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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0년 3월23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원을 통과한 '건강보험법개혁안'에 서명하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는 오는 28일로 예정된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모든 눈과 귀가 쏠려 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개혁 정책인 ‘건강보험 개혁법’(Affordable Care Act)의 위헌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판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총 450개 조항으로 구성된 일명 오바마케어법의 핵심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미국 국민 4,700만 명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보험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만일 이 법안이 시행되면 미국 국민의 95%가 의료보험을 갖게 된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밀어붙이면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자주 언급하며 벤치마킹 사례로 소개했다고 한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된 거처럼 ‘오바마 대통령조차 부러워하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짧은 시간에 국내 의료환경을 급속하게 발전시켰다. 최근 발간된 ‘OECD 한국 의료의 질 검토보고서’에서도 “한국 보건의료체계는 건강보험의 확대와 제도개선을 거치면서 의료서비스의 접근성과 평균수명 등 건강성과가 크게 향상되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국민의 의료접근성을 가장 빠르게 개선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1977년 처음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국민에 대한 의료보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도입 초기 8.7%에 불과하던 공공보험 적용률이 지금은 98%를 넘어섰다. 국민들의 의료비 본인부담 비중도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 87.2%에서 30년만인 2007년에는 38%까지 낮아졌다.

국민들의 건강지표 역시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다. 2008년 기준으로 평균 기대수명은 79.9세로 OECD 평균 79.4세를 훌쩍 뛰어 넘었고, 영아사망률도 1,000명당 4.1명으로 OECD 평균 4.7명보다 낮아졌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제도를 배우기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전문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국 국제협력본부의 한국 원조 프로그램인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지금은 역으로 우리가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왜, 국내에서는 건강보험제도를 둘러싼 불만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걸까. 의료서비스 수급자인 국민과 의료서비스 공급자는 물론 정부와 보험자조차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높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미래위원회에 보고한 '보건의료 미래상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행 의료제도 전반에 대한 만족도는 63.9%에 그쳤다. 나머지 36.1%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가운데 4명가량은 현행 의료체계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론 이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의료보장성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았다. 본인부담금으로 상징되는 진료비 부담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의료서비스 공급자들의 불만은 더하다. 가장 대표적인 불만 요인이 바로 저수가다. 최근 10여 년 간 연평균 2%대 수준에 불과한 수가인상률과 그마저도 의료원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는 주장을 거의 입버릇처럼 되뇐다. 여기에 의료기술 수준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데 정부와 보험자가 급여기준 등을 통해 끊임없이 의료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극에 달했다.

정부와 보험자 역시 현행 건강보험제도를 상당히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위기의식의 진원지는 건강보험 재정이다. 지난 2001년 한차례 재정 파탄 사태를 겪으면서 매년 반복되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에 좌불안석이다. 게다가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갈수록 급여비 지출 규모가 급증하면서 지금은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제도 구축’이 정부와 보험자의 지상 최대 목표가 됐다.

건강보험제도를 바탕으로 의료환경의 양적 지표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지만 질적 지표를 들여다보면 곳곳에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의료 상황을 ‘총체적 위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 원인은 기형적 건강보험제도와 의료자원의 구조에 있다. 현재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민간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다. 공공병원의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건강보험제도 역시 공적부조 원칙에 입각한 사회보장제도로 마련됐지만 사실 보장성이 60%를 겨우 넘길 정도로 취약한 편이다.

과도한 민간 위주의 의료자원 구조와 전 국민 사회보장제도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건강보험제도가 갈등을 키워 온 것이다. 전체의 96%를 차지하는 민간병원은 필연적으로 상호 치열한 환자유치 경쟁과 저수가 체계에서 수익을 보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적극 확대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의료서비스 수급자와 공급자, 정부 및 보험자간의 갈등과 불신, 불만이 누적돼 온 것이다.

왜 이런 구조가 형성됐을까 살펴보면 거기엔 바로 국가의 역할 부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공공병원을 제때 확충하지 못하고, 건강보험의 재정 확충에 있어서 국고지원 의무를 소홀히 한 정부의 잘못이 커다. 국민의료비 재원구성에 있어서 우리나라 정부의 부담 비율은 OECD 국가의 1/3 수준에 불과하다란 점이 이를 반증한다. OECD가 관련 보고서를 통해 분석한 것처럼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급여 범위를 제한하고 저수가를 유지함으로써 전국민의료보험을 급속도로 달성했고, 또한 민간병원의 급증으로 보건의료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국민들의 건강지표가 향상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은 빠져 있었다.

이제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무기로 급여비 지출 억제에만 관심을 둘게 아니라 민간에 떠넘겨 놓고 방치한 의료체계를 정상화하는데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보건복지에 대한 국가 지원을 확대하는 길 뿐이다. 언제까지 가입자들의 보험료 수입에만 의존해 한정된 재원을 놓고 의료서비스 수급자와 공급자간 제로섬 게임을 하게 내버려둘 것인가.

지난 3년간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예산이 22조가 넘는다고 한다. 또 올해부터 4대강 유지ㆍ관리비용으로 연간 수 천 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정책 목표와 성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한 사업에 수십조의 예산을 투입하면서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제도 실현을 위해서는 별다른 예산 지원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저 한정된 재원 타령에 재정 절감 정책만 쏟아낼 뿐이다. 여기엔 보건복지에 대한 투자가 낭비적 지출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보건복지 확대는 낭비적 지출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투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운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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