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 송병선 옮김 / 민음사 펴냄

[북소리]에 소개할 책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라고 할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읽고 북소리에서 소개한 박종호선생님의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아르헨티나출신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시인으로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기억에 관한 어떤 책에서 바로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에 수록된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인용하고 있어서 꼭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기도 했습니다. 보르헤스와의 인연은 마침 민음사에서 주관하는 민음아카데미가 7월에 네 차례에 걸쳐서 보르헤스와 그의 작품을 해설하는 강좌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바로 보르헤스의 작품 <픽션들>과 <알레프>를 번역하신 울산대학교의 송병선 교수께서 강좌를 주관하셨으니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번역하신 송병선 교수께서 작품해설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픽션들>은 열여덟편의 단편소설들을 수록한 얇은 책이지만 20세기 후반의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 과학, 철학 등 세계 지성사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북소리]에서 <픽션들>을 소개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보르헤스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얻는 느낌은 ‘어렵다’는 한마디로 정리되었는데 민음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 이해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보르헤스의 작품세계를 환상문학에 속한다고 합니다만, 그의 작품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젊었을 적에 실패한 사랑이었다고 합니다. 보르헤스는 1920년대 노르웨이 이민가정의 노라 란지를 열렬히 사랑하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관한 서사시 혹은 소설을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막상 그녀가 1926년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계획을 접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픽션들>에 실린 열여덟 개의 단편을 읽고서 우선은 단편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다양함에 놀라게 됩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중동아시아를 거쳐 인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미 알려진 텍스트를 활용하여 허구의 인물이나 사실을 얹혀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기법은 팔림세스트의 이미지처럼 표현하는 것인데, 팔림세스트는 동일한 양피지 위에 새로운 텍스트가 이전의 텍스트를 숨기지 않은 채 보이게 하는 그런 양피지를 말한다고 합니다. 즉, 보르헤스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순수한 의미의 창작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문학을 생산 혹은 재생산 과정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토리 전개과정에 다양한 형식의 미로(迷路)를 차입하고 있는데,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읽으면서는 주인공이 중국출신인 까닭인지 젊었을 적에 빠져들었던 중국무협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미로의 진법 혹은 미로기관을 떠올렸습니다. 단순하게 막대기 하나는 던져놓은 미로의 진에 갇힌 사람은 미로의 진을 탈출할 수 있는 보법을 모르면 아무리 헤매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서양에서도 미로의 역사가 참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스왕이 반은 소이고 반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가두어두었던 미궁(Labyrinth)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서양에서도 미로에 대한 개념이 일찍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등장하는 미로는 공간적인 이미지보다는 오히려 시간적 이미지의 미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춘은 작가인 조부의 작품세계를 완벽하게 해석하게 된 중국학자 앨버트를 살해하여 뉴스화함으로써 독일에게 공격목표를 알리는 스파이활동을 하기로 합니다. 한편 앨버트는 유춘이 자신을 살해하러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킬러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맞아들여 조부에 관하여 설명하고 결국 유춘이 쏘는 총을 맞게 됩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행동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미로는 공간적 개념보다는 시간적 개념이 적용된 것으로 요즈음 방영되는 드라마 <닥터 진>에서 차용하고 있는 타임슬립을 통한 시간여행의 개념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한 워쇼스키형제가 감독한 1999년작품 <매트릭스>에서 시간과 공간이 복합적으로 얽혀드는 보르헤스의 미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저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과 나침반’에서도 미로의 개념을 차입하고 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미로는 단순하면서도 상황을 복잡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뢴로트탐정과 범죄자 샤를라트의 지적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추리소설 양식의 ‘죽음의 나침반’에서는 자신과 동생을 곤경으로 몰아넣은 뢴로트에게 복수를 하려는 샤를라트가 살인사건이라는 함정을 만들어가면서 뢴로트를 마지막 범행장소로 이끌어 들이는데 성공하는데, 그 과정을 미로찾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미로에 있는 세 개의 선은 너무 많아. 나는 단 하나의 직선으로 된 그리스의 어느 미로에 대해 알고 있지.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 직선 속에서 길을 잃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는 탐정도 충분히 길을 잃을 수 있을거야.(183쪽)”

