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진료실 단상>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연일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경북 영주에서 낮 기온이 38.7도까지 오르는 등 더위와 관련한 각종 기록을 갱신할 기세이다. 반대로 작년에는 계속되는 집중 호우로 주택가를 덮친 산사태 등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서 ‘50년 만의 대기록’, ‘100년 만의 대기록’하는 기사가 나오지 않은 해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기상 이변이 일상화된 시대가 되었다.

기상 이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농부들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년같이 계속되는 호우로 햇빛을 받지 못한 과일들이 흉작을 이루는가 하면, 다 지어놓고 수확만 기다리다가 태풍에 휩쓸려 수확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뭄으로 제대로 농작물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가축들도 더위를 먹어 집단 폐사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지금 미국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옥수수 농사가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여 옥수수 파동이 일고 있다. 이로 인해 ‘애그플레이션’(agflation; agriculture inflation)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모든 문제는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최종적으로는 사람으로 귀결되게 된다. 기상이변의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환경론자들이 다루고 있다. 기상이변이 계속되면 우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이 우선 질병을 앓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직접 아프지 않은 사람도 운동량이 감소하게 되고 열대야로 인해 수면장애를 유발하면서 서서히 체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식품 가격의 상승은 건강에 좋은 음식보다는 싸고 편한 식재료와 음식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에어컨의 사용으로 인해 냉방병은 물론 먼지의 흡입으로 인한 피해가 늘게 되는데 과거 건물 건축시 석면 사용이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진폐증이 증가할 가능성도 높다. 기후 변화는 동식물의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와 말라리아와 같은 아열대 지방의 풍토병의 증가도 생각할 수 있으며, 작년과 같은 집중 호우 때는 수인성 질환의 증가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다들 아는 질환들을 나열하는 이유는 기후변화는 필연적으로 생태계와 생활 습관을 바꾸게 되며, 이런 변화는 질병군의 발병 빈도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극소수의 노약자들이 더위에 쓰러져 사망하는 사례만이 뉴스를 장식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경험이 부족한 질환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1970년대 초 중반만 해도 협심증과 심근경색은 매우 희귀한 질환이었지만 지금은 필자와 같이 외래환자만 보는 개원의도 자주 진료하는 아주 흔한 질환이 되었다. 그리고 신종플루 초기에 많은 국민과 보건 당국 그리고 의료진조차도 경험부족으로 당혹했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질병의 변화 패턴을 파악해서 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의사 생활을 25년여에 해온 필자도 말라리아나 리케치아에 의한 감염, 진폐증과 같은 질환에 대한 임상 경험은 거의 없다.

기후 변화가 가져올 수도 있는 질병의 종류를 예측해 그 대책을 세우고 해당 질병에 대한 전문 의료인을 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이 질병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방법은 무상복지와 같은 개념보다는 건강에 해롭지 않은 식재료의 공급과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일 것이다.

얼마 전 유력한 대선 후보로 주목받는 분이 본인의 의대 재학 시절 빈민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빈민촌에서 아이들이 알약으로 공기놀이를 했다. 공짜로 약을 받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100원씩 받았다. 그랬더니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어 치료율도 높아지더라. 공짜가 반드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소액이라도 돈을 내고 참여하게 하면 주인의식을 고취하고 만족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하였다.

우리가 성자로 추앙하는 슈바이처박사도 그의 저서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에 의하면 가능한 한 청소를 하거나 나무 열매를 따는 등의 무리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진료비를 내게 하였다고 한다. 무상복지가 나쁘다는 의도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정으로 어려운 계층을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좋은 식재료를 공급하고 위생적인 주거 환경을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 더 시급하다는 뜻이다.

‘빈곤은 위계질서가 있지만 스모그는 평등하다’는 말이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지켜보면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그의 저서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한 말이다. 취약계층이 우선은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겠지만 결국은 전 국민이 그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닥칠 수도 있는 새로운 질환을 예측하고 대비하며 해당 질환의 의료 전문가를 양성하는 의료 인프라의 구축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일 것이다.

이현석은?

198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4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수료 및 전문의1998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06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2011년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의료커뮤니케이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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