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의 서바이벌 의료윤리>

■ 지난달의 딜레마 사례 – 종교적 신념으로 아이의 수혈치료를 거부하는 부모

교통사고로 비장 파열과 대량 수혈이 의심되는 10세된 환아가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원됐다.  환아는 혈압이 떨어지고 있었고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긴급히 수술을 준비하는데 다행히 중상을 면한 아이의 부모가 수술을 하더라도 수혈만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가족 전체가 특정 종교의 열혈 신도로 수혈은 교리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응급실을 통해 아이를 넘겨받은 외과의사로서 당신의 선택은?

■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권리는 없지요. 문제는 현실적으로 부모가 반대하는 수혈을 의사가 강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겠어요. 서양과는 달리 개인보다 가족의 의견이 중요시되는 국내 정서상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 한 어떤 시술도 의사 판단에 따라 시행하기 어렵거든요. 혹시 이와 관련한 국내외 판례가 있다면 법적인 근거를 제시해서 부모를 설득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W병원 J원장님)

환아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시술이 수혈 뿐이라면 부모를 설득하든 협박(?)하든 아이를 살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되면 부모는 본인들의 종교적 신념에 손상을 받게 되겠지요. 혹시 수혈 외에 혈액대체제 등으로 부모와 의료진이 모두 만족할 만한 선택의 가능성은 없는건가요? (B의대 본과 2학년 P학생)

■ 긴 고민, 간략한 조언

댓글과 메일로 의견 주신 분들의 의견이 모두 일치하지요?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의 생명이 위중한 상황에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 칼럼을 꾸준히 잃으신 분이라면 비슷한 사례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올해 1월 18일에 다루었던 교통사고로 대량실혈하신 40대 남성의 수혈거부 사례(『종교적 이유로 수혈 거부하는 응급환자 대처법』)인데요. 이때는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언급을 했었지요. 환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수술을 시행한 캐나다 의사의 유죄판결 판례에 대해서도 언급하였구요. 정황상 두 사례 모두 응급수술이 불가피하고 수혈이 최선의 치료라는 판단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단지 다른 것은 환자의 나이뿐인데요. 미성년자인 아이들의 치료결정을 부모가 내리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논점을 짚어보지요. 

본 사례는 선행의 원칙과 자율성존중의 원칙간의 충돌에 있어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개인의 자율적 결정은 비록 개인에게 해가 된다고 할지라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단 전제는 그 결정이 무고한 제 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의사가 보기에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라 할지라도 환자가 원치 않으면 이를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자발적 판단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미성년자의 경우 치료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많은 경우 부모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현실이지요. 부모라면 당연히 자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 사례처럼 아이가 죽더라고 본인의 종교적 신념을 지켜내겠다는 부모의 결정을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수혈거부로 아이가 사망하더라도 부모가 믿는 바대로 영원한 천국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냐구요?

미국의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하여 명확한 결론을 내려 주었습니다. 본인이 순교자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아이에게 순교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국내의 경우도 이미 1980년대 초반에 특정 종교를 믿는 부모가 전격성 간염과 장내 출혈 중세로 고생하는 11세 소녀의 수혈치료를 거부하여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유기치사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바 있습니다. 정리하면 성인의 경우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에, 아이들의 경우에는 선행의 원칙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무혈수술법에 대해서는 필자도 아는바가 많지 않지만, 원리적으로는 이것이 실제 혈액 수혈에 비하여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확보한 것인지가 중요하겠지요. 환자의 위중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감내할 만한 정도의 위험이라면 무혈수술을 선택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혈액수혈에 비하여 무혈수술의 위험성이 현저하거나 촌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무혈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어린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선택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 이달의 딜레마 사례 - 돼지감자로 당뇨를 치료하겠다는 단골환자

65세 최씨는 당뇨병으로 10여년째 치료중인 당신의 단골환자이다. 식사조절도 잘 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는 모범환자로 경구용 혈당강하제를 복용중이다. 최근 시행한 당화혈색소가 7.1% 정도로 비교적 조절이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약을 그만 먹고 싶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친척중 한분이 돼지감자를 먹고 당뇨가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단다.  최씨도 이미 돼지감자 엑기스를 6개월분 주문해 놓았다며 당신의 의견을 묻는다. 주치의로서 당신은 어떻게 대화를 지속해 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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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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