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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만나다] 섬세하고 힘센, 나는 남자 간호사다최성기(서울아산병원 E 로젯/수술간호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남자 간호사에게 면허를 발급한 해는 1962년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간호사 업무는 여성의 전문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인식이 많이 허물어졌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올해 간호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남자 간호사는 총 959명으로 전체 합격자(1만2840명)의 7.5%를 차지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전체 남자 간호사 수는 5,125명에 달한다. 이젠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를 보고 신기해 하는 환자나 보호자도 드물다. 서울아산병원 수술팀에서 근무하는 최성기 간호사도 그 많은 남자 간호사 중 한 명이다. 꽤 남성적인 외모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여성보다 더 섬세하다. 무거운 수술장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하고 환자와의 대화뿐 아니라 의사와의 민감한 이야기,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환자에게도 이야기로 공감하는 여성성을 발휘한다. 그는 간호사 일이 천직이라고 말한다. 
 - '남자 간호사네요'하는 반응 이젠 지겨울 것 같다."별명이 시어머니다. 워낙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자 간호사 분들과 잘 통하고 잘 어울릴 수 있었다. 간호학과를 택한 건 간호사는 전문직종이라 안정적일 거라는 담임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아마 선생님도 나의 그런 면을 간파하고 추천해 주신 게 아닐까 싶다. 처음 병원에 출근했을 때는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뇌수술을 하고 의식이 없는 채로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상대했다. 의식이 없는 환자들이지만 간호하면서 날씨 얘기, 병원 얘기 등등 이런 저런 말을 건네고 인사도 했다. 의식은 없어도 청각은 제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환자가 깨어나서 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고마워 하더라. 여자들 틈에서 남자다움을 많이 잃었지만 그럴 땐 천직인가 싶다. 수술장으로 옮긴 뒤에도 의아해 하는 환자들의 반응에 일일이 잘 설명해주는 편이다. 병원에 오면 목소리 톤까지 올라갈 정도다.”

- 남자 간호사가 본 여자들의 세계는 어떤가.“일단 소문이 너무 빠르다.(웃음) 신입 간호사들은 혼나면 많이 울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생기면 위에서는 잘 챙겨주고 달래주라고 한다. 그래서 병원 근처 맥주집에서 같이 술도 마시면서 이야기도 들어주고 달래줬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어제 둘이 뭐했냐, 사귀냐고 물어보더라. 물론 장난 섞인 말이지만 전날 밤에 누가 그걸 보고 병원에 이야기를 하고 하루밤 새 사귀냐는 이야기까지 나온 거다. 술자리로 푸는 건 남자들 사이의 관행인데 이쪽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뒤로는 괜히 말 나올까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일 할 때 보면 여자간호사들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간호사들은 한 가지 일을 끝내야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다른 업무를 시키면 스트레스만 받고 제대로 일을 못한다. 이 부분은 일에 대한 노하우라기 보다 남자와 여자간 성격적인 차이 아닐까 싶다. 부럽기도 하다.”

- 지금까지 업무를 하면서 크게 실수한 적은 없나.“남자 간호사 수가 적은 만큼 처음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선배들은 일단 지시한 일과 기본부터 잘하라고 했는데 관심과 기대가 큰만큼 잘하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이지 않나. 지혈제를 사용할 일이 있었는데 냉동된 지혈제를 녹여야 했다. 빠릿빠릿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그걸 전자렌지에 돌렸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지혈제가 꽤 고가인데 전자렌지 안에서 터졌고 엄청 혼났다. 병원을 관둬야 되나 싶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잘 하려다가 저지른 실수는 여자 간호사들도 많이 하지만 남자 간호사라 더 부담됐다. 역시 남자라 꼼꼼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했었다.”

