개인적으로 처음 만날 때부터 선생님의 소탈한 인품을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옆에서 식사하는 나에게 말씀했다. ‘나는 밥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잘 먹는 사람은 자연히 건강해져 일과 공부를 잘 하게 되므로 좋아 한다는 해석이었다. 이렇게 선생님의 식견과 안목은 남달랐다. 관습적인 태도나 생각에서 벗어나 사물의 핵심을 꿰뚫는 지혜와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따뜻하셨다. 항상 우리들을 격려하셨고, 제자를 위해서 당신이 희생하는 일을 밥 먹듯이 하셨다. 부원장으로 바쁘신 가운데에도 제자들이 소원해지면 섭섭해 하셨고, 즐겨 진료와 연구에서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려고 노력하셨다. 지도학생인 일개 의대생의 고민을 밤새고 들어 주시고 의논해 준적도 있다.

우리나라 초창기의 양의사이신 아버님을 따라 의학에 입문한 선생님은 천성적인 의사였다. 조금이라도 연줄이 있는 환자는 가족처럼 돌봐주셨다. 남을 도와주기를 즐겨해 선생님 방 앞에는 항상 다급한 사람들이 줄서있었다. 선생님의 생활신조가 ‘하루에 한사람 돕기’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제자 교육에는 철저하셨다. 내가 인턴 때에도 핵의학 책을 주고 공부시키고, 전공의 2년 차에 신축병원의 핵의학과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때, 심장핵의학, 동적 영상 분석 등에 사용하는 컴퓨터 교육을 내가 잘 받도록 여러 전문가에게 부탁했다. 제자들의 연구가 부진한 경우에는 집에서 이불보따리를 가져와 연구실에서 같이 동숙하면서 격려하기도 하였다.

제자의 성공을 선생님처럼 기뻐하는 교수는 없을 것이다. 신축병원의 초대 부원장을 맡고는 진료와 연구의 대부분을 제자에게 넘겨주었다. 그 성과나 명예도 선생님이 차지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여건과 기초를 마련하고 제자들이 마무리하고 열매를 따가도록 했다. 덕분에 여러 제자들이 서울대를 비롯한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아마 제일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 나일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능력을 가진 나를, 좋은 여건을 마련하고, 기회를 주고, 교육과 교정을 하고, 방패가 되어 주면서 조금이나마 업적을 이루게 했다. 그러고는 모든 영광은 나에게 주었다. 마치 자식에게 재산을 조건 없이 넘겨주듯이.

지난 35년간 나는 속절없이 선생님 은혜만 받아왔다. 제대로 보답을 못한 체 선생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그러나 남을 위해 그토록 노력 봉사를 하셨기에 이제 편히 하나님과 함께 계실 것이다. 다시 만나 뵐 때 까지 선생님을 본 받아 생활하리라 다짐한다.

선생님의 명복을 기원드립니다.

정준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 의학역사문화원장

이상섭 기자  sslee@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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