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 '대단한 유혹'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캐나다 퀘백 주에 위치한 ‘생 마리아’란 외딴 섬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소재로 한다. 영화의 주 무대인 생 마리 섬은 한때 잘 나가던 어촌 마을이었지만 어업이 쇠퇴하면서 마을은 완전히 활력을 잃었다. 젊은이들은 섬을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연금에 의존한 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제약회사에서 섬에 공장을 세워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단 이 섬에 장기 계약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갈수록 퇴락해가는 섬을 살려내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의사를 구하고자 사방팔방 수소문해보지만 쇠락해가는 작은 섬으로 들어올 의사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 섬을 찾아온 의사가 있었으니, 섬마을 사람들은 그를 붙잡기 위해 온갖 혜택을 제공한다. 그가 다니는 길목마다 지폐를 흘려두거나, 낚시를 할 때면 바다 속으로 몰래 들어가 낚싯줄에 대어를 달아주는 등 그 의사를 유혹하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마을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에 감동한 그 의사는 결국 이 섬에 남는다.

국내에서도 이 영화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2010년 전남 강진군의 이른바 ‘산부인과 유치 프로젝트’가 영화 ‘대단한 유혹’과 얼추 겹쳐진다. 당시 강진군은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는 지역내 산모들이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병원 개설에 필요한 건물 임대료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대도시 산부인과의 월 평균 매출액을 기준으로 차액분을 보존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강진군의 산부인과 유치 작전은 실패했다. 강진군이 제시한 지원 조건과 의사들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요구사항이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전남 완도군에 위치한 외딴섬 노화도란 곳에 ‘은퇴의사 모시기 사업’이 결실을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지사까지 나서 추진된 은퇴의사 모시기 사업을 통해 60대 후반의 은토의사를 모시는(?)데 성공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의사를 향한 ‘대단한 유혹’이 펼쳐지고 있다. 도서 벽․오지마다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사와 병원이 없어 난리다. 지자체 군단위 소재지 가운데 산부인과 분만시설이 없는 곳이 숱하다. 의료기관의 대도시 쏠림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역 환자들의 수도권 유출 현상과 함께 지역 거점도시로의 유출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이 발간하는 보건복지포럼 7월호에 실린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과 정책과제’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지역 환자들의 대도시 유출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도 기준으로 퇴원 암환자가 이용한 상급종합병원의 소재지 비율을 보면 서울과 부산 대구 등 주요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에서 50% 이상이 서울지역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퇴원 암환자의 95%가 서울에 위치한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과 울산 경기, 강원 등지의 퇴원 암환자 중에서 60% 이상이 서울지역 대형병원을 찾았다. 나머지 지역도 그 비율이 30~40%에 달했다.

의료전달체계 확립은 고사하고 의료자원의 지역 간 불균형이 생각 외로 심각하다. 이 때문에 지방 암 환자나 장기 투병 환자들이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환자방’이란 공간까지 생겼다. 지방 환자들은 보다나은 의료서비스 혜택을 누리기 위해 ‘의료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의료자원의 수급 불균형은 의료이용의 형평성 문제뿐만 아니라 의료자원의 활용성 측면에서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정부는 그동안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의료자원의 적절한 분배를 위해 다양한 제도개선 방안을 추진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암환자 의료 이용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수년 전부터 시도별 국립대병원을 지역암센터로 지정하고 건립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과 전문인력 확충 등의 어려움으로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에 관심을 갖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면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부도 뒤늦게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 사업을 추진했지만 예산 확보를 위한 의지 부족과 의료전달체계란 큰 틀의 밑그림 없이 임시방편의 정책만 남발했다. 대부분 예산만 찔끔 지원하고 나머진 민간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국·공립병원은 전체 의료기관의 7.3%, 병상 수는 11.8%에 불과한 현실이다.

진짜 문제는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지역별․종별 병상 자원의 쏠림방지 등을 위해 의료의 공급과 수요에 기반한 병상 수급 및 질 관리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겠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언급했을 뿐이다.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서는 결국 예산확보가 최대 관건인데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올해 복지부 예산을 보면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에 투입되는 예산이 작년 518억원에서 503억원으로 되레 감소했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지역간 의료자원 수급 불균형 문제가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상태에 빠질지 모른다. 일본처럼 분만을 위한 '출산 난민'과 '암 난민'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의료자원 수급 불균형과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비전을 수립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려는 열의를 보여야 한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영화 속 섬마을 사람들은 의사를 구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최소한 그 만큼의 '대단한 유혹'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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