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입법 통한 위원 구성 개선 추진…복지부 "의협만 불리한 구성 아니다"

▲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전체 회의 모습

지난달 29일, 대한의사협회는 포괄수가제 저지를 위한 수술 거부를 철회하면서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과 몇가지 중요한 약속을 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구조 개편이다. 의협 노환규 회장은 수술 거부 조건을 담은 선언문을 통해 “불합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정심은 독일 등 선진국과 같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할 수 있는 구조로 반드시 재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회장에 따르면 정 의원은 건정심의 구조적 문제점을 이해한 것은 물론 건정심 구조 개편을 골자로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개원 직후 첫 입법 발의안으로 낼 예정이다.

의협은 지금의 건정심 위원 구성이 공급자와 보험자 및 가입자대표를 동수로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건정심 위원 구성은 의약계(공급자)대표 8인, 가입자대표 8인, 공익대표 8인으로 이뤄져 있다.

공급자대표는는 의협 2인,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간호협회, 제약협회 각각 1인씩 총 8인으로 구성돼 있다.

공익대표에는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소속 각각 1인과 보건사회연구원, 보건산업진흥원, 학계의 보건의료 전문가 4인 등 8인이 참여하고 있다.  

가입자대표는 민주노총 등 근로자단체와 시민단체, 직종단체인들이 위원으로 선정돼 있다. 

반면 의협이 지난달 30일 전국의사대표자대회에서 공개한 건정심 위원 재구성안에 따르면 공급자대표는 의사 5인(의협에서 추천),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각각 1인씩 총 9인으로 구성된다.

보험자 및 가입자 대표는 복지부, 기재부, 건보공단, 심평원, 시민단체 각각 1인씩, 노동계, 경영계는 각각 2인씩 총 9인이 참여한다.

공익대표는 공급자와 가입자가 각각 1인씩 추천하고, 나머지 1인은 공동추천 방식으로 선정, 모두 3인을 뽑는다.  의협에 따르면 이같은 위원 구성은 독일의 연방의료심의위원회처럼 보험자(의료보험조합)대표와 공급자대표(의료계)가 동수(9:9)를 이루고 중립대표 3인(의장, 독립위원 2인)이 참여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의협 송형곤 공보이사는 “독일의 구조가 가장 객관적이며 이상적이라고 보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 공급자대표의 경우 직역 구분없이 다 몰아놔서 전문성이 떨어진다. 공급자 유형별로 건정심 소위체제를 별도로 운영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안을 놓고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의협은 지난 5월 건정심을 잠정 탈퇴하면서 “의사를 대표하는 위원들은 공급자 8인 중 3인(의협 및 병협)에 불과하다”며 “의, 약, 치, 한 등 각 단체와 정부가 일대 일의 협의체를 갖춰 운영돼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의협은 “공단과 심평원 등 복지부와 이해를 같이 하는 인물로 공익대표를 구성하고 있다”면서 “지난 2004년 감사원이 ‘건정심 위원 중 공무원 2인을 제외한 나머지 공익위원은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인사를 위촉 또는 임명토록 했다”고 공익위원 구성 개편을 강조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협의 건정심 구조 개편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박민수 보험정책과장은 최근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급자와 정부 간 일대 일 협의체는 실현 불가능한 모델”이라며 “건정심의 모든 위원들은 개별적으로 각 직종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의협만 불리한 구성이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감사원이 공익대표 위원 구성을 지적한 사항에 대해서도 의협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과장은 “복지부와 기재부, 공단 등은 건보 정책에 있어서는 이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만약 감사원이 건정심 구조가 잘못됐다면 법을 고치라고 했을 것이나 그런 말은 없었다. 2004년 당시 건정심 위원 구성이 공정성이나 독립성이 없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의협의 건정심 구조 개편안을 두고 가입자와 공익대표들의 의견도 사뭇 달랐다.

가입자대표 중 한명인 민주노총 김경자 위원장은 “건정심은 사회적 합의기구다. 의사가 3명인 구성은 다른 직역에 비해 오히려 많다”며 “건보 재정의 80% 이상을 국민이 내는 상황에서 가입자대표는 국민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더 낼 수 있는 구조로 개편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의협이 제시한 건정심 재구성안.

김 위원장은 “공익대표에 가입자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며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익대표의 위원 구성이 좀 더 중립성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익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연세대 정형선 교수는 “의협이 (건정심에서) 의료계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며 “다만 공익대표 구성은 복지부가 임의로 임명하지 말고 가입자와 공급자가 추천하는 전문가를 투입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건정심은 지난 1999년 2월 요양급여비용 기타 건강보험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신설됐다.

당시 건정심의 위원은 보험자·가입자 및 사용자 대표 8인(노동조합·사용자단체 및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단체가 각각 2인씩 추천하는 자와 보험자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원장이 각각 1인씩 추천하는 자), 의약계대표 6인, 공익대표 6인으로 구성됐다.

그러다가 정부는 2001년 건보재정이 대량적자를 기록하면서 2002년 1월 재정적자를 조기에 해소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을 공포하게 된다.

이 법안에 따라 기존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 바꾸고, 위원 구성도 가입자대표(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가 각각 2인씩, 시민단체(비영리민간단체), 소비자단체, 농어업인단체 및 자영업자단체가 각각 1인씩 추천하는) 8인, 의약계대표 8인, 공익대표 (정부, 전문가) 8인으로 늘려 지금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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