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보건의료법정책 세미나 I / 송기민 지음 / 한국학술정보 펴냄

국민들의 사회참여의식이 고조되면서 국가정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보건 복지 분야의 정책방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책을 주관하는 정부당국이나 정책의 영향을 받게 되는 보건의료계 역시 여론의 향배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왜곡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시각은 여전합니다.

보건의료정책은 해당 분야의 종사자도 집행된 다음에서야 문제점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을 평가하는 방법론 등을 비롯하여 여러 영역에서 아직도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정책당국이나 전문가단체 그리고 시민단체 등이 충분히 의견을 교환하여 합의에 이르는 성숙된 과정을 통하여 정책이 실행되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어떻게 보면 정책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같이 고민하는 절차가 생략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관련 자료 역시 학계가 주도하는 전문서적 수준에 머물고 있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마저도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대중서가 없다고 해도 관심주제를 같이 논의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명윤리에 관한 학술서에 가까운 <가족의 치료중단요구와 의사의 생명보호의무>를 북소리를 통해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최신보건의료법정책 세미나 I>도 유사한 경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이번에도 마침 같은 송기민 교수의 책입니다.

송기민 교수는 보건의료정책은 법, 행정, 보건, 의료, 복지 정책 등 다양한 학제의 접근이 필요한 분야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최근 우리사회를 달구고 있는 ‘복지’논쟁의 쟁점 가운데 사회보장제도가 있고, 그 핵심에는 보건의료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보건의료정책이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한 분야라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건이 복지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료계 인사들이 적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 때문에 대한의사협회는 보건행정과 복지행정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의 기능을 나누어 인간의 건강에 관한 정책을 다루는 보건분야를 환경분야와 같이 묶고, 복지부문은 노동 여성 가족 등과 같이 묶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보건과 복지는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 생각하는 보건의료계 인사들과는 달리 복지전문가들은 보건을 복지의 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인식의 차이는 보건복지행정이 보건전문가로부터 복지전문가로 교체되면서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자가 본서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의약분업정책, 보건의료기술발전과 임상시험, 건강증진과 담배사업규제정책,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사회보험의 권리구제정책, 보건의료인력의 수급정책, 응급의료미수금대물정책 그리고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정책 등입니다. 제시한 대부분의 주제는 보건의료역역이라 생각됩니다만, 저출산과 고령사회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이 보건의료계의 몫인지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WHO가 주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담배규제기본협약에 관한 주제를 보건의료정책의 범위에서 논하는 것 역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제시된 주제를 개별적으로 논하기에는 북소리의 지면으로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에서 민감하다 싶은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의약분업제도입니다. 의약분업의 효과와 타당성, 선진화된 의약관리체계의 구축, 의약분업의 발전방향 등을 제목으로 하여 논하고 있는데, 그 흐름이 주로 정부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관련 이해당사자라 할 의료계, 약계, 시민사회의 견해는 배제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특히 2000년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기면서 시작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시배경이나 정책도입과정을 살펴보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책의 재평가와 보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일을 담당할 주체를 보건복지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저자의 제안에 대하여 의약분업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한 부서가 바로 보건복지부였다는 점을 고려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의료기관 이용증가 ▲건강보험재정지출 증가 ▲항생제 사용감소 ▲방문당 투약일수 증가 ▲의약분업 실시 이후 국민불편 증가 ▲알권리의 신장 등을 의약분업의 효과로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섯 가지 효과 가운데 항생제 사용감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작한 의약품사용평가의 효과가 결정적이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의약분업의 효과라고 내놓을 형편은 아니다 싶습니다. 그리고 처방전 발행을 통해서 국민의 알권리가 신장되었다는 주장은 환자가 최종적으로 복용하게 되는 약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조제내역서 발급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내세우기가 민망한 노릇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모든 제도가 국민의 입장에서 편의성을 따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제도는 국민의 편의성이 외면된 정책이었다는 지적은 국민만족도 조사 등의 결과로 드러나 있습니다. 즉 실효성없는 국민의 알권리를 표면적으로 내세워서 처방전 발행을 의무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대만처럼 병원에 원내약국을 개설하여 환자로 하여금 원내약국 혹은 외부약국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기회를 원천봉쇄한 것은 정책에 큰 하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동차 사고를 당했을 때 적용되는 건강보험급여제한에 관하여 두 개의 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기과실에 의한 자기신체피해 교통사고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이 모두 사회보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자동차보험의 책임보험은 건강보험과 같이 의무가입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서 쟁점은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의 수가체계가 독립되어 있고 자기부담부분 역시 두 보험체계가 상이하다는 점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 건강보험은 전국민이 의무가입해야 하는 반면 자동차보험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운전하는 사람만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이라는 점이 중요하겠습니다. 따라서 자동차를 운전함으로써 발생하는 자기상해에 대하여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조성된 재원으로 운용되는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것은 기회균등과 형평성을 고려하였을 때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일단 자동차를 운전함으로써 발생하는 사고의 위험가능성에서 운전을 하는 사람과 운전을 하지 않는 건강보험가입자 사이에 당연히 차이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 그만큼의 위험을 고려한 별도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과하여 재정부담에서의 형평성이 전제되지 않은 채 자동차운전자의 자기과실에 의한 상해에 건강보험적용을 논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납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하기 위한 여명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응급의학체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여명작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주대학교 이국종교수가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 응급의학체계를 정립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시간이 경과되면서 용두사미가 되어가는 것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응급의료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할 또 다른 과제가 바로 응급의료비 미수금대불제도입니다.