샤를라트는 삼각형을 이루는 장소에서 일어난 세 건의 사건을 통해서 뢴로트를 최종 범행장소로 쉽게 이끌어 들이는데, 그 네 번째 장소가 마름모꼴을 완성하는 삼각형 꼭지점의 대칭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 하나의 직선으로 된 미로의 의미는 바로 삼각형의 밑변을 이루는 직선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보르헤스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면 뢴로트와 샤를라트가 동일인일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내 단편 「죽음과 나침반」을 영화로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이상하게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름까지 혼동된다. 한 사람은 ‘로트’이고 다른 사람은 샤를라흐, 즉 붉은색과 주홍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감독에게 알려주어 한 배우가 두 배역을 맡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살인만 있는 게 아니라 자살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좌에서 저도 제기를 했습니다만,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을 미러 이미지로 설명하기도 한답니다.

저자가 차용하고 있는 미로의 다양성은 장치조차도 없는 미로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바로 <알레프>에 실려 있는 ‘두 명의 왕과 두 개의 미로’에 등장하는데, 그곳에는 올라갈 계단도 없으며 힘들게 열어야 하는 문들도 없고, 돌아다녀야 할 진저리나는 복도들도 없으며 당신의 길을 막을 벽들도 없는 곳입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사막 한가운데였습니다.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또 주목할 개념은 도서관입니다. 1955년 페론정권을 무너뜨린 새 정부가 보르헤스를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한 이래 보르헤스는 18년 동안 도서관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책 한권을 뒤적거리다가 책으로 가득한 모든 책장들을 쓸모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보르헤스에게 도서관은 바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언어구조와 스물다섯개의 철자 기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변형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허튼소리는 하나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의 상상 속에서 도서관은 우주로까지 영역을 넓혀갑니다. 단편 ‘바벨의 도서관’은 “다른 사람들이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우주는 육각형 진열실들로 이루어진 부정수, 아니, 아마도 무한수로 구성되어 있다.(97쪽)”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우주의 모든 비밀이 담겨져 있다고 보면서도 ‘바벨’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로 나타난 언어의 다양성으로 혼돈에 빠진 인류가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통하여 정보와 개념의 통일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이해를 확대하는 듯한 점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클레멘티눔 도서관이 소장한 사십만 권 중의 한 책에 있는 한 페이지의 글자들 중 하나에 있어요. 내 부모들과 내 부부들의 부모들은 그 글자를 찾았지요. 나도 그것을 찾느라 눈이 멀어버렸소.(191쪽)” 보르헤스는 스스로를 문학을 통하여 하느님의 존재를 찾는 구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보르헤스는 도서관을 통하여 우주로까지 사유의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만, 우주로 확대시킨 미로의 개념이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서는 미로이면서도 정돈된 우주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어 지구의 또 다른 세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중우주의 개념은 <알레프>에 담긴 단편 ‘알레프’에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알레프란 모든 지점들을 포함하는 공간 속의 한 지점이면서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뒤섞이지 않고 있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모든 별들과 모든 등불들, 모든 빛의 원천들도 담겨있다는 현대물리학의 초끈이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중우주가 바로 알레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초끈이론에 관하여는 [북소리]에서 소개한 <우주의 풍경>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픽션들>을 읽게 된 계기가 된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보르헤스가 그리고 있는 기억의 천재 이레네오 푸네스는 열아홉살이 되던 해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의식을 잃었는데, 의식을 회복하고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소한 기억까지도 명확하게 되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기억에 관한한 놀라울 능력을 가진 푸네스지만, 그에게는 일반적인 사고, 즉 플라톤적 사고를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즉 얻은 정보를 통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일한 개체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면 별도의 정보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즉, 푸네스의 놀라운 능력은 그저 단순한 정보수집체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푸네스의 기억능력은 <기억전달자>의 조너스가 엄청난 기억력뿐 아니라 기억을 종합하여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통합사고능력이 결여된 기억은 오히려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왜 우리는 보르헤스를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놓은 송병선교수님은 보르헤스의 작품들이 현대의 고전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보르헤스의 소설이 다원성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역사의 측면을 여러 상이한 관점 아래서 파헤칠 수 있으며, 이런 역사의 다원성을 통해 획일화를 추구하는 종래의 정치관과 공식 역사관의 허구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를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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