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의약품 허가와 관련된 `비밀의 장막'이 조만간 상당 부분 걷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의 의약품 규제ㆍ감독기구인 유럽의약품청(EMA)은 15일 신약 허가와 관련된 자료들을 외부의 민간 연구자들에게 원칙적으로 전면 공개할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EMA는 오는 11월 이해 당사자들과 함께 회의를 열어 공개 기준과 방법 등 세부적인 사항들을 논의한다.

EMA의 자료 전면 공개 방침은 제약산업의 투명성과 국민 보건안전 강화와 관련해 획기적인 조치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임상시험 자료 등 의약품 허가와 관련된 자료들을 공개하라고 요구해 왔다.

제약업계가 늘 효능은 과장하고 부작용은 축소 또는 은폐하고 있으나 당국이 이를 제대로 거르지 못해 소비자들이 큰 피해를 본다는 이유에서다. 업체들이 낸 자료들을 수많은 외부 학자들과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이 꼼꼼하게 점검할 경우 이러한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자료 공개 요구의 근거였다.

반면에 제약업계는 임상시험 자료 등은 기업의 사적인 재산권이자 개인정보 침해 등의 우려가 있다며 일반 공개에 반대해 왔다. ESM 역시 비슷한 이유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공개주의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시판 허가를 받은 의약품에 중대한 부작용이 있음이 뒤늦게 드러나는 일이 잇따르고 제약산업과 규제ㆍ감독 기관 간의 유착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ESM이 `비밀주의'를 더는 고수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머크의 진통제 `바이옥스'와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SK)의 당뇨병약 `아반디아'가 미국과 유럽에서 부작용 때문에 판금되고 이와 관련한 민ㆍ형사 소송이 줄을 잇는 사건이 파장이 컸다.

GSK는 `아반디아'가 심장에 미칠 부작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항우울제 `팍실'의 미성년자 사용을 부추기는 등 각종 보건의료 사기 행위 혐의로 미국 연방 및 주정부들로부터 피소당했으며 지난 4일 총 30억 달러의 벌금과 민사합의금을 주기로 미 당국과 합의했다.

또 EU의 옴부즈맨이 ESM과 제약업계의 자료 비밀주의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최근 판정한 것도 영향을 줬다.

EMA의 전면 공개 방침은 제약업계엔 타격이 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몸에 좋은 약이 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EMA의 의약품 안전 수석 책임자인 한스-게오르크 아이흘러는 이번 공개 방침은 그간 규제 당국과 제약업체들의 여러 추문과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라고 말했다.

아이흘러는 "햇볕(공개)이 최고의 살균제라는 교훈을 배웠다"면서 자료 공개 원칙주의 도입이 신뢰회복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U 옴부즈맨에 청원서를 낸 덴마크 보건 분야 시민단체 NCC의 페터 고체 소장은 "그간 ESM이 미국 식품의약청(FDA)에 비해 개방성과 투명성에서 뒤졌으나 이번 공개 방침으로 앞으로는 앞설 수도 있다"며 환영했다.

소비자단체 등의 압력에 따라 EMA는 최근 1년6개월 동안 150만 쪽 분량의 임상시험 자료 등을 공개했다. 이는 그 이전 같은 기간에 비해 10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완전 공개 원칙에 따라 앞으로 공개될 자료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 분량에 이를 수 있다. 오는 11월 회의에선 방대한 자료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과 시스템 구축에 관해 중점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EMA는 밝혔다. 또 환자 비밀 보호와 자격 미달 연구자들의 정보접근, 무분별한 이용과 공표에 따른 피해를 막는 방안도 중요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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