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지난 주말에는 백제 유적에서 기생충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게다가 연구실에 소 간(肝)이 7개나 도착해 황홀했죠.”

기자를 만나자 대뜸 한 말이다. 당최 이해하기 어렵다. 유적지에서 기생충을 찾는다는 말도 그렇고, 소의 간이 왜 황홀할 만큼 기쁨을 주는지도. 우리나라를 통틀어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는 약 50여명. 서민 교수(단국의대 기생충학교실)는 그중 가장 왕성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는 기생충 학자로 꼽힌다. 서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사 근무를 마친 뒤 1999년부터 기생충학교실 교수로 강단에 섰다. 주 전공은 장내 기생충학과 고(古)기생충학이다.

그동안 ‘대통령과 기생충’,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등 기생충 관련된 대중서도 10여권이나 썼고, 3년간 경향신문에 ‘서민의 과학과 사회’라는 고정 칼럼을 써왔다. 그가 꾸리고 있는 ‘서민의 기생충같은 이야기’도 인기 블로그로 자리잡았다.

지난 25일 천안 시내 한 백화점 커피숍에서 서 교수를 만났다. 아쉽게도 그의 연구실은 현재 리모델링 중이었다.

- 어쩌다 기생충을 연구하는 의사가 됐나.

"의대 본과 2학년 시절, 선택과목으로 기생충학을 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변검사만 하던 곳인줄 알았는데. 정말 멋진 연구를 하더라. 그래서 기간을 3주 연장해 7주간 기생충학교실에서 공부했다. 지도교수였던 홍성태 선생님이 내가 떠날 때쯤 더 연구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 말이 너무 반가워 두말않고 보따리를 풀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던 것 같다. 한번은 대학병원에 다니는 동기(대장항문외과)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새벽 4시에 차로 퇴근하면서 이대로 과로사하는 게 아닐까”라는 친구의 섬찟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연봉이 조금(?) 작더라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지금이 천국이다."

 

▲ 서민 교수의 블로그.

- 기초학문을 전공하는 의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맞다. 요즘 젊은 의사들은 기초학문 공부를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안한다. S의대에서는 기생충학 전공자는 무조건 조교수로 임용한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는 형편이다. 모교의 경우에도 10년 넘게 기초학문 전체에서 3~4명이 지원했다. 특히 의대 출신자는 더 없다. IMF 외환위기 이후로 더 감소한 것 같다."  

-기생충학이란 분야가 잘 와닿지 않는다.

"기생충학이 연구할 게 뭐가 있냐고 생각하는데 해야 하는 연구가 무척 많다. 아직 연구가 안 된 미개척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다만 이런 연구는 모두 허드렛일을 요구한다. 성과도 잘 안나온다. 그래서 연구자도 기피하는 분야가 많다. 예를 들어 ‘스파르가눔’이란 기생충이 있는데, 이 놈은 개구리나 뱀의 피와 살, 내장 등에 기생하는 지극히 위험한 기생충이다. 주로 뱀을 먹고 걸리는데, 감염자 중 20%는 약수(藥水)를 먹고도 걸린다. 약수터에 붙어 있는 수질 검사표와는 별 상관이 없다. 약수에 있는 물벼룩을 타고 우리 몸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조사는 거의 이뤄진 게 없다."

- 가장 공들여 연구한 기생충이 있다면.

"‘광절열두조충’은 평균 길이만 5미터다. 주로 자연산 송어회를 먹고 걸린다. 양식회를 먹고는 절대 걸리지 않는다. 중간 숙주인 달팽이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생충을 연구하기 위해 자연산 송어회를 1,000마리는 먹어본 것 같다. 혼자 하는 연구라 직접 마루타가 돼야 한다(웃음). 이 녀석은 대개 우리 몸의 소장이나 대장에 머문다. 기생충 확인은 대변검사로 한다. 꼬리를 절단하는 습성이 있어 변을 분석하면 나온다.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CT나 대장내시경으로는 발견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절열두조충((Diphyllobothrium latum)에 연간 약 100명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분야 역시 종합적으로 연구된 바 없다."

- 영화에 출연하는 기생충이 있다고 들었다.

"‘연가시’라고 들어봤나. 곤충에 붙어사는 기생충이다. 몇 년전 곱등이가 떼로 한국에 출현한 적이 있었는데, 죽은 곱등이에서 기다란 벌레가 나왔는데 그게 연가시다. 이 기생충의 특징은 숙주인 곤충으로 하여금 물로 뛰어들게 한다. 연가시는 물 속에서 교미하기 때문에 곤충의 뇌를 조종해 물로 유인하는 것이다. 오는 7월에 개봉하는 ‘연가시’란 영화가 이 기생충을 소재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에 나오는 연가시는 변종인데 인간의 뇌를 조종해 강물로 바다로 끌어들인다는 이야기다. 뭐, 전문가 입장에서는 가능성이 없는 얘기니까 안심해도 된다(웃음)." 

