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경영진 원가절감 압박 심해질까 걱정…"연봉 삭감·인력 감축에 직면할 수도"

나흘 앞으로 다가온 7개 질병군의 포괄수가제(DRG) 강제적용을 앞두고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봉직의(페이닥터)들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으로 인해 약제나 치료재료 등에 있어 원가절감을 꾀해야 하는 병원 경영진과 상황에 따라 소신진료를 포기해야 하는 봉직의 간 다양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7월부터는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 등 전체 의료기관에서 7개 질병군 포괄수가제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여기에 포괄수가제 대상 질병군도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돼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는 의료기관에 소속된 봉직의들은 의료의 질 하락은 물론 병원 경영진과 불신만 키우는 제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안과전문의는 고령의 노인환자들은 앞으로 포괄수가제가 확대적용되면서 차별대우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페이닥터는 원가절감을 두고 경영진과 환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며 “경영진은 처음엔 크게 관여하지 않다가 일정 기간이 흐르면 고가 치료재료나 약제를 줄이라고 의사에게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또 “노인환자일수록 백내장수술을 할 때 수정체를 지지하는 근육이 느슨해지거나 약해 수술이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 있다"며 "포괄수가제가 전체 의료기관으로 확대 시행될 경우 이런 환자들의 전원을 지시하는 경영진과 의사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가 치료재료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경영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부산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외과전문의는 “맹장수술을 복강경으로 하려면 구멍을 뚫는 트로카(trocars)란 장비가 필요한데 내장 손상이 적은 일회용 트로카는 비싸서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철제 트로카를 경영진은 선호할 것”이라며 “실제로 포괄수가제를 실시했던 이전 병원에서는 철제 트로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경영진은 만성질환이나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를 더 기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페이닥터는 병원 방침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대로 소신진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해지면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포괄수가제가 전격 확대되면서 봉직의는 재원일수 감축 등 병원 수익 증대를 추구하는 경영진과의 이해관계가 더 촘촘해질 것으로 보인다.

분만전문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지금까지 행위별수가제 하에서는 어떤 검사나 약제, 치료재료를 쓰든 간에 의료기관 수입으로 돌아가는 구조였지만 포괄수가제에서는 이런 부분에서 원가절감 요소가 발생한다"며 "치료재료 하나 저렴한 것을 쓰면 병원장(오너)의 수입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원일수 감소도 지금보다 더 빡빡해질 것이다. 환자는 지금도 병원의 조기퇴원 종용에 불만이 높은데 더 일찍 퇴원하라고 압박을 받고 봉직의가 중간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괄수가제와 비슷한 개념의 일당정액수가를 앞서 적용해왔던 요양병원에서는 경영진과 의료진 사이의 갈등이 현실화된 지 오래다.경남의 한 요양병원장은 “요양병원에 적용되는 일당정액수가는 일종의 포괄수가로 병원에서는 항생제나 치료재료 가격을 낮추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만큼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심적으로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신포괄수가제 시범사업을 수행해온 한 지방의료원 소속 내과의사는 “환자 퇴원 시기 등을 놓고 수가를 얼마 못받는지 심사팀에서 간혹 전화가 온다.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라며 “또 환자의 상태가 호전됐는데도 퇴원하지 않겠다고 하면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포괄수가제가 전체 요양기관으로 확대되면서 의료진의 인건비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지방의 한 중소병원장은 “포괄수가제 시뮬레이션을 해봤더니 재료대를 아끼지 않고는 적자를 메꾸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원가절감을 위해서는 의사들을 푸시할 수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료진 연봉을 삭감하거나 인력을 줄이는 상황도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도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으로 인해 병원 경영진과 의료진 사이의 불협화음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 보험정책과 박민수 과장은 최근 발간된 대한병원협회지에 기고한 '포괄수가제 확대의 이유와 정책방향'이란 글을 통해 “포괄수가제가 도입되면 의료적 최적 공급을 시도하는 진료의사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에피소드는 늘리되 그 속에서 진료와 투약을 줄이고자 하는 병원경영진 간에 갈등의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 과장은 또 "진료의사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제약 때문에 충분한 서비스를 받기 원하는 환자와 가급적 서비스의 양을 줄여야 하는 의사간에 갈등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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