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근거 자료 제시 못해…의료정책연구소 "그런 조직 아는바 없어"
복지부도 관심…공단측에 관련 자료 조사 지시해

▲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전체 회의 모습.

대한의사협회가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 위원 재구성안으로 제시한 독일의 연방의료심의위원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의협은 지난달 30일 전국의사대표자회의에서 건정심 구조 개편의 당위성을 천명하고 공급자대표 9명, 가입자 및 보험자대표 9명, 공익대표 3명의 재구성안을 내놨다. 현 건정심은 공급자, 가입자, 공익대표 각각 8인체제다.

특히 공급자대표는 의사 5명,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각각 1명으로 구성하고 가입자(노동계, 경영계, 시민단체)와 보험자(복지부, 기재부, 공단, 심평원 각각 1명)를 하나로 묶었다는 점이 기존 체제와 확연히 구분된다. 병원협회는 병원 경영자단체라는 인식 아래 공급자가 아닌 가입자 쪽에 포함시켰다.   

공익대표는 총 3명인데 모두 가입자와 공급자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공동 추천하는 방식으로 선정한다.

의협 윤창겸 부회장은 “요양급여비율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는 의료계에서 당연히 5명 혹은 그 이상의 건정심 대표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며 “(2004년) 감사원의 지적대로 공익위원은 중립성을 기할 수 있도록 체제를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의협이 주장하는 건정심 위원 구성의 모델은 독일이다. 의협에 따르면 독일의 ‘연방의료심의위원회’는 의사(공급자)대표 9명, 가입자대표 9명(지역의료보험조합대표 3명, 대체의료보험조합대표 2명, 직장의료보험조합, 직능의료, 농민의보, 광산업보험조합대표 각 1명), 중립(공익)대표 3명(전직차관 출신 위원장 1명, 법학자 중 의사대표와 가입자 측 동의를 얻은 2명)으로 구성돼 있다.

 

독일의 연방공동위원회(G-BA) 영문홈페이지.

문제는 의협이 독일의 연방의료심의위원회를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 자료를 제대로 갖춰 놓지 않은 상황에서 새 건정심 위원 구성안(9:9:3)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30일 열린 전국의사대회에서 건정심 구성 개선 방안을 발표하며 독일 연방의료심의위원회를 소개한 윤창겸 부회장은 "의협 보험국과 같이 독일 출장을 다녀온 후 작성한 내부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협 보험국 관계자는 "그동안 의협이 건정심 위원 재구성안을 누차 주장해왔고, 다른 자료도 많다"면서도 정작 독일 연방의료심의위원회의 구성 근거를 밝혀줄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최근 독일 총액계약제 관련 보고서를 발간한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측은 독일 의료 관련 의사결정기구 중에서 9 대 9 대 3 체제를 갖춘 조직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답변했다.

본지에서도 독일의 의료보장 결정기구 중 '9 대 9 대 3'의 위원 구조를 갖춘 연방의료심의위원회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문의했지만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의협 측이 새 건정심 의원 구성안의 근거 자료로 제공한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요양기관 단체계약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2005년)를 보면 연방의료심의위원회와 비슷한 조직이 있는데, 바로 ‘의사·보험조합연방위원회’다.

의사·보험조합연방위원회는 의료계대표 9명, 보험조합대표 9명, 중립대표 3명(위원장은 전직 차관, 나머지 2명은 법학자)으로 구성돼 있다. 보고서는 이 위원회가 “조정기능을 이행하기 위해 각 대표가 동수로 구성하고, 중립위원들 또한 각 대표의 추천을 통해 임명되기 때문에 찬반동수가 되어 위원회의 결정이 어느 한 측의 이익만을 보장할 수 없도록” 했다는데 의의를 뒀다. 따라서 갈등 당사자가 되는 공단이나 정부 측 인사들로 구성돼 있는 우리나라 건정심의 구조와 달리 조정 및 중재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의협이 제시한 독일의 연방의료심의위원회가 지금의 연방공동위원회(The Federal Joint Committee, G-BA)라는 의사결정기구와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4년 설립된 연방공동위원회는 의료보장과 관련된 자치 의사결정기구(의사회, 보험의사회, 병원협회, 의료보험조합 등) 중 최고 기구다.

위원회는 공적의료보험과 관련된 지침을 제ㆍ개정하며, 급여항목도 결정한다. 여기서 제ㆍ개정된 지침은 법률적인 효력을 갖는다.  

위원회는 의료계대표 5명(병원대표 2명, 보험의사 2명, 치과의사 1명), 의료보험조합대표 5명, 중립대표 3명(위원장 포함) 총 13명으로 구성되며, 환자대표는 최대 5명까지 참석해 의결권 없이 제안 및 자문을 할 수 있다. 

공단 윤영덕 보험정책팀장은 “독일은 연방공동위원회에서 급여항목을 결정할 때는 물론 연방이나 주 단위의 진료비 총액계약을 할때도 공급자와 보험자의 동수 구성을 강조하는 국가”라며 “다만 독일은 총액계약제와 포괄수가제를 혼용하는 등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른 측면이 많아 건정심 구조를 똑같이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복지부도 의협이 건정심 위원 구성의 사례로 제시한 독일의 연방의료심의위원회 모델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가 외국의 건강보험정책 관련 위원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며, 특히 건보공단 측에 독일 위원회에 관한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공급자와 보험자를 동수로 구성하고 공익위원의 중립성을 강조한 의협의 건정심 위원 재구성안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비판적인 의견을 보였다.

경실련,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 8개 단체는 지난 2일 성명서를 통해 “건정심에 실질적으로 의사를 가장 많이 포함시키고 있음에도 노동, 시민사회단체들이 건정심의 합의사항을 준수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최고의 사회적 합의구조를 존중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제 와서 건정심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국민 건강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보다는 의사집단의 경제적 이해를 위원회를 통해 관철시키겠다는 뜻”이라고 쏘아붙였다.

가입자대표를 기존 8명에서 5명으로 줄이자는 주장도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건정심 구조나 포괄수가제 논의 구조에 정작 보험료를 내고 있는 가입자를 빼자는 주장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만을 극대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의료수가를 결정하는 구조에 공급자의 직접 참여를 허용하는 선진국의 사례가 없다. 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라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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