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림(공주여자고등학교 보건교사)

올해부터 전국 각급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의 일환으로 ‘학생정서-행동발달 선별검사’가 실시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CPSQ(아동 정서・행동발달 검사도구)문항으로 학부모가 설문을 실시해 그 결과를 평가하도록 했고,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 및 교사에게 AMPQ-Ⅱ(청소년 정서・행동발달 검사도구)평가를 이용, 1차 검사를 실시했다.

문제는 평가 결과, 전체 학생의 20-30%가 관심군으로 나타나 너도 나도 2차 검사대상자가 되는 바람에 학교와 학부모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고, 그 사후 대책으로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의 경우, 보건실을 찾아 신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과 건강 상담을 하다보면 상당수가 정서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번 검사결과 정상군으로 분류된 경우도 있었다.

“선영아(가명), 이렇게 힘들어하는 네가 정서-행동발달선별검사에서는 2차 검사 대상자가 아니던데…”“선생님, 그거 제대로 체크한 아이들은 별로 없을 걸요? 집으로 알려지는 것도 싫고, 학교에 문제 학생으로 찍히는 것도 싫어서 대부분 반대로 체크했어요.”

선영이 뿐만 아니다. 실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거나, 불면증에 소화불량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번 검사에서 제대로 선별되지 않았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검사의 타당도와 신뢰도.

첫째, 초등학생은 좀 더 정확한 검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학부모가 대신 설문에 응답했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오류가 있었고, 중・고등학생들은 미리 설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결과를 왜곡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어느 학부모님은  대상자 중 20~30%가 문제가 있는 관심군으로 선별되는 검사지를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이냐며 역성을 내기도 했다.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다 보니 학교마다 검사 결과지는 창의적이기까지 했다. 중・고등학생 중 일부 장난스런 학생들은 모두 한 번호에 답했는가 하면 너무 신중한 아이들은 그 결과에 대한 걱정으로 평소 자신의 정서 상태와 다르게 모두 반대로 답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일부 학부모님들은 혹여 아이의 장래에 악영향을 끼칠까 염려해 ‘전혀 없음’에 표기를 한 경우도 많았다.

둘째, 학생과 학부모는 정신건강검사에 대한 사전 준비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검사를 받았고, 뜻하지 않은 결과에 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야 했다. 정서-행동발달검사에 대한 동의서를 받기 위해 (심지어 학교보건법에는 필요하면 정서-행동발달검사에 대해 동의 없이도 검사가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다)가정통신문을 보내면서 전문가인 교사에게도 낯선 생소한 검사도구 및 절차에 대한 안내를 과연 학부모님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또 정서적 감정변화와 스트레스를 인지하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부단한 교육과 학습이 필요하다. 어른들조차 자신의 감정변화를 인지하지 못해 오랫동안 우울한 감정이 잠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물며 정신건강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보건교육도 없이 아이들에게 검사 이후 2차, 3차 대상자로 낙인찍어 Wee센터・정신보건센터 등에서 치료만 받으라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기막히고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녀의 검사결과 통지서를 받아보고 밤새 걱정이 되서 한숨도 못 잤노라고 울며 하소연 하는 학부모부터 무슨 근거로 우리 아이가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냐며 화를 내며 3차 검사를 거부하는 학부모들까지, 때마다 정신건강 증진 등 보건교육이 필요하다고 교육 당국에 대안 마련을 요청했지만 끝내는 관철시키지 못한 못난 보건교사들까지, 모두가 준비 없는 검사의 피해자일는지 모른다. 

셋째, 정신건강검진의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X-ray검사처럼 일률적으로 문제 상황을 선별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기에, 아직 어린 학생들의 경우, 주변 환경, 그날의 기분상태, 신체건강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정신건강검진은 검사와 상담 전 과정도 치유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사전 교육이 없어 결과적으로는 치유가 아니라 고통이 되었다.  

고개만 돌리면 옆 친구가 몇 번에 무엇을 답했는지 볼 수 있는 교실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거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와 ‘성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한다’ 등에 체크할 수 있을까. 일부 검사지를 받아보니, 아침밥을 못 먹어 집중력이 떨어진 아이들, 배탈이 난 학생들, 부모님께 꾸중이라도 들은 학생들은 부정적인 답을 한 경우도 많아 이런 상황적 조건도 검사결과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검사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적 변수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검사 결과를 과연 얼마큼 신뢰할 수 있을까.

건강에 대한 보건 의료 정책은 선 진단 후 치료가 아닌, 선 예방교육 후 진단과 치료가 이어져야 한다. 질병은 단순히 병원균의 침입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면역, 가족력, 오랜 생활습관, 병원균, 의료제도, 사회적・물리적・자연적 환경 등 복잡한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정신 건강의 문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질병 발생은 진단이 내려지는 시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아주 서서히 진행되다가, 결정적 시기에 증상으로 나타내는 것인데, 그 시점에야 진단이 내려지고 드라마틱한 치료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방보다 치료에 집중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질병 진단 이전에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 지식을 독점하고 있는 의료 전문가들이 나서서 질병 예방 교육을 해야 할 책무가 있고, 1달러를 보건교육에 투자하면 14달러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하는 WHO의 연구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는 의료보험지출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이제는 보건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학교보건법 제 9조, 제9조의 2, 제15조는 ‘정신건강 증진’을 보건교육의 내용 영역으로 정하고, 모든 학교에서 교과부장관이 정한 도서와 시수에 따라 보건교사에게 배우도록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증진 종합대책안’에는 보건교육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종합대책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취학 전 2회, 초등학생 2회, 중・고교생 1회씩, 20대 3회, 30대 이후에는 10년마다 2회씩 정신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정신건강검진은 전 국민에게까지 확대되고 심화되는데, 정작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나 분노조절, 자기 이해, 폭력예방, 건강한 의사소통 등 정신 건강 보건교육에 대해서는 여전히 범국가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보건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학습권과, 교사들의 교수권은 실종된 채 검사만 진행되고, 2차, 3차 대상자만 색출하고 있다.

전 국민이 선진국처럼 학교에서부터 정신건강 증진 등 건강에 대해 배우고, 익히면 안 되는 걸까. 보건의료 지식을 독점함으로써 보건의료인이 권력화 된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에 대한 알 권리를 지켜줄 대안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보건교육을 해야 하는 책무를 가진 보건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학부모님께 죄송할 따름이다.

OECD 국가들이 보건의료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미 보통교육으로 학교 보건교육을 의무화하면서 건강의 주체성을 되찾고, 건강 형평성을 이루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더더욱 답답해진다. 언제까지 법률에 명시된 ‘보건교육’ 실시가, 보건교사들의 외로운 외침이어야 할까. ‘건강 없이 교육 없고, 교육 없이 건강 없다’는 선진국들의 슬로건이 자꾸만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필자는 현재 공주여자고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재직 중이다. 사단법인 보건교육보럼 충남 운영위원과 충남 보건교과교육연구회장, 충남식품안전발전협의회 거버넌스, '보건' 검정교과서 집필진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공주대학교 간호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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