- 의사들 중에는 아직까지 남자가 훨씬 많은 편이다. 그래서 남자 간호사란 점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유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들과 의견이 부딪힐 때가 가끔 있다. 수술을 할 때 이 도구를 썼으면 좋겠다, 이걸 먼저 하면 더 빨리 수술이 끝날 거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집도한 의사분은 군의관을 마치고 병원에 온지 얼마 안됐었고 내가 여러 번 경험한 수술이었다. 그런데 수련의가 ‘내가 있는데 왜 나서냐, 내 선에서 알아서 하겠다’며 기분 나빠했다. 나도 순간 기분이 상했지만 죄송하다고 하고 끝냈다. 그런데 안타까운 심정이 더 컸다. 수술이 잘돼서 빨리 끝나면 다 좋은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젊은 의사라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는데 의사와 간호사 간 벽이 생기는 게 안타까웠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때 얘기를 했더니 기억을 못하더라. 나만 마음에 담아두었지 이 사람한텐 중요한 일이 아니었구나 싶어 더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데 그 의사가 마음에 걸렸는지 내 페이스북에 '그땐 너무 힘들어서 그랬나보다, 미안하다'고 글을 남겨 놨더라. 그 일을 계기로 더 친해졌다.선배들은 가급적 나서지 말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의사들의 영역을 존중하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상황을 봐 가면서 이야기 할 것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 조심스러워지긴 했다. 물론 의사와 간호사간 소통의 벽이 높지만은 않다. 어떤 의사들은 간호사의 의견을 개의치 않고 반영하기도 한다.”

- 작년에 SBS ‘짝’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물론 남자 간호사라는 직업 때문이다. 그땐 ‘짝’이 지금만큼 인지도가 높지 않았을 때였는데 출연자 모집 공고를 보고 재밌겠다 싶어 신청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제작진도 직업에 대해 흥미로워했다. 남자 간호사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까진 생소하다보니 이야기꺼리가 될 만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주위에 그렇게 여자가 많으면서 거기까지 가서 찾을 필요가 있냐며 면박을 줬다. 일단 병원에 휴가를 내고 ‘애정촌’에 일주일 간 입소했다. 쳐진 눈매에 안경, 큰 키 때문에 가수 성시경을 닮았다고 방송에 나갔다. 방송 전, 동료들이 ‘시어머니’ 같은 이미지를 커버하기 위해 안경을 쓰고 차분한 컨셉으로 가라고 일러줬다. 사실 안경을 잘 쓰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나름의 컨셉대로 과묵하게 있었다. 그러니 동료출연자들은 내가 자기소개 할 때 간호사라고 말하는 순간 모두 놀라고 나중엔 내가 말이 많아서 놀라더라. 직업 때문에 여자출연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긴 했지만 잠깐이었다. 혼자 밥을 먹기도 했다. 치과의사 여자출연자와 잘 되는 분위기로 방송에 나갔지만 지금은 친한 누나 동생사이다. 같은 의료계 종사자였지만 일 이야기는 많이 안했다. 다른 재밌는 일도 많은데 일 이야기로 대화를 끌어갈 필요는 없지 않나."-  방송 이후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방송 후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재밌는 추억거리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잊혀진 줄 알았는데 오늘 인터뷰 요청을 받고 놀랐다.(웃음) 20대 중반엔 모델 일을 잠깐 했었다. 병원 근무가 무료할 때 쯤 모델 일을 하던 친구가 제의를 하기에 잡지 화보 촬영도 하고 쇼 무대에도 섰다. 재밌게 사는 데 관심이 많다. 짝에 출연한 것도 그렇고 모델 일과 오늘 인터뷰까지, 간호사가 하기 드문 경험이라 생각하니 재밌다.”

- 앞으로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나. “우리 병원만 해도 전체 간호사 3,000명 중 60명이 남자 간호사다. 그 숫자는 매년 늘고 있다. 주로 환자를 옮기고 위치를 바꿔줘야 하는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남자 간호사들이 많다. 수술장에서는 무겁고 큰 기계를 다룰 때 남자 간호사들이 필요하다. 기계를 옮기는 것 뿐 아니라 조립도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수술장이라 해서 메스나 가위를 다루는 섬세한 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남자 간호사와 여자 간호사가 잘 섞여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서 일하다보니 남자 간호사들이 인정받고 있다. 또 인원이 적은 만큼 결속력이 굉장히 강하다. 지난 주에는 남자간호사들끼리 1박으로 엠티를 다녀오기도 했다. 평소에도 자리를 많이 만든다. 선배들은 더 어려운 상황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있으니 잘 챙겨 준다. 남자 간호사가 지나가면 환자들이 의사라 생각하고 가끔 물어보거나 하는 걸 보니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기도 하다. 임상 쪽 일을 하는 남자 간호사는 더욱 수가 적은데 남자 후배들이 이쪽에서 잘 버티도록, 최소한 의지할 데 없어서 그만두는 일은 없게끔 나부터 우선 임상 간호사로 오래 남아있을 생각이다.”

박소희 기자  lifegoeson@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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