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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만나다] "썩은 부위 스스로 도려낸 집단만이 사회적 신뢰 얻어"이명진(명이비인후과 원장,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의사들의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한 법이 시행되고, 전공의를 폭행한 교수가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는 등 의사사회를 향한  윤리의식의 요구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의사사회 내부적으로도 의료윤리 고취 필요성이 매번 제기돼 왔지만 항상 일이 터진 후에 뒷수습하기 바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늘 비슷한 윤리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 회장은 의료윤리는 의사집단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존중받으려면 윤리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집단의 썩은 부위를 과감히 도려낼 줄 아는 결단력과 판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윤리는 매 순간 주어진 상황에서 결단력과 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결국 의사사회의 신뢰를 높인다는 것이 그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이 회장을 만나 의료윤리의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 의사는 다른 직업군에 비해 더 윤리적이어야 하나."개정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에 성범죄 경력자 취업제한 직종으로 의료인이 추가됐다. 물론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이 징계 받아야 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의사는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의사는 사람의 몸을 다루고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의료진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개정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과 같이 충분한 합의 과정 없이 일률적으로 10년 간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입법자들의 폭력이다. 이 같이 공포심을 조장하는 법률로는 의사들의 반발만 키울 뿐 예방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의 의료윤리 실천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징계에 대한 내용도 포함 돼 있다. 어느 정도 처벌을 가해야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을 만큼 경각심을 일깨울까 하는 고민도 의료윤리이다. 하지만 그 고민에 의사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의사들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높은 윤리의식을 갖추려면 외부 압력보다는 자발적 노력이 필수다."

- 의사사회가 자발적으로 의료윤리 고취에 나서지 않으니 외부에서 이를 요구하는 상황 아닌가.

“의료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자율적인 윤리규범을 만들고 지키려는 의지가 약했지 때문에 법적 개입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자율성을 달라고 주장하지만 막상 자율권을 부여한다고 해도 그 자율성을 제대로 운영할 만큼 준비가 안된 실정이다. 의사들 스스로 의료윤리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것도 자율적 의료윤리 규범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의료윤리가 의사들의 도덕성 함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편임을 알아야 한다. 각종 의료분쟁을 막을 수 있고 의사사회의 명예나 권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지난 6월 교수의 전공의 폭행 문제에 대해 칼럼을 썼다. 그때는 그냥 동의하는 정도였는데 최근 실제로 전공의 폭행문제가 발생하니 칼럼에 대한 반응이 높아졌다. 일이 크게 불거지고 나서야 경각심을 느끼고 있는 만큼 아직은 의사사회 스스로가 의료윤리에 대한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론적인 내용 뿐 아니라 이런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응용윤리에 대해 홍보하고 계속 이슈화 시켜야 한다.”

-의료윤리를 숙지하면 의료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진찰실 가이드라인과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만한 상황을 상세히 분석해 지침을 만들어 의사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국 GMC(General Medical Council)는 진찰 부위를 제외한 부분은 시트나 가운으로 가리거나 생식기를 진료할 때는 장갑을 착용하도록 권고한다. 진료 중 의사가 불가피하게 알게 된 환자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장할 것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진료 중 환자와 불거질 수 있는 문제를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변수를 줄여야 한다.

진료와 검사 전에 진찰과 검사의 필요성과 과정에 대해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환자와의 충분한 의사소통을 통한 신뢰를 형성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소홀하기 쉬운 부분이다. 신뢰가 형성된다면 의료사고 발생 시 소송까지 가는 걸 막을 수도 있다. 의료사고는 분명 의사가 책임져야할 부분이 있지만 환자가 의사를 신뢰한다면 의료사고에 대한 막연한 비난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도 공포심에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의료사고 발생 시 보호자에게 어떤 식으로 알려야 하고 어디에 신고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교육을 받는다면 의료사고가 의사사회의 신뢰와 존중을 깍아내리는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을 것이다.”

- 의료윤리의 ‘자율 정화’를 강조해 왔다. 그 이유는.

“자율정화는 전문가 단체의 생명이다. 전문가로서의 권위와 신뢰유지에 필수적인 사항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자율징계권 확보에 관심을 가져왔다. 썩은 부위를 스스로 도려내는 집단은 사회적 신뢰를 받는다. 그래서 자율징계권 확보를 위해서는 동료심사가 필수이다. 그동안 외부에서 ‘왜 비리 동료들을 징계하지 않느냐’는 질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자율징계권이 없었기 때문에 비리 동료를 고발할 수 없었고 괜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혹만 샀다. 올 4월부터 각 중앙단체에 윤리위원회가 갖춰지도록 법으로 만들어 지게 됐다. 이로 인해 의료진 스스로 자율 정화를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자율징계권 확보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변호할 권리를 충분히 마련해 이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 해야 한다.”

- 의료윤리가 엄격해지면 그만큼 의사들의 진료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지 않나.

“미국에는 ‘샤프롱제도’란 게 있다. 민감한 진료를 하거나 환자가 장애인일 경우 간호사나 보호자를 대동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몇해 전 미성년자를 진료하던 의사가 보호자한테서 아이를 성추행을 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조사 결과 부모의 거짓 주장임이 판명 났다. 이런 극단적인 사건은 드물겠지만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유죄판결이 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료진이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샤프롱 제도처럼 제 3자가 증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아무리 무죄가 입증됐다 하더라도 일단 소송에 연루되면 그 과정이 몇 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의사는 사회적 명예가 실추되고 정신적 피해를 입는 등 피해가 크다. 의사들의 성범죄 처벌 수위가 높아진 만큼 진료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일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환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의료분쟁이 발생할 때 의사들을 보호할 수도 있다. 모 국회의원이 환자의 권리를 위해 산부인과 진찰실에 들어갈 때 사전에 동의를 받게 하자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제안한 일이 있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는 에티켓의 문제를 법의 영역으로 확대 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과잉 입법 보다는 의료진 내부에서 제도를 만드는 것이 의사들의 자발적 참여를 높일 것이다.”- 최근 서울 모 병원의 전공의 폭행사건으로 의료윤리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의사사회 내부적인 윤리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교수진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전공의 폭행이 대물림되는 이유는 전공의들이 의료술기 뿐 아니라 교수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배우기 때문이다. 폭언과 폭행에 노출된 전공의가 나중에 후배를 가르칠 때 그대로 따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오랜 관행처럼 굳어져 위에서 지침이나 주의를 내리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존경받는 교수진도 많지만 전문의 보수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전공의들에게 의료윤리 교육을 실시해도 이론과 현장 상황이 다를 경우  ‘우리 교수는 안그러던데’라고 생각하게 되고,  전공의들은 의료윤리 교육에 냉소적 태도를 취할 것이다 .”

-의사국시에 의료윤리 항목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돼 왔다. 만일 의료윤리 항목이 도입된다면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까.

“ 의철학, 의료인문학 등은 에세이 형식으로 치르면 된다. 이를 외워서 시험을 치면 부담만 가중시킬 뿐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의료윤리가 필요한 상황을 던져 주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3천자 정도 논술하는 형식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 정도 분량을 쓰려면 의료윤리에 대한 이론적 학습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의사로 살아야겠다’는 윤곽을 떠올리게 된다. 캐나다의 경우 면접을 통해 인성이나 의료윤리를 갖추고 있는지 등을 판단하기도 한다. 의사국시에 의료윤리 항목이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 있어 왔지만 투자 대비 당장의 효과가 나지 않는 정책이기 때문에 계속 늦춰져 왔다. 하지만 교육은 백년대계 아닌가.”

박소희 기자  lifegoeson@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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