응급환자 본인 또는 가족이 진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경우, 응급의료기관에 응급진료비 및 이송처치료를 대신 부담하고 나중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돌려받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응급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응급의료가 경제적 사유로 지연되거나 거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도입된 제도입니다. 제도의 기본취지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는 점이나 이 제도를 통하여 지급된 응급의료비가 제대로 환수되지 않고 있는 문제점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끝으로 저출산·고령화사회 대응정책에 관한 주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수준이 향상되고 여기에 저출산 문제가 중복되면서 우리사회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보건정책 혹은 복지정책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조차 이해되지 않습니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인구동태에 관한 사항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와 사회구조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면 보건복지부가 아닌 행정안전부의 소관업무라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고령자가 늘어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의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평균수명이 연장된 결과이며, 저출산의 문제는 육아 및 교육 등의 부담에 대하여 출산연령에 있는 젊은이들의 인식변화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현재 가임연령에 있는 젊은이들은 우리사회가 핵가족화되던 시기에 출생하여 부모들의 과보호 아래 자랐던 세대로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키워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출산 역시 자기중심적 사고의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구구성을 보면 경제적 활동인구가 되는 청장년층이 노인층을 지원하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완만한 기울기의 산형이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항아리형을 지나 뒤집힌 호리병형모양 노인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상황으로 사회의 퇴화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양할 노인층이 두터워지면 청장년층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노인이 되는 세대가 자녀를 적게 낳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회구조를 만든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갈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의 부담을 나누지 않은 사람이 사회의 과실을 동등하게 나누는 것에 대하여 대립되는 의견이 있습니다. <발칙한 경제학>에서 사회적 이슈를 엄격한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바라본 스티븐 랜즈버그는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 사람이므로 당연히 그들 모두가 동등한 대접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과 우리에게는 우선 번식을 할 도덕적 의무가 없고, 우리가 생명을 줄 의무가 없다면 그들에게 부를 주어야 할 의무도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령화사회에서 노인복지를 논하는 과정에서 자녀수에 따라서 차등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복지에 형평성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회적 부담을 나눈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같은 틀에서 복지의 과일을 나누는 것은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글머리에서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보건의료와 복지문제에 일반인의 관심이 많은데 반하여 공유할만한 자료가 많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쉽게 쓰인 보건의료정책 관련 도서가 보다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저자가 제시한 주제에 관하여 같이 논의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에 소개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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