- 해외에서는 기생충 백신 연구가 활발한데 우리나라 상황은 어떤가.

"미국 등에서는 말라리아 백신 연구가 왕성하다. 말라리아는 지구 역사상 가장 악독한 질환이다. 그 백신을 연구하는 것은 기생충학자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말라리아 백신 연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한국은 기생충학 태생이 의대 위주다. 기생충학이 자연과학대에도 있어야 균형적으로 발전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명이 말라리아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 연구는 G20국가로서도 꼭 해야 할 일이다. 현재까지는 빌게이츠재단 연구자들이 50%까지 막아내는 백신을 연구한 정도다. 백신이라면 적어도 90%는 예방해야 한다고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 최근에 빠져있는 기생충은.

"소 간(肝)에 있는 개회충(Toxocara canis)을 조사하고 있다. 소 간을 먹고 대개는 증상이 없지만 10% 미만에서 개회충 감염자가 발생한다. 개회충은 간이나 폐에 기생하다가, 척수신경으로 가면 척수마비, 눈으로 가면 염증을 유발한다. 개회충 감염자는 초기 증상이 없어 나중에 간암이나 전이암 등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소 간 조사는 하루에 2개 밖에 못한다. 도축장까지 2시간이 걸리는데다 소화(인공펩신과 염산에 담그기)를 시키는데 3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부여, 공주 등 백제 시대 유적지에서 기생충알을 발견하는 희열도 남다르다. 기생충알은 이론적으로 2,000년에서 길게는 3만년까지 본존된다. 일단 기생충알이 발견되면 대부분 구조물이 화장실이란 얘기다. 주로 회충편충이나 간디스토마알이 대부분이다. 화장실의 히스토리를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시대 유적지에서 5살 유골에서 간디스토마알을 찾아냈는데, 이는 5살짜리 아이가 양반이었고, 민물고기회를 먹었겠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 얼마 전 공보의 학술대회에서 강연한 ‘공보의의 재발견’이 호응을 얻었다던데.

"의대를 졸업하고 국립보건원에서 공보의 시절을 보냈다. 테니스 말고는 건진 게 없는 시절이었다. 그만큼 후회가 막심했다. 공보의 기간은 원하는 연구를 맘껏 할 수 있는 시기다. 사실 임상의사가 연구방법론을 채계적으로 배우는 기회가 거의 없다. 공보의 기간 동안 연구 논문을 써 보는 것도 추천할만 하다. 초음파나 대변검사 등 지역주민의 질환 연구를 통해 기초연구논문을 작성하는 거다. 1년에 1~2편만 써도 나중에 봉직의가 되든 개원의가 되든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다."   

▲ 평균 길이 5m로 송어 등 민물고기를 먹고 걸리는 '광절열두조충'.

- 요즘같이 의료정책을 두고 찬반이 분분한 시점에서 의사의 사회참여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의사들이 글을 잘 써고 말을 잘했으면 좋겠다. 의사끼리는 당연한 얘기지만 다른 환자를, 이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포괄수가제 등 정부 정채과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의사가 그 뜻을 관철하려면 여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본다. 지역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하고, 방송에 나올 거면 스피치연습도 해야 한다. 의사들이 공개토론에는 잘 안나가면서 뒷담화는 잘 한다. 이제 의사 중심 보다는 국민 중심에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사람들이 의사를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의사는 인간관계가 한정적이다. 우정을 저버리지 말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넓게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다."

- 앞으로도 기생충과 계속 살아갈 건가. 다른 계획은 없나. "기생충은 빌붙어 사는 존재다. 숙주에 의존하면서 숙주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에게 득이 될 건 가로채 먹는다. 그런 측면에서 태아와 같다. 산모의 철분이 부족하건 말건 먹어버린다. 태아와 비교할 순 없겠지만 이제 기생충은 더 이상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더 고민해야 하는 존재다. 기생충의 3%는 멸종되지 않고 언제나 인류와 함께 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들과 공생하기 위해 기생충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나중에 기생충박물관을 짓고 싶다. 볼거리 없는 박물관에 신물이 나서다. 아이들이 실물 크기의 기생충을 보고, 회충의 일생을 겪어 보고 하는 체험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 기생충에 대한 불편한 오해와 진실도 친절하게 알려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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