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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만나다] 페북에 빠진 의료윤리학자…"공정함이 의료윤리의 핵심"권복규(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
‘정부가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하고 적어도 의사 1만명 쯤은 바로 고용할 것을 권장합니다’

최근 페이스북에 한 의대교수가 정부, 의사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의사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고, 포괄수가제 등 각종 의료계 현안을 명쾌하게 짚어냈다. 그와 페친(페이스북 친구)을 맺은 의사들은 신선하고 균형적인 시각이라는 게 중론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권복규 교수.그는 그동안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비교적 덜 권위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찾아왔다. 세상을 향해 풀어놓을 말들이 목전까지 차올라 더 이상 견딜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개월 전 페이스북에 둥지를 튼 권 교수는 작심한 듯 관료주의에 찌든 복지부와 당당히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는 의사들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오후 폭염이 최고조일 때 기자는 그를 찾아갔다. 


-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자주 봤다. 의사들이 상당 부분 공감하는 것 같았다. 왜 글을 올리게 됐나.

"최근 의료계에 닥친 현안을 보면서 의사들이 적극 나서 정부와 국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페이스북은 권위적이지 않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아직 피드백이 많지 않아 글에 대한 반응은 잘 모르겠다. 개원의든 봉직의든 진료실을 떠나기 어려운 한계가 있어 페이스북은 좋은 의견교환 통로인 것 같다."

- 의사학과 의료윤리학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의사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한국의료가 근본적으로 모순이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의대를 다닐 때는 기자의 꿈을 꾸기도 했다. 원래 의사학을 전공했고, 의료윤리, 의료인문학 등으로 다양한 학문을 접하게 됐다. 사실 우리나라에 이런 학문이 활발하게 연구되기 시작한 건 불과 10년 남짓이다. 사이언스와 엔지니어링 중심으로 의학이 치우치다보니 반성하게 된 것이다."     - 의대생을 비롯해 의사가 의료윤리를 비롯한 의료인문학 소양을 쌓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목의 특성상 학습효과를 측정하기도 어렵고, 눈에 띄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배워야 할까. 멀리 보는 거다.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 그 힘이 발현될 수 있기 때무니다. 예를 들어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해 누군가가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는 것은 그 정도의 통찰력을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거다. 실제로 의사들은 현실에 뛰어들고 나서야 의료윤리 등의 개념이 가치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의료인문학 교육은 그런 현상에 현명하게 대응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길러 줄 수 있다."

- 적지 않은 의사들이 의료윤리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나?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데 고고한 윤리 타령이라고.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료윤리가 스스로를 더 옥죄는 족쇄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건 전통적인 윤리 개념을 생각해서 그렇다. 이제 정당한 이유 없이 의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윤리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어도 현대적 시민사회에서는 공정한 룰을 지키는 게 윤리다. 공정함이 현대윤리의 핵심이다. 국가가 의사를 하나도 안 도와주고 원가의 70% 이하를 받게하는 수가 구조 하에서 도리어 의사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공정한 것이고, 윤리에 어긋나는 짓이다. 의사는 이런 비합리성을 당당하게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너무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 의사가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의사가 주동인물이 돼야 함에도 실천하기 어려웠던 배경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의사가 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의견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일제 치하 때 관료의 틀에 갇히면서 빼앗겼다. 또 군부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의사는 정부의 의무를 수행하는 객체로 전락했다. 여기에 전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면서 국가 행정의 틀로 완전히 들어오게 됐다. 의사들은 다른 직종과 경쟁에 돌입했고, 살기 팍팍해졌다. 특히 한국은 국가 목적을 위해 국민을 동원하는데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징병제처럼. 의료도 마찬가지다. 의사를 국가에서 부려도 된다는 의식을 국가는 물론 정치인, 국민이 모두 갖고 있다."

- 우리나라는 유난히 보건의료 전문 직종 간 갈등의 골이 깊다. 이것도 역사적인 배경이 있나.

"일제 치하 시절 한의사에게 의생면허를 줬다. 하지만 정작 일본 본토에서는 명치유신 이후 한의사를 아예 폐지했다. 해방이 되고 나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한의사는 민족의학 바람을 타고 부흥기를 맞는다. 결국 의료성 때문에 살아남은 게 아니라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업고 살아남은 거다. 에비던스를 가진 논문도 드물다. 의사가 갖는 심정이 이러하니 갈등이 생기지 않겠나. 약사는 해방 이후 의료 인프라가 없는 시절에 본의 아니게 1차의료를 대신하던 존재였다. 세월이 흘러 약국을 먼저 가고 그래도 아프면 의원에 가는 게 국민 정서적으로 친숙해졌다. 여기에 제약사가 약사를 흡수하지 못해 모두들 개업했다. 이들 개업약국은 1차의료 기능을 수행했다. 그런데 90년 대부터 건강보험이 시작되면서 의원과 약국 간 수가 차이가 크게 줄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 최근 들어서도 정부와 의료계, 또는 보건의료 직종 간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우리 사회는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훈련이 잘 안 돼 있다. 독재를 벗어난 지 얼마 안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부분 투쟁해서 쟁취하는 것이었다. 갈등을 교정하는 매카니즘이 취약했다. 따라서 어떠한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해야 하는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좋지는 못하다. 그래서 의사는 공정한 룰을 지키고, 균형적인 시각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평소에 갖추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 현 시점에서 국내 의료환경이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제도는 무엇인가.

"의료기관 당연지정제를 들 수 있다. 당연히 위헌인 제도가 한국에서는 합헌이다. 당연지정제 철폐를 위해 합법적인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당연지정제는 전시에 군인을 징발하듯이 민간의료기관을 국가가 징발한 것과 다름이 없다. 문제는 지금은 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안을 위해 장남은 좀 희생해야지’라는 윤리관, 정의관의 확대판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국가는 충분한 투자를 해 공공의료 인프라를 깔아야 한다. 또 정당한 보수를 주고 의사를 고용해야 한다. 공공의사 1만명을 만드는데 1조원이면 된다. 기존 의사들 중에 적정 연봉을 주고 공무원 신분을 보장해준다면 지원할 의사는 많다. 정부는 그런 부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한다."

-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가 화두다. 결국 관건은 건강보험 재정 확보의 안정성인데, 가능하다고 보는가.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고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다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당장 월급의 10%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면 가만 있을 국민이 과연 있겠나. 현 상황을 볼 때 향후 10년 안에 보험료를 대폭 올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포괄수가제도 문제다. 지출합리화를 위한 방법으로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어떤 환자의 치료 포기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게 분명하다. 포괄수가제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또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를 얘기한다. 건강보험도 제대로 못 굴리면서 무슨 복지를 말하는건지. 국회의원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해놓고 5년 뒤에 재정이 펑크나면 욕을 먹고 물러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만큼  정치권 수준이 낮은 것이다."

- 의사가 보건의료제도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한국은 여전히 복지는 있고 보건(의료)은 없다. 의료를 다른 섹터로 분리해야 하는 게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의사도 변해야 한다. 보건의료제도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두려움에 빠지지 말고, 이해당사자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입장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개원의든, 봉직의든 이러한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의사단체(의협이나 학회)를 통해 가능하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바로 이런 능력은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전문직업성은 권위를 확보해 주고 주체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료의 사회사’라는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미국 의사들이 어떻게 의료제도의 주체로 서게 됐는지 잘 알 수 있다."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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