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 합법 판결로 '전국민 건강보험 시대' 눈앞에
"미국식 의료민영화 추진에 대한 경고 의미"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 오바마케어)’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국민의 보험가입 의무화 조항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의 합헌 판결로 그동안 메디케이드, 메디케어와 같은 공공의료보험과 민간의료보험 양쪽에서 혜택을 받지 못했던 3,200만명의 미국인이 오는 2014년부터 건강보험에 가입, 적용을 받게 될 전망이다.

현재 미국의 의료보장 체계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 측면에서는 소비자가 의료기술이나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세계 최고의 의료보장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비 지출에도 불구하고 2006년 기준 전 인구의 약 15.6%에 해당하는 4,600만명이 무보험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로 인한 의료서비스의 비형평성과 제도 관리운영의 비효율성 등도 끊임없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미국의 의료보장에 대한 최초의 논의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경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골자로 하는 '뉴딜 정책'의 한 방편으로 사회보장법을 1935년 제정했다. 

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국가개입에 의한 전국민 의료보험이 고려됐으나 당시 미국의사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등의 반대로 의료보험 부문이 아닌 노령유족보험으로 국한해 시행하게 됐고, 이후 30년간 사회보험법 개정과정에서 의료보험 부문은 계속해서 제외됐다.

이후 1965년 존슨 대통령이 드디어 미국 최초의 공적의료 제도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어'와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다.

이후 1994년 클린턴 정부 당시 전국민 의료보험을 위한 논의가 활성화 됐으나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현행 체계로 유지돼 오고 있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공적 의료보험 제도의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이유를 살펴보면, 의료보장은 개인의 책임으로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와 의료공급 체계가 민간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공적 의료보험제도의 창설 및 확대에 미국 사회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료지출 효율성 제고·의료 접근성 향상·공공보건 강화가 핵심 이런 가운데 연방대법원의 ‘오바마케어’ 합헌 판결은 개인주의적 사회구조에서 민간의료보험이 주를 이루던 미국 의료보장체계를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국민이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로 진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법안은 ▲의료지출의 효율성 제고 ▲국민의 의료 접근성 향상 ▲예방의학 및 공공보건 강화를 기본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개혁법안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9,400억 달러를 투입해 무보험자중 3,200만명에게 보험혜택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전체 국민의 95%(현재 83%)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소득수준이 연방빈곤선 100~400% (2009년 빈곤선은 3인 가족기준 1만8,310달러)에 해당하는 미국 시민권자 및 합법적 거주자는 주(州)단위의 비영리 민간의료보험 방식인 미의료보험거래소(American Health Benefit Exchange)에서 보험료 공제 또는 본인부담금 지원 등을 통해 의무적으로 보험상품을 구매해야 한다.

의무가입 위반시 매년 개인은 695달러, 가족은 2,085달러 또는 소득의 2.5%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벌금은 매년 순차적으로 확대 적용해 개인 기준으로 2014년에는 95달러, 2015년 325달러, 2016년 695달러의 정액 또는 2014년 소득의 1%, 2015년 소득의 2%, 2016년 소득의 2.5%를 부과할 계획이다.

단, 저소득층, 종교적 신념, 미국 인디언부족, 3개월 미만 보험 미가입자, 비합법적 이민자, 범죄자, 자기 소득의 8% 미만 보험비 상품을 찾지 못한 자, 소득신고분기점 미만 소득자는 벌금이 면제된다.

기업내 고용인에 대한 건강보험 가입도 의무화될 전망이다.

50인 이상 고용한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을 시 풀타임 고용인 1인당 최고 2,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고용주는 빈곤선 400% 미만 및 보험료가 소득의 8~9.8% 에 해당하는 고용인이게는 바우처를 지급해야 한다.

저소득층 무보험자 지원을 위한 메디케이드도 기준이 확대된다.

개혁법안은 연방빈곤선 기준을 확대해 133%(4인 가족 2만9,327달러소득)수준 소득자까지 메디케이드의 적용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오는 2014년부터는 아이없는 어른들도 메디케이드의 가입이 가능하며 새로 보험혜택이 주어지는 개인들의 보험료는 2016년까지 전액 연방정부가 부담하게 된다.

건강보험개혁법의 효과를 소개하는 백악관 홈페이지 화면.

예방의학 및 공공보건강화도 개혁안에 포함됐다.

감염성 질환의 예방·퇴치 프로그램을 활성화 해 미국 내 에이즈 퇴치를 위한 종합전략을 수립하고 저소득층 중 HIV(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에 대한 보험 적용을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건강증진 프로그램 및 사전예방활동을 강화함으로써 학교·직장에서의 건강증진 프로그램 등 건강증진활동에 대해 보조금 지원, 융자 또는 세금 환급의 등 다양한 증진책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의료비 지출을 억제할 계획이다.

민간보험사가 개인병력, 성별 등을 이유로 가입자에게 가입 거부 및 차별할 수 없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개혁법안에 따르면 모든 민간보험사는 각 Exchange에 두개 이상의 보험상품을 등록해야 하며, 최소한 한개 이상은 비영리로 운영해야 한다.

또한 보험 가입 전 가입자의 과거 병력 및 건강문제로 인해 더 높은 보험료를 요구하거나 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를 위해 보건부장관과 주정부는 보험료 인상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보험사가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사유를 명시해야 하며 주정부는 허가받지 않은 보험료 인상에 대해 Exchange에서의 퇴출을 권고할 수 있다.

"미국식 의료산업화 논리 잘못됐다는 것 확인한 셈"오바마케어법의 가장 큰 의미는 민간 위주 의료보험시장의 실패를 인식하고 이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보험(또는 비영리 민간의료보험)을 확대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보험 혜택을 제공하고 공공보험과 민간보험 간 경쟁 유도를 통한 보험료 인하 달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전국민의 의료접근성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마바케어법의 합헌 판결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미국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가천의과대학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사진)는 “미국이 의료보험을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의무적으로 보편적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로 최초로 진전시켰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특히 민간보험을 통제할 수 있는 기전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민간보험에 정부가 관할 수 있는 범위 커졌다”며 “전체 인구의 의료보장에 대한 프로그램을 갖게 됨으로써 민간보험의 부당한 행위를 규제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건강보험개혁법안 제정의 가장 큰 의미로 공공의료 강화를 꼽았다. 

그는 “민간의료보험이 주를 이루던 미국조차도 의료보험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려 한다”며 “의료민영화 및 의료산업화의 토대가 의료보험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미국을 따라가려는 국내 일부 주장은 논리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병원경영학과 김태현 교수도 공공의료 확대 의미에 동의했다.

김 교수는 “공공의료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비용적인 이유 등으로 보험이 없어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는 문제를 사회가 부담해 이를 막아보자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공공성의 확대로 이해할 수 있다”며 “미국 민주당의 정책이 (의료민영화 등) 국내 일부의 주장과 반대로 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의료제도를 롤모델로 삼는 것은 실패한 시스템을 따라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사진)는 “미국은 영리의료가 굉장히 발달해 있는 국가”라며 “그 결과 엄청난 의료비 지출에 비해 낮은 건강지표는 물론 소득 및 인종차이 등에 따른 건강 불평등이 심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오바마케어는 시장중심 의료보험 체제에서 사회가 책임지는 체제로의 전환을 담고 있다”며 “고비용 저효율의 낭비적인 의료체계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민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걸 제외하면 국내 역시 미국만큼 의료 시장이 발달해 있는 나라”라며 “국내에서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이 민간보험 확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을 내세워 미국식 의료시스템을 모델로 삼는다면 이는 실패한 시스